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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광주광역시 충효동 왕버들 군락지

광주광역시 충효동 왕버들 군락지







광주 충장로는 김덕령 장군을 기리는 거리.

 "" 있어. 

2월 24일 토요일, 광주에서 대바기님 강연이 있던 날 

김덕령 유적지와 왕버들 군락지, 소쇄원, 명옥헌을 보고

연에 참석하려고 새벽 4시에 집을 나섰지만 

턱 없이 시간이 부족하네요. 왕버들 버들군락지와 

소쇄원, 환벽당, 취가정만 보고 강연장으로 갔죠. 



충효동 왕버들 군락지 





영산강으로 흘러가는 증암천 상류에 1976년 완공된 

광주호가 있습니다. 광주호 상류의 습지에는 버드나무 

군락이 있는데, 그 정점에 수령 440년으로 추정되는 

왕버들 3그루가 있습니다. 

덕령 장군의 탄생을 기념해 심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장군의 사후(1596년)에 심은 것으로 추정하면 

얼추 연대가 들어맞고, 마을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비보림으로 심었다는 기록도 있으니 근거가 없는 

이야기는 아닌 듯합니다. 







나무의 높이는 10미터 내외, 둘레는 8미터 정도.

비각에는 정조의 명으로 "충효비"를 세웠다는 

안내판이 있습니다. 안내판의 글은 비석 뒷면에 새겨진 

한문을 해석해 둔 것. 1789년 정조가 서유린에게 명해 

비문을 쓰게 했네요. 아래는 비문 요약...


 시기와 질투에 걸리지 않고 성공한 사람은 적다. 

 공은 의병을 일으킨 초기부터 이미 권력자들의 방해를 받아, 

 뜻을 품은 채 무기를 준비하였으나 하나도 써보지 못하였다. 

 그러다 마침내 터무니 없는 트집으로 죽고 말았으니 

 공을 악비(송나라 충신)처럼 죽게만 하였어도 다행일 것이다. 

 아! 하늘이 공을 낳은 것이 지사(志士)들에게 

 분통만을 남겨주고자는 것이었는가? (중략) 


 이제 성군의 덕화가 널리 나타나 숨겨진 일들이 모조리 밝혀져, 

 억울함이 벗겨진 것 중에서도 공은 실로 으뜸을 차지한다. 

 크고 두꺼운 비석에 대서특필하니 단청처럼 빛나고, 

 한 때 굽어졌던 일이 백세(百世)까지 퍼지게 되었으니, 

 공에게 무슨 슬픔이 있겠는가? 

 하늘이 공을 낳은 것은 이 우주에 충용(忠勇)을 불러일으키려 

 한 것이니, 어찌 공의 가문에만 영광이겠는가?

 충은 반드시 효에서 근본하나니, 공이 집에서 효도한 것이 바로

 나라에 충성하게 된 것이다. 

 더구나 형이 앞서 죽고, 아내가 뒤에 죽어 한 집안의 충렬이

 진실로 한 나라의 중히 여긴 바가 되었으니, 

 이것도 효도에서 나온 것이다. 

 마을의 이름을 충렬이라 하지 않고 충효라 한 것은 

 임금의 뜻이 이와 같았기 때문이다. 

  - 1789년(정조 13년) 삼월 





왕버들 뒤쪽 언덕 위에는 김덕령 생가 터가 있습니다. 

앞으로는 왕버들이 내려다 보이고, 뒤는 대숲에 둘러쌓인 곳. 

이곳에서 김덕령은 벼슬도 없고 가난했던 선비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나마 할아버지 형제 중에서 

재산도 넉넉하고 높은 벼슬을 했던 김윤제가   

, 덕령은 그 밑에서 

글을 배우며 종조부의 도움으로 살았다고 합니다. 


부풀려진 설화에 의하면 김덕령은 칼로 무등산 바위를 

자르고, 맨손으로 호랑이를 잡던, 장성과 남원을 휩쓸던 

천하장사였다고 하는데, 펙트만 모아보면 작고 다부진 

몸매에 힘과 재능이 넘치니, 공부 좀 한 달인 김병만???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는 그의 나이 25세쯤. 

친형 덕흥과 함께 의병을 모아 전주로 갔으나, 병환중인 

어머니로 인해 형만 남겨두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 옵니다.

