제랄다와 거인
소외된 한 인간의 치유과정
- 닉네임 "머스마"님이 올려주신 글입니다.
풍자와 위트의 작가 토미 웅거러의 작품입니다.
낯설고 기피하는 주인공들을 내세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선입견을 무력화시키는 데 도가 튼 작가이지요.
뱀, 강도, 박쥐, 상이군인, 식인거인, 낡아 찢겨진 곰인형 등
아이들 동화책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대상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고 읽는 이의 허를 찌르며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이 책의 주인공인 식인거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거인도 아니고, 혼자 외. 로. 이 사는 식.인.거인이랍니다.
그것도 어린아이를 잡아먹는 것을 제일 좋아한다니요??
표지를 보세요.
험악한 거인이 칼을 들고 여자아이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여자아이의 표정이 보이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스한 시선으로 미소짓는 얼굴.
이 얼굴이 만들어내는 기적같은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첫 장을 펼치면, 보여주고 싶지 않은 장면이 등장합니다.
거인이 칼을 들고 상자 안에 갖힌 아이를 위협하는 장면이죠.
그런데 이것을 보고 책장을 덮으면, 그 이후 전개될
마법같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놓칠 수 있습니다.
이 책의 묘미는 뒤로 갈수록 더해지거든요.
그 다음 장 역시 점입가경입니다.
마을 주민들은 아이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지하실, 궤짝 통 등에 아이들을 숨깁니다.
이 장면 한 귀퉁에서 책을 깔고 앉아 있는
지식인(박사모를 쓰고 있는,,,)들이 보이는데요
그들은 그저 턱을 괴고 거인의 만행을 무력하게 지켜볼 뿐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습니다.
지식인이나 정치인의 모습을 풍자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런 장면은 토미 웅거러의 다른 작품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마침내 마을 아이들은 모두 잡아먹히거나 숨어버리고,
거인은 맛없고 차거운 요리들로 끼니를 떼우게 됩니다.
그리고 또다른 주인공 제랄다가 등장하지요.
아주 외진 곳에 살아 식인거인의 존재를 모르는 제랄다는
아픈 아버지 대신 장에 나가다가 거인을 만납니다.
배고픈 거인이 어린아이인 제랄다의 냄새를 맡은 것이지요.
잡아먹으려고 하지만 실수로 떨어져 다친 거인은
제랄다의 극진한 간호를 받습니다. 게다가 장에
내다 팔려 했던 식재료로 진수성찬을 대접받습니다.
그 음식맛에 반한 거인은 어린아이보다
맛있는 음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후 제랄다는 거인의 집에서 요리를 하게 되고
매끼니 거인을 위해 정성스럽고 화려한 식탁을 꾸밉니다.
이때 등장하는 요리들이 눈길을 끕니다.
신데렐라식 칠면조 구이도 있고, '거인의 기쁨'이라는
달콤한 후식도 준비되어 있거든요.
아이들이 특히 즐거워 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요리에 동화가 패러디되는 장면, 상상만 해도 즐겁거든요.
거인은 제랄다의 요리를 접한 후 달라집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마음이 좋아지고 행복해집니다.
혼자 외로이 살던 거인은 친구 거인들도 초대합니다.
친구 거인들도 제랄다의 음식을 맛본 후
더이상 사람을 잡아먹지 않게 되었어요.
아이들은 다시 밖으로 나왔고,
마을사람들은 평안을 얻었습니다.
이제 거인은 맛난 사탕을 들고 다니며 아이들에게 나눠 줍니다.
그의 표정에는 편안함과 행복, 사랑이 넘칩니다.
언제 이 거인이 그 무서웠던 식인거인이었을까,
그의 과거는 이제 그에게도, 마을사람에게도
하나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제랄다가 어른이 되고,
거인과 제랄다는 부부가 됩니다.
서로 사랑했고, 죽을 때까지 아주 행복하게
살았다고 말해도 좋을 거라고 하네요.
이제, 감이 오시죠?
이 책은 사랑과 용서를 통한
한 인간의 치유과정을 보여줍니다.
아무도 곁에 두지 않았던, 소외되고 외로웠던 한 인간이
살아가는 방법은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고,
독을 내뿜는 것이었지요.
절대로 변할 것 같지도 않고, 용서받을 수도 없는
만행을 저지른 그가 새로운 삶을 살게 될 거라곤
어느 누구도 상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헌데, 그런 그가 제랄다의
맛있는 음식을 맛본 후 점점 다른 사람이 되어갑니다.
제랄다의 음식은 그저 음식이 아니었던 거지요.
사랑이었고, 믿음이었고, 변치 않을 절대적 지지였던 셈입니다.
제랄다의 음식을 통해 거인은
세포 하나하나에 새로운 기억을 쌓게 됩니다.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던 내면의 사랑을 발견하게 되지요.
그 사랑은 점점 더 퍼져나가 이웃 그리고 마을 전체에 퍼집니다.
모두가 행복해진다는 이야기이지요.
한 인간의 치유가 세상을 아름답게 합니다...^^
아이를 잡아먹은 식인 거인이 나중에 행복해지다니...
이거 권선징악을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것은 아닌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아이들은 이미 책장을 넘기며 경험한 제랄다의
맛있는 음식과 사랑을 통해
거인의 치명적인 잘못, 죄를 잊습니다.
이 책의 맨 앞부분에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 잡아먹는 거인들이 대부분 그렇듯,
이는 날카롭고, 수염은 가시처럼...
괴팍스런 성미, 먹성은 엄청났답니다.
대부분 그렇듯....이란 말은 우리가 가진 선입견,
이미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으로 바라 본 대상은
재판단할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여기기 쉽지요.
하지만, 이 책은 사람을 잡아먹은 엄청난 죄를 지은 거인도
행복해질 수도 있다는 기존의 가치관, 혹은 통념을
뒤집는 결말로 마무리 짓습니다.
토미 웅거러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과감함이지요.
아이들에게 다른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용기,
그리고 그 다른 것을 아이들이 스스로 판단하게끔
재미나게 풀어내는 능력,
그 모든 것이 잘 녹아있는 작품입니다.
토미 웅거러의 작품은 밝은 톤을 좀처럼 쓰지 않습니다.
이 책 또한 유럽의 중세시대를 느끼게 하는 배경을 썼는데요,
전반적으로 무거운 색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현실이 늘 선명한 원색이 파스텔톤은 아니라는 거.
하지만 아이들은 개의치 않습니다.
아이들을 잡아먹는 무서운 식인 거인이 등장하지만,
아이들이 참 좋아하고 재미있어하는
아이러니한 책이지요.^^
참, 토미 웅거러의 작품이 더 궁금하시다면,
"세강도", "크릭터", "달 사람", "곰인형 오토", "모자",
"꼬마구름 파랑이", "개와 고양이의 영웅 플릭스" 등을 살펴보세요.
예전에 소개했던 글로 링크됩니다. ^^
▶ http://www.purmi.com/sub/board/view.php?seq=911250
제랄다와 거인 바로가기
▶ http://bitly.kr/MNKu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