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리움 미술관

이태원에 있는 삼성 리움 미술관을 다녀왔습니다. 

리움에서 가까운 국립중앙박물관에는 볼 거리가 아주 많지요. 

리움 미술관에는 전시품이 많지 않지만, 

엄선된 작품만 골라놓은 알토란같은 느낌... 

움직이는 동선마저 단순해서 집중이 잘 되는 곳입니다.

리움은 고미술관, 현대미술관, 기획전시관으로 나눠집니다. 

입장료를 내면(어른 10,000원, 청소년 5,000원) 고미술관과

현대미술관을 관람할 수 있고, 기획전시는 별도로 운영됩니다. 

리움을 처음 방문한 것이라 정확한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작품은 호암미술관이나 수장고에 보관해 두고, 

일부 작품만 교대로 전시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리움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경기감영도 12폭 병풍"과 

정선의 "금강산전도", 김득신의 "환어행렬도", "수원능행도", 

단원 김홍도의 "병진년 화첩" 등을 보고 싶었지만, 

대부분 전시되지 않았고, 병풍이 놓일만한 위치에는 

안중식의 "영광풍경 10곡 병풍"이 대신 전시되어 있더군요.

고미술관에서 인상적이었던 그림 3점을 소개합니다.

(1점은 직접 보지 못하고 도록을 구입해 본 것입니다).

♥ 안중식의 "영광풍경 10곡 병풍"

10폭의 병풍에 그린 큰 그림입니다.

영광의 만석꾼 조희경, 조희양 형제의 초청으로 

안중식이 1915년 초여름, 영광에 40여 일을 머물며 그렸습니다. 

100년 전의 영광 모습이지요.

그림을 확대해 보면 영광 읍성이 보입니다.

영광 읍성이 철거되기 이전의 모습을 그린 귀한 자료죠. 

구글 지도를 통해 영광군 주변을 확인해 보니,

지금의 영광 예술의 전당 언덕에서 무령리 일대(영광읍 사무소)를

바라보고 그렸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런 그림을 볼 때마다, 안중식이 그림을 그렸던 자리를 찾아가

현재의 모습과 비교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드네요. 

♥ 작가미상, "경기감영 12곡 병풍"

도록을 통해 보게 된 <경기 감영도>.

이중환의 <택리지>를 보면 경(京)은 임금이 사는 도성을,

기(畿)는 도성을 둘러싼 500리 거리의 땅을 말하니,

도성을 중심으로 반지름 40km 원을 그리면 그 지역이 경기입니다.

강원도는 강릉과 원주, 충청도는 충주와 청주,

경상도는 경주와 상주, 전라도는 전주와 나주를 합친 말이니,

조선시대에는 상주와 나주가 대구나 광주보다 큰 도시였지요.

경기 감영이란 지금의 경기도 청사, 

그림을 그린 당시(19세기로 추정)에는 경기도 청사가

서대문(돈의문) 밖, 지금의 적십자 병원 자리에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 그림은 애오개(지금의 아현동 고개)쯤에서

경기감영을 바라보며 그린 그림으로 보입니다.

현재의 서대문 일대와 비교해 보면 재미있지요. 

병풍의 오른쪽 1, 2, 3 폭 부분입니다.

1폭에 보이는 성문이 서대문, 즉 돈의문(敦義門)입니다.

서대문이 있던 자리는 지금의 정동 사거리(경향신문사 인근),

서대문 앞의 산 밑에는 강북삼성병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강북삼성병원이 생기기 전 그 자리에는   

김구 선생님의 집무실인 "경교장"이 있었지요.

물론 지금도 경교장이 그 자리에 남아있지만,

높은 병원 건물에 둘러 쌓여있어 보이지 않은니 안쓰럽네요.

오른쪽에서 4, 5, 6폭에는 경기 감영과

감영으로 들어가는 경기 감사의 행렬이 보입니다.

감영 자리에는 지금 적십자 병원이 들어섰습니다.  

경기 감영도 8폭의 그림을 자세히 보면

영은문(迎恩門)과 모화관(慕華館)이 보입니다.

모화관(慕華館)은 명나라 사신을 맞이하던 곳, 

영은문(迎恩門)은 모화관 앞에 세워둔 

중국 스타일의 홍살문입니다. 고려 때 중국 사신의 접견 장소였던 

영빈관을 본따 세운 것으로, 임금이 즉위하여 중국 사신이 

조칙을 가지고 오면 임금이 친히 모화관까지 나와 

사신을 맞이했다고 합니다. 

