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아들딸은 행복하게 책 읽는가?

어린이 책에 관한 한 어른들에게 금과옥조로 여겨져온 

고정 관념이 있다. 어린이 책은 그림책이든 동화책이든 

지식을 많이 전달하고 도덕적 교훈을 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달하는 지식과 교훈의 양이 많으면 많을수록 

어른들은 그것을 더욱 더 '좋은 책'으로 믿었다.

이같은 고정 관념은 자녀의 독서 지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아이를 위해 그림책을 펼쳐든 학부모는 자녀들에게 

그림책에 등장하는 각종 동물과 사물의 이름, 

가짓수를 물어보기 바빴고, 책을 다 읽은 뒤에는 으레 

줄거리를 말해 보라고 다그치기 일쑤였다.

어른들은 또 어린이 책을 통해 자녀들에게 

덧셈·뺄셈 등 셈법 능력을 향상시키기에 진력했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자녀에게는 남에게 뒤질세라 

한글 깨우쳐 주기에도 최선을 다했다. 

한마디로 어린이책은 국어, 산수에서부터 자연과 

바른 생활까지 전과목을 포괄하는 '다목적 학습서'였다. 

또 자녀에게 책을 읽어 주는 시간은 고스란히 공부 시간이 되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고정 관념이 

진정한 독서 교육을 망치는 지름길이라고 비판한다. 

지식과 교훈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려는 어린이 책과, 

이들 책을 무조건 주입하려는 독서 지도는 

자녀들에게 책에 대한 흥미를 잃게 만든다. 

마음의 양식이자 지적인 삶의 평생 동반자가 되어줄 책을 

자녀들의 손에서 일찌감치 빼앗아 버리는 꼴이다.

좋은 책은 어린이가 좋아하는 책

전문가들이 정의하는 좋은 책은 

지금까지 상식으로 통해온 것과 사뭇 다르다. 

좋은 책은 한마디로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책'이어야 한다. 

어린이들이 읽으며(또는 보며)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른들이 보기에 아무리 교육적 가치가 있거나 

유익해 보이는 책도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을 경우 

그 책은 일단 좋은 책 후보에서 제외된다.

좋은 책의 본질은 프랑스의 저명한 문학사가이자 

어린이 문학가였던 폴 아자르에 의해 명료하게 제시된 바 있다.

그는 1930년대 어린이 문학의 역사를 논한 저서 

〈책·어린이·어른〉에서 좋은 책과 나쁜 책의 본질을 비교했다. 

나쁜 책의 특성 중 가장 상위에 오른 항목이 

'어린이들의 천성에 어울리지 않는 책' 

'아름다운 그림으로 눈을 즐겁게 해주지 못하는 책'이다.

그는 이어서 나쁜 책의 또 다른 특성을 열거했다.
'생기 넘치는 강렬한 표현으로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는 책,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밖에 가르치지 못하는 책, 

꿈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책' 등등. 

그는 '어린이들은 그런 책을 단호히 거부한다'고 썼다. 

폴 아자르가 열거한 나쁜 책의 특성을 뒤집어 놓으면, 

그대로 좋은 책의 특성이 된다.

어린이 책 전문가들이, 일반적으로 좋은 책으로 

받아들여지는 위인전, 세계 명작을 좋은 책의 명단에서 

일단 제외하는 이유도 폴 아자르의 문제의식과 일맥 상통한다. 

위인전·세계 명작은 대개 전집류로 출판되어 값이 비싸다. 

하지만 이들 책을 꺼리는 더 근본적인 이유는 

이들이 대개 높은 도덕성과 교훈을 강조하고 있어 

교육적으로는 가치가 있을지 모르지만, 

어린이들의 호기심과 흥미와 상상력을 자아내는 데에는 

실패하기 때문이다.

물론 재미만 있다고 무조건 좋은 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좋은 책의 필요조건으로 

좋은 문체·탄탄한 구성·가치 있는 주제를 꼽는다. 

이 세 요소가 한 편의 이야기 속에 잘 어우러질 때 

어린이들은 비로소 책에 몰입해 감동할 수 있고, 

이같은 경험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책읽기의 즐거움을 자기화한다는 것이다. 

"좋은 책이란 좋은 문체와 훌륭한 구성에 가치 있는 

교육적 주제를 감쪽같이 숨긴 책이다"라고 

어린이도서연구회 김소원 총무국장은 말한다.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 

안데르센의 동화 시리즈는 익히 알려진 좋은 책의 고전들이다. 

또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유아용·사계절), 

〈지각 대장 존〉(초등학교 1학년부터·비룡소) 등은 

비록 외국에서 출판되었지만 국내에도 번역되어 

널리 보급된 현대판 고전들이다. 

이들 책의 특징은 한결같이 앞서 언급한 

좋은 책의 요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어린이 책 전문 출판의 연륜이 쌓이면서 

국내에서도 최근 들어 좋은 책의 표본이 등장하고 있다. 

원로 동화작가 권정생씨가 쓴 

〈강아지똥〉(1996·길벗어린이)이 대표적이다. 

