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밑줄>
김경집 저 | 한겨레출판
지금 내가 누리는 권리는 언제 어디선가
누군가의 희생을 통해 어렵사리 얻은 선물이다.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에밀리 데이비슨과 에멀린 팽크허스트를 기억하는 이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1913년 교사였던 에밀리 데이비슨은 영국 국왕
조지 5세가 참관하는 경마 대회에서 국왕의 말에 몸을 던졌다.
여성참정권을 끈질기게 요구한 그녀는 그렇게 죽었고
그녀의 죽음에 분노한 시민들의 저항은
마침내 여성에게도 투표권을 주게 만들었다.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여성사회정치연맹의 지도자였다.
유복한 집에서 태어난 그녀는 여성의 출구 없는
삶에 대해 회의를 품고 여성해방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녀의 남편 리처드 팽크허스트는 가장 강력한 지원자 겸
지지자였고 딸 또한 어머니의 사상을 공유하고 실천했다.
팽크허스트 모녀는 여성참정권을 얻기 위해
합법이건 불법 이건 가리지 않고 모든 행동을 실천했다.
감옥이 모녀의 집이었고 단식 투쟁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남성은 여성이 참정권을 가지면
결혼제도와 가족제도가 위태로워지고
남성의 권위를 위협할 것을 두려워했고
그에 비례해서 여성운동가들에 대한 탄압을 더욱 강화했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은 끝내 결실을 거뒀고
지금 모든 여성은 참정권과 투표권을 행사한다.
지금은 당연한 일처럼 여기지만
그걸 얻기 위한 희생은 기억하지 않는다.
고작 100여 년 전의 일인데...
정치적 권리뿐 아니라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삶은 이전의 인류가 쌓아온 삶과 문화가 낳은 결과물이다.
문이 열리기까지 무수히, 끊임없이 그 문을 두드렸고
때론 목숨을 바쳤다.
그런 과정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를 얻었다.
그걸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마련해줄 것인가.
그것은 우리가 무엇에 맞서, 무엇을 위해 살고 싸워야 할지를
묻는 것과 동일한 물음이다.
(121쪽~1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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