조선 초기 그림이 웅장한 산수화였다면,

중기로 접어들며 그림의 소재와 화풍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화가 김시, 중종 때 최고 권력자 

김안로의 셋째 아들입니다. 김안로는 둘째 아들을 

중종의 딸과 결혼시켰으니 조정에 그를 제어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요.

그가 문정왕후마저 폐위시키려하자 

중종은 김안로를 제거합니다.

김안로의 반격을 두려워 한 중종은 그의 셋째 아들 

김시가 결혼하는 날을 D-데이로 잡았지요.

아들이 장가가는 날 군사를 풀어놓을 리 없기 때문입니다.

조선 중기 최고 권력자의 아들이 결혼하는 경사스러운 날,

김안로는 어명으로 끌려가 사약을 받았고, 

김시는 하루 아침에 역적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역적은 보통 삼족을 멸했지만, 살아남았으니 다행입니다.  

그는 속세를 떠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지요. 

그에게 그림은 현실의 탈출구이자 안식처였습니다.

특히 소 그림을 즐겨 그렸는데, 그가 그린 소는

한결같이 평화롭고, 자유로운 모습이었지요.

김시의 <동자견려도>는 다리를 건너지 않으려는 나귀와

고삐를 잡아끄는 아이의 힘겨루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아이의 옷을 하얗게 칠해 그림의 초점을 아이에게 두었습니다. 

세상사 모든 일은 내려놓은 김시에게는 

뜻대로 되지 않는 아이의 모습을 보는 것도 즐겁습니다. 

평화롭게 바라보는 김시의 시선이 느껴지는 그림입니다.

정승집 개가 죽으면 문상객이 줄을 잇지만, 

정승이 죽으면 문상을 가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요.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과 냉담해진 주변 사람들의 태도를 보며

김시의 형제들은 권력의 무상함을 뼈저리게 느꼈을 겁니다.

김시의 동생인 김기와 김시의 손자인 김식, 김집은 

이후 화가의 길에 들어섭니다. 

권력을 쫓던 세도가의 가문에서 그림을 

업으로 삼는 가문으로 거듭난 것입니다.

♥ 김홍도의 "소림명월도" 

은은한 달빛이 비추는 밤, 달은 나무에 걸려있습니다.

서정성 가득한 이 그림은 단원이 51살 되던 해,

즉 정조 20년인 1796년에 그린 소림명월도(疎林明月)입니다.

소(疎)는 '트일 소', 소림(疎林)은 아마도 확 트인 숲,

즉 성긴 가지만 남은 숲이라는 뜻입니다.

잎사귀를 떨군 나뭇가지에 달이 걸려 있는 극적인 장면을

51세의 단원이 원숙미 넘치는 그림으로 그린 것입니다.

단원은 1796년, 26.7cm×31.6cm 크기의 그림 

20여 점을 그렸습니다. 

이것을 책처럼 엮어 "병진년 화첩"을 만들었죠.

그 화첩을 호암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지만, 

전시된 것은 소림명월도뿐...

병진년 화첩 중 3점을 올립니다.

순서대로 옥순봉, 사인암, 도담삼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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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움이 어떤 의미일까 해서 찾아보니 삼성 그룹의 창업자

이병철 회장의 "Lee"와 "뮤지엄(Museum)"의 합성어네요.

고 이병철 회장님이 리움에 엄청난 공을 들였음이 느껴집니다.

마리아 보타가 설계했다는 미술관의 로툰다 구조는  

리움 박물관을 차별화시키는 신의 한수, 한마디로 압권입니다.

밑으로 내려갈수록 점점 좁아지는 원추형 모양의 계단은 

다음 층으로 이동하는 통로이자 전시장의 중심입니다.

이 로툰다 구조를 중심으로 관람객의 동선이 짜여 있어

시선이 분산되지 않고 작품에만 집중할 수 있지요. 

지금것 보았던 박물관 중 가장 집중이 잘 됐고, 

그만큼 여운도 오래 남는 박물관입니다.

초등 고학년 이상의 아이들에게 추천합니다. 

고미술관을 나오는 길목에 있는 중력의 계단(Gravity Stairs).

올라퍼 엘리아슨의 작품입니다.  

천장과 전면에 거울을 달아 움직이는 모습이 달리 보입니다. 

천장을 보면 중력을 거스르는 듯한 모습이 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