골목길 담장 밑의 강아지똥이 땅 속으로 스며들어 

민들레꽃을 피우는 거름이 된다는 내용을 담은 이 책이 

어린이 문학 평론가들에게 좋은 책으로 꼽히는 이유는,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읽는 즐거움을 줄 뿐 아니라 

삶의 고통까지 감동적으로 전달하기 때문이다.

채인선씨가 글을 쓰고 정순희씨가 그림을 그린 

〈내 짝궁 최영대〉(재미마주), 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류재수씨가 직접 글을 쓰고 그림도 그린 

〈백두산 이야기〉(통나무)도 바로 이같은 이유에서 

잘 된 어린이 책의 본보기로 꼽힌다.

아무리 좋은 책이 나와도 제대로 된 독서법이 

전제되지 않으면 책읽기 교육은 실패한다. 

전문가들은 이 점에서 특히 읽어주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어린이 독서·문학 교육의 첫걸음은 

읽어주기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어린이의 경우, 책에 대한 이해는 들으면서 상상할 때가 

눈으로 읽을 때보다 2∼3단계 앞선다는 것이 정설이다.

전문가들은 또 독서력이 없는 아이들의 99%는 

어렸을 때 부모가 책을 읽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그만큼 책 읽어주기는 어린이들에게 책을 친숙하게 여기고, 

독서 효과도 높이는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질문하지 말고, 독후감 강요하지 말라

전문가들의 두 번째 권장 사항은, 어린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동안에는 절대로 질문하지 말 것이며, 

책을 다 읽은 뒤에 함부로 독후감을 요구하지 말라는 것이다. 

책 읽는 도중의 질문은 상상력의 원활한 작동을 방해한다. 

책을 다 읽고 난 뒤의 독후감 요구는, 

한창 정신 없이 뛰노는 아이들에게 밀린 숙제를 

제출하라고 윽박지르는 것과 다르지 않다.

페리 노들먼은 저서 〈어린이 문학의 즐거움〉(시공주니어)에서 

어린이 책읽기의 1차 안내자인 문학 담당 교사를 향해 

책읽기 도중 삼가야 할 몇 가지 사항을 일러준다.

△ 읽기를 즐기는 동안에는 낱말의 뜻을 풀지 말 것

△ 정말 정확하게 읽는지 걱정하지 말 것

△ 책을 대충 읽고 넘기거나 덮어버리는 일이 있어도 

    용인할 것 등이다.

그가 이같은 주의 사항을 열거한 이유는 분명하다. 

책을 읽고 난 뒤 마땅히 있어야 할 학부모와 자녀 간의 

진정한 '독서 토론'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전문가들이 권장하는 좋은 독서법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어른들이여, 자녀들의 책읽기에 최대한 끼어들지 말라'이다.

국내에서 좋은 어린이 책을 고르는 안목과 바람직한 

독서지도법이 체계적으로 논의된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그만큼 어린이 독서 교육은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주먹구구식 행태를 면치 못해 왔다.

어린이 책은 또 기껏해야 취학 전에나 

읽혀야 할 것으로 여겨져 왔는데, 이 또한 잘못된 것이다. 

읽어주기의 경우, 적정 상한선은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이다. 

이처럼 그릇된 교육관에 중독된 학부모는 

'공부 다 한 뒤 책을 보라'며 자녀의 손에서 책을 빼앗았다. 

학교는 학교대로, 예산과 일손 부족을 핑계로 독서 지도를 방기했다. 

학부모와 학교는 말하자면 어린이를 무지의 늪에 

빠뜨린 공모자였던 것이다.

'어린이에게 어린이 책 돌려주기' 운동 활발

하지만 최근 들어 상황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 

일부 학부모와 교사·도서관 종사자·어린이 책 출판인·

서점 사이에 일대 반성이 일면서 '어린이에게 어린이 책 

돌려주기' 운동이 활기차게 벌어지고 있다. 

'동화 읽는 어른 모임'이 대표적이다.

회원의 95% 이상이 평범한 가정 주부인 이 모임은 

시·군·구 단위 지역 별로 1주일에 한번씩 토론 및 연구 모임을 열어 

이를 각 가정에서 실천한다. 이 모임의 또 다른 주요 활동은 

'학부모 강의'를 통해 자기네 연구 성과를 모임에 

소속되지 않은 동료 학부모와 나누고 있다. 

이 모임은 최근 일부 지역에서 일선 학교 교사를 상대로 

노하우를 전수할 정도로 전문성을 인정받는 단체로 성장했다.

하지만 이들의 활동에도 불구하고 어린이 책과 

독서 교육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인식 수준은 

여전히 낮은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진정한 독서 교육은 

내가 고른 좋은 책이 아이들에게는 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우리 학부모는 이제야 겨우 

그 평범한 진리의 문턱에 도달했다"라고 

어린이도서연구회 김소원 총무국장은 말했다.

잠들어 있는 미적 감수성을 일깨우고,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갖고 있는 상상력을 부추기며, 

삶의 다양한 국면을 체험시키는 것을 제1 목표로 하는 

어린이 독서(문학) 교육의 제1차 대상은 

고정 관념에 눈이 먼, 다름 아닌 어른 자신이라는 것이다.

[박성준 기자]

시사저널에 실린 글로, 박성준 기자의 허락 하에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