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
소위 로망스어군의 명사에는 성의 구분이 있어요.
비록 문법상의 구분이지만, 남성명사인지
여성명사인지에 따라 관사나 대명사가 달라지죠.
동양의 언어에는 성별 구분은 없지만,
사물의 느낌에 따라 음과 양이라는 기운으로
성을 구분하기도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기운을
어떤 기준으로 구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충북 영동군에 있는 옥계 폭포는
여성의 이미지를 지닌 폭포라고 합니다.
폭포가 여성이 누워있는 형상을 닮았다 하는데,
눈 씻고 봐도 그런 형상은 보이지 않고,
다만 소리 없이 떨어지는 가늘고 긴 물줄기가
여성스러워, 이름에 '구슬 옥(玉)'자를 붙인 듯 합니다.
대부분의 폭포는 근처만가도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웅장하게 울립니다. 옥계폭포는
입구에 들어서도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요.
심지어 입구까지 와서 폭포가 어디에 있는지를
묻는 행인이 있을 정도입니다.
폭폭 아래의 둥근 바위는 남성을 상징하는
바위라고 합니다. 이 바위 덕분에 음과 양이
조화를 이뤄 마을이 평온해 졌다는
"전설의 고향"같은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이 바위를 치웠더니 마을의 젊은이들이 죽어
나갔다는 전설같은 이야기. 이런 이야기들이
만들어지는 건 당시 사회가 불안했기 때문입니다.
사회가 불안정하고 소수 권력에 휘둘릴수록
억울한 사람들이 많이 생기고, 자연의 이상 현상에도
불안해 합니다. 이런 틈새를 무당이나 도사들이 파고들죠.
유튜브에 "○○도사"같은 사기꾼들이 활개를 치는 것도
우리 사회가 안정되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바위로 둘러쌓인 폭포 주변 지형으로 보면
물소리가 웅장하게 울릴 법한데 조용합니다.
폭포 아래에는 깊은 물 웅덩이가 생기기 마련인데,
이곳은 그렇지도 않아요. 물줄기도 가늘뿐더러
물이 떨어지는 각도 역시 둔각이어서 낙차가
크지 않아 그런 듯 합니다.
영동 포도축제에 가려고 함께 내려 온
처조카의 아이들이 이곳에서 한참을 놀았습니다.
놀기 좋은 환경인지 좀처럼 떠나려하질 않네요.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는 동안
정자 뒷편의 산에 올라가 폭포를
내려다보니 마치 한 폭의 동양화처럼 보입니다.
이곳에서 대략 4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난계 국악박물관과 박연 선생의 묘가 있습니다.
영동은 우리나라 3대 악성으로 불리는 난계
박연 선생의 고향. 박연 선생은 세종대왕의 요청으로
아악(궁중음악)을 정리하고, 소리를 조율하는
율관을 만들고, 악기를 국산화하는데 성공합니다.
난계로 인해 중국풍의 당악에서 벗어나 k-국악의
기틀이 마련된 것입니다.
부귀영화도 잠시. 난계의 아들이 단종 복위운동을
벌이다 멸족되는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세조는
난계의 공을 인정해 난계의 관직을 박탈하고,
아들만 처형합니다.
자식을 잃고 고향으로 돌아 온 난계 선생에게
희망이 있을 리 없습니다. 아들을 가슴에 묻고,
옥계폭포에서 대금을 연주하며 말년을 보냈다고
합니다.
폭포 오른쪽 바위에는 해가 잘 드는 반면,
폭포 왼쪽 바위는 습기가 많고, 바위에
난초과 식물로 보이는 착생식물들이 자라고
있어요. 박연 선생의 호가 난계(蘭溪)가 된 것도
이곳이 난초(蘭)가 자라는 계곡(溪)이기 때문.
옥계폭포의 높이는 대략 20미터 정도,
550미터 높이의 월이산(달이산)에서 시작된
물줄기가 금강으로 흘러가는 곳에 위치합니다.
여기서 금강을 건너, 산봉우리 하나를 넘으면
경부고속도로 금강휴게소가 나옵니다.
금강 휴게소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산 뒤편에
옥계폭포가 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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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의 자랑인 국악박물관과 난계 박연 선생에
대해, 그리고 양산팔경, 월류봉 등에 대한 글은
아래 링크에 있습니다.
♥ 영동 난계국악박물관 & 3대 악성 박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