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 가서 텐트 치고 걷고 짐싸고 하며
팥죽같은 땀을 한바가지 흘리고 나니
그까짓거 더위 무섭지도 않네요.
고생스럽다 생각한걸 막상 해보니
고생이 다가 아니네요.
고생을 이겨낼 만한 나라는 자신감이 따라 붙네요.
집에 도착해서
짐 풀고 정리하고 빨래 돌리다가
무슨 기운이 뻗쳤는지
집에 있는 이불을 다 걷어 빨 기특한 생각도 합니다.
2년을 안빨고 있던 사철 똑같은 이불을요
한증막에 온듯 땀이 쏟아지는데
묘하게도 기분이 좋아져요.
일하면서 땀흘리니까 보람도 있고 기분도 개운해요.
이불을 걷고 거의 2년만에 방청소도 합니다.
딸아이 슬라임들과 먼지들과 고양이 털이 범벅된
방을 정리하고 있자니
영웅이 된거 같이 으쓱합니다.
이 먼지 속에서 뒹굴었을 아이들 생각은
사실 잘 나지도 않았고요
1층 2층을 오르락 내리다 보니
군데 군데 보이는 일거리들
고양이 화장실 치우는거
설거지 거리
식탁위 깎아 놓은 과일껍질
마음속에선 나중에 나중에 나중에 하자 소리가 아우성쳐요.
이거 하고 나중에 하자
이것만 끝내고 나중에 하자
근데 그 나중에는 절대 안오거나 지칠대로 지치면 옵니다.
지금하지 않으면 나중은 안 옵니다.
작년 겨울방학 때 아이들이 학교에서
가져왔던 실내화도 아직까지 그대로 있습니다.
지나갈 때마다 나중에 하자 그랬는데
여전히 그 나중은 안오네요.
기다렸습니다.
이것만 다하면
현재의 내 눈앞에 해결해야 할
당장의 필요를 외면하고 기다렸습니다
이것만 다하고
이것만 끝내고
아이들이 이것 좀 보라고
이거 좀 해달라고
이거 좀 같이 하자 부를 때도
엄마 이거 끝나고 나중에 나중에
그러고 나면 버스는 떠나고
아이의 관심은 저멀리로 사라졌지요.
기다리면
이것만 끝내 놓으면 나중엔 꼭 올거 같았거든요.
지금의 필요와 욕구를 지연시키고
지금의 관심과 흥미를 일시 정지하고
기다리면 올줄 알았습니다.
나중에 나중에 해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 나중이 쌓이고 쌓여
45년이나 지난줄은 몰랐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