다음 해 형 덕흥이 고경명, 조헌과 함께 금산 전투에서 

전사를 하고, 장남의 전사 소식을 들은 어머니도 

병세가 악화되어 돌아가셨죠.

덕령은 동생 덕보에게 3년 상을 맡기고, 상복을 입은 채 

의병을 모집하던 중 조정(분조)을 이끌고 담양에 온 

광해군에게 발탁되어 정6품 형조좌랑이 됩니다.

광해군은 그에게 익호장군(날개 달린 호랑이)이란 

군호도 붙여주었죠. 


덕령은 권율 휘하에서 곽재우 의병장과 함께 

영남 방어작전에도 참여하고, 이순신 장군과 함께 

수륙합동 거제 상륙작전에도 참여하며 

정3품 당상관으로 승진합니다. 

무과 정규 코스를 밟지도 않은 이가 관까지 

고속 승진을 하니 시기와 질투가 따라왔습니다.

집권 여당의 무능함을 부각시키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 


전라 총사령관 윤근수의 하인이 주인을 믿고 김덕령에게 

까불다가 사망합니다. 군졸을 죽인 죄로 체포 되었지만, 

군율에 따른 형벌이었기에 일단 석방.

다시 구속하려면 다른 일로 역어야 했죠.


1596년, 마침 부여에서 이몽학이 반란을 일으켰는데, 

진압 명령을 받고 출동했던 김덕령은 반란군이 섬멸됐다는 

소식을 듣고 철군했는데, 윤근수는 이 일로 꼬투리를 잡아요. 

허락 없이 철군한 이유가 이몽학과 내통했기 때문이었다고.

내란죄는 국가보안법 위반이라 혹독한 국문을 당했죠.

만 29세의 창창한 나이에 고문중 사망합니다. 

이후 부인까지 투신 자살을 했으니, 훗날 복권이 되며 

충장공의 시호를 받고, 김덕령이 태어난 마을이 

충효동이 된 것입니다. 




충효동 광주호 호수 생태공원








충효동 마을 버드나무 군락지에는 

산책하기 좋은 광주호 생태공원이 있습니다.








버드나무 군락지 사이를 산책할 수 있도록 

데크로 길을 만들었고, 중간 중간 호수 전경을 볼 수 있는 

전망대와 벤치를 두었습니다. 짧지만 버드나무군락에서 

메타세콰이어로 이어지는 길이 장관입니다. 




생태공원 입구에는 영국 챌시플라워쇼(정원박람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황지애 작가의 작품 2점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사진은 해우소라는 작품. 




환벽당
 









 

 

 

김덕령 생가가 있는 산 뒷편에 환벽당이 있어요.

환벽당은 나주 목사를 지냈던 김덕령의 종조부(할아버지 형제) 

김윤제가 자연을 벗삼아 후학을 양성하자며 세운 정자. 

14세의 송강 정철이 이곳에서 10년을 공부했고, 

송순, 양산보, 김인후, 기대승, 고경명 등 

당대 석학들이 드나들 던 곳입니다.

환벽당 현판은 훗날 송시열이 이곳을 방문해 서 쓴 것이라고. 


 

취가정 

 







 


환벽당에서 5분을 더 들어가면 취가정이 나옵니다.

벽당의 고풍스런 멋에 취한 후라면 

약간은 실망하게 될 정자. 박공 벽돌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실망이 시작됐는데, 알고 보니 한국전쟁 때 

소실된 것을 1955년에 중건했더군요.

중건하면서 비용을 줄이기 위해 벽돌 사용... 


송강 정철의 제자 였던 권석주가 어느날 꿈에 

술에 취한 김덕령 장군이 나타나 

이런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취할 때 부르는 노래여

 이 곡조 듣는 사람 없네.


 나는 꽃이나 달에 취함도 바라지 않고,

 나는 공훈을 세움도 바라지 않네.

 공훈을 세우는 것도 뜬구름이요

 화월(花月)에 취하는 것도 뜬구름이네.

 

 취할 때 부르는 노래여

 이 곡조 아는 사람 없네.

 내 마음은 장검(긴 칼)으로

 명군(임금)께 보답만 하고저 


이후 김덕령 장군의 후손이 무등산 자락이 보이는 

언덕위에 이 정자를 짓고, 권석주의 시를 따서 

"취가정"이라 이름을 붙였습니다.

