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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의인의 씨를 살린 사육신 - 노량진 사육신 묘

의인의 씨를 살린 사육신 

 

 

 

 

 

 

 

 

 

 

 

 

 

"이 비장한 사실을 한국 사람인 다음에는 반드시 알 필요가 있다.

차라리 셰익스피어를 못 읽고, 괴테를 몰라도 이것은 알아야 한다.

우리는 고난 중에도 살아 있는 한 얼을 보기 때문이다.

5천년 역사에 이 한 구절이 없으면 빛이 한층 떨리는 일이요, 

5백년 부끄러움의 시대에서도 이 사실이 있으면 

다 갚고도 남을 수가 있다."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사> 내용 중 일부입니다.

500년 조선사의 부끄러움을 갚고도 남을 사건이란 

단종 복위운동입니다.

 


세종은 소헌왕후 사이에서만 8명의 아들을 두었습니다. 

장남 문종(5대 임금) 밑으로 수양대군과 안평대군, 임영대군, 

광평대군, 금성대군, 평원대군, 영응대군이 있습니다. 

37세에 왕이 된 문종은 아버지(세종)의 죽음을 지나치게 

슬퍼하다가, 건강 악화로 2년만에 갑자기 세상을 떠납니다. 

영의정 황보인, 좌의정 남지, 우의정 김종서에게 12살의 

어린 아들 단종(6대 임금)을 잘 보필해 달라는 부탁을 남기고...

 

조카의 자리를 탐낸 것은 삼촌 수양대군입니다.

1453년 10월10일 수양은 기어이 일을 벌이죠. 

김종서 집을 습격해 그와 그의 아들을 먼저 죽인 후, 단종에게 

"김종서가 반란을 일으키려 해 죽였습니다. 갑작스런 일이라

미리 아뢰지 못했습니다."라는 거짓 보고를 합니다.  

그리고는 왕명이라면서 대신들을 궁궐로 불러들였죠.

대신들이 궁궐에 입궐하는 족족 블랙 리스트를 죽였으니 

계유년에 일어난 정치난동이라하여 "계유정난"이라 부릅니다. 

이 정난으로 동생 안평대군을 비롯해 단종과 가까운 

대신을 모두 숙청했습니다.

그리고 2년 뒤 단종을 상왕으로 앉히고 자신이 왕위를 

차지했으니, 그가 조선의 7대 임금 세조입니다. 

 

 

   

  성삼문과 백팽년
 

 

집현전 학사를 중심으로 단종 복위운동이 벌어집니다.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무인이었던 유응부와 

성승(성삼문 아버지)이 대표적인 주역이었고, 

1456년(세조2년) 명나라 사신을 환영하는 연회에서 

유응부와 성승이 별운검을 맡게 되며 D-Day도 결정되었습니다.

별운검이란 검을 차고 왕의 옆을 지키는 근접 경호원입니다. 

 

그러나 일이 묘하게 꼬이기 시작합니다.

연회 장소가 협소하다는 이유로 운검을 세우지 않기로 한 것.

갑작스런 변화에 예정대로 거사를 진행하자는 측과 

거사를 미루자는 측의 의견이 갈라지자 불안해진 김질이 

장인(정찬손)과 함께 세조에게 밀고합니다.

세조는 혐의자를 체포하고 직접 심문을 했죠.

 

성삼문은 불에 달군 인두로 살을 지지는 고문에도 허허 웃으며 

"철편이 식었구나. 다시 달구어 오너라" 하는 기개를 보여줍니다.

세조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끝까지 "나리"라고 불렀죠.  

열받은 세조는 성삼문이 자신을 왕으로 인정했던 증거를 찾아요.

세조 왈, "너는 그 동안 나한테 녹을 받아 (처)먹었다. 

상왕을 왕으로 모신다면서 네 잇속을 차린 것 아니냐?"

삼문이 대꾸하기를 

"나는 나리의 녹을 먹은 일이 없소. 내 집에 가보시오."

과연 성삼문의 집을 수색했더니 세조가 준 쌀은 

곳간에 고스란히 쌓여있었고, 지라는 직위임에도 

집에 거적 자리 하나뿐 가진 재산이 없습니다.   

다며  입에 대지 않은 것입니다.


박팽년도 세조를 "나리"라 부르며, 

세조가 준 쌀 역시 그대로 남겨두었습니다.

세조 왈, "너는 나에게 글을 올릴 때 신(臣)이라는 글자를 

쓰지 않았느냐." 하지만 그가 세조에게 보고한 글을 찾아보니 

"신하 신(臣)"자 대신, "클 거(巨)"자를 썼더군요.

세조는 자백하는 사람은 용서하겠다 했으나

유응부, 이개, 하위지 모두 용서를 거부합니다.

 

유성원은 모의가 발각된 후 아내와 술을 나눈 후 자결.

박팽년은 고문을 당하다 옥사했고, 성삼문, 유응부, 

이개, 하위지는 사지가 찢기는 거열형을 당합니다. 

모의에 가담했던 가족의 남자들은 모두 처형당했고, 

여자는 지방 관아의 노비가 됩니다. 

박팽년의 아들만 유일하게 살았는데, 유모가 자신의 아들을 

박팽년의 아들이라고 속여 유모의 아들이 대신 죽은 겁니다.

평소 박팽년의 인품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죠.  

하위지의 아들은 처형당하기 전에 자결을 선택했으니, 

어느 누구도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한 이가 없었습니다. 

함석헌 선생은 <뜻으로 본 한국사>에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육신(六臣)의 사명은 처음부터 성공에 있지 않고 죽는 데 있었다.

그들은 죽기 위해 뽑힌 것이다. 

실패의 원인은 김질의 배반도 아니요, 세조의 흉악도 아니다. 