 



 충장사





 


소쇄원을 둘러보고 광주 시내로 향하는 길, 

충장사를 두고 갈 수 없어 빠른 길을 버리고 

김덕령 장군의 묘와 사당이 있는 우회로로 달렸습니다. 

반역의 누명을 쓰고 죽었으니 묫자리가 좋았을리 없었겠죠. 

사후 378년이 지난 1974년, 이곳으로 이장을 했습니다. 


 

 

이장을 할 당시 유해와 유물이 완전히 썪지 않고 

남았다는데요, 유물관에는 당시 입었던 장군의 옷을 

복원한 것과 옷칠과 회를 발라 썩지 않았던 목관, 

그리고 장군의 친필 편지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친필 편지의 글씨체를 보니 글 좀 써본 솜씨예요.

거제 전투 당시 일본군을 포위한 상태에서 쓴 편지로 보이는데, 

구체적인 둔전 전략을 쓴 부분은 전시되지 않아 아쉽습니다.

지 내용을 해석한 부분이 있는데...


 거제도에 있는 적은 너무 완고하여 출전을 하지 않아

 정녕코 우리 군사의 계책을 흐리게 함이니

 우리는 배부른 것으로써 기아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둔전의 계책은 단연코 중지할 수가 없다.

 모름지기 여기 보내는 둔전 방략을 체찰사에게 

 잘 말씀 드려 속히 실시하도록 하여주면 심히 좋겠다.

 - 김덕령 ㅇㅇ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이 최초로 승리했던 전투가 

양주군 백석면에 있는 "해유령 전투"인데요, 

그 전투를 이끈 신각 장군도 누명을 쓰고 참수당했습니다.

곽재우 장군도 전쟁이 끝난 후 관직을 버리고 

산속에서 숨어지냈죠.

국난이 일어나자 먼저 도망을 갔던 선조와 집권 세력은 

성들의 신임이 두터운 의병장들을 두려워했습니다. 

명나라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화친을 제안하면서 

잠시 전쟁이 소강상태였는데, 이때부터 선조는 

의병장을 제거할 생각이 있었습니다.


도서관에서 빌려본 책이라 다시 자료를 찾지 못했지만, 

"선조실록"이었는지 "선조수정실록"??이었는지... 


"나라가 안정 되었으니 한 사람의 장수가 무엇이 

대단하겠습니까? 지금 처단해 뒷날 우환거리를 

없애야 할 것입니다." 라는 누군가의 조언을 받고 

김덕령 죽이기가 시작된 것으로 기억합니다.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는 이 대목을 이렇게 썼습니다.


 그 시대에 하늘이 냈다 생각되던 김덕령을, 

 타고났던 그 절세 용재를 나라를 위해 써보지도 못하고,

 삼일 밤낮을 무등산을 울리고 다듬어냈다던 그 삼척 장검, 

 두 허리에 차고 다니던 좌우 백근의 쌍철추를 

 한번 마음껏 써보지 못하고, 턱없는 이몽학의 모

 역에 참여하였다는 혐의로 몰아 때려 죽이고 만 것도

 이놈의 당파 싸움이다.

 못생긴 놈들이 인물이 조금 뛰어난 것이 보이면,

 저런 사람을 두었다가는 우리가 아무것도 못해먹는다

 하는 생각에 갖은 수단, 갖은 간계를 다하여 죽이고야 

 마는 것이 우리나라 지배계급의 버릇이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는 인물 기근에 빠졌고, 

 그것이 우리나라 형세가 점점 줄어들어가는 큰 원인이다. 


 선조는 이 파쟁관계로 태자 결정 문제 때문에 말년이 불행했고, 

 광해 때에 일어난 궁중의 여러 비극, 몇 차례 옥 사건, 임금이 

 폐위를 당하게 되는 모든 일이 다 이 얼크러진 파쟁 때문이다.

 이리하여 사회의 밑층에서 일어나려던 각성운동은 

 오래 된 고질 때문에 숨이 막혀버리고, 

 역사는 다시 지나온 바퀴 자리로 거꾸로 구르게 되었다.

 - <뜻으로 본 한국역사> 3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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