하늘에서 허락 아니한다면 한개 김질이 어떻게 의인을 

죽일 수 있으며, 세조가 아무리 권세가 있기로 

충량을 어떻게 해할 수 있을까?

 

하나님은 육신을 정의의 제단에 제물로 작정하였던 것이다.

이 민족을 위하여 제물로 요구하였던 것이다. 

러므로 그들은 죽어야 했다.

죽어서 첫째는 한국을 위해 불의의 빚을 물어야 했고, 

둘째는 의인의 씨를 살려야 했다. (중략) 

 

육신(六臣)의 죽음은 세조와 그 무리가 지은 죄값이었다.

짓기는 세조가 지었는데, 왜 죄 없는 육신이 무느냐 

불평하고 싶지만, 역사의 책임자인 한국의 자리에 설 때, 

그 불평은 있을 수 없다. 

죄를 지은 것은 수양이 아니요, 한국의 이었다. 

세조는 사실 남을 죽인 사람이 아니라, 죽임을 당한 사람이다.

스스로 제 혼을 제가 짓밟은 것이다. 

그러므로 죄 없는 육신은, 한국을 위하여 값을 

대신 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들의 죽음으로 한국은 살았다. 

만일 한 사람도 세조의 잘못을 바로잡으려 하지도 않고, 

그리하여 한 사람도 죽지 않았다면, 한국은 전체로 죽었다. 

잘 패하고 잘 죽었다. 죽을 줄 모르는 이 민족에게도

죽을 줄 앎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사육신은 새남터(이촌동)에서 사지를 찢는 거열형을 당합니다. 

그 시기에, 누구도 시신을 수습할 수 없는 살벌함 속에서 

어떻게 강 건너 언덕 위에 사육신 묘가 조성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김시습이 머리 부분을 수습해 노량진에 묻었다는 설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전해지는 소문일 뿐 정확한 기록은 없습니다. 

시신을 수습하지 못한 백성들이 안타까워하다가, 

이 사실을 후손에게 알리고자 새남터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가짜 묘를 만들어 상의 추모 공간으로 

조성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사육신 묘의 비석에는 이름도 없습니다.

이름을 기록하면 문제가 생길 것같아 

성만 기록해 둔 것으로 보입니다.

봉분도 없다가 나중에 만들어진거라 합니다. 

 


 




 

이름도, 봉분도 없는 비석이 남아 있고, 

무덤 뒤쪽으로 기단으로 쓰이는 돌과 문인석 한 쌍이 

땅에 묻혀있는 것으로 보아, 뭔가를 조성하려던 

흔적은 있지만 정확한 사유는 모릅니다. 


 

 





 

원래 이곳에는 성삼문, 박팽년, 이개, 유응부의 무덤과 

산 위쪽으로 성삼문의 아버지 성승의 묘로 전해지는 

무덤이 있었다고 합니다.

1977년 사육신묘의 성역화 작업을 시작하며 이곳에 

하위지와 유성원의 가묘를 만들었고, 

김문기도 사육신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면서 

김문기의 가묘까지 포함해 총 7기의 봉분이 있습니다.

하위지, 유성원, 김문기의 비석을 보면 

나중에 만들어진 티가 납니다.



충남 논산의 백제군사박물관 근처에도 성삼문의 묘가 있어요. 

일설에 의하면, 반역을 하면 어떻게 되는지 백성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찢겨진 시신을 여러 지역으로 보내 

많은 사람들이 보도록 했다는데, 성삼문의 다리 한쪽을 

옮기던 사람이 논산 근처에서 도망을 가, 

백성들이 그곳에 다리만 묻어준 것이라고 전해집니다. 


노량진의 사육신 묘가 공식적으로 인정된 것은 

숙종 5년인 1679년이지요. 그로부터 13년 뒤인 

1692년(숙종 18년) 사육신의 제사를 지내기 위한 

충곡서원이 논산에 세워진 것을 보면 

근거 없는 소문은 아닌 듯합니다. 

 

 

 


 

사육신묘 입구에 들어서면 의절사라는 사당 입구가 보입니다.

 

 

 

 

사당 안에는 사육신의 위패가 모셔져 있고,

그 앞에 제를 지낼 수 있는 분향소가 있습니다.

분향소 왼쪽에는 방명록과 소감을 쓰는 책자가 있는데요,

록을 들쳐 보면 정말 많은 사람이 다녀갑니다. 


2017년 10월이 사육신이 순절한지 561 주년이 됩니다.

지금도 끊임 없이 방문하여 향을 피우고 묵념을 

올리는 모습을 보면, 비록 복위 운동에는 실패했지만, 

결국 역사의 승자가 되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차마 사진은 찍을 수 없었지만... ) 

비가 내리는 가운데, 성삼문의 묘 앞에 

한 여인이 헌화를 하고 기도를 하는 모습이 

감동적이고 아름다웠습니다. 56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이렇게 사랑받고 있네요. 








의절사 마당에 서면, 도심에 이런 곳이 있나 싶을 정도로 

고요하고 평화롭습니다. 자동차 소리도 들리지 않고요, 

고목에 가려 주변과 완전히 차단된 곳입니다. 

 


 

 

 


 

사당 왼편엔 신도비가 있고,

오른편에는 6각형의 사육신비가 있습니다.

6면에 육신의 이름과 그들이 쓴 글과 시조가 새겨져 있어요.

(이 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고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비문의 서체가 독특해 자료를 찾아봤는데요, 

서예가 소전 손재형(1902~1981) 선생의 글씨라고 합니다. 

에 있던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국내로 

들여오신 분이라 하는데, "소전체"를 검색하면 

많은 자료가 나옵니다. 

 



 

 



사육신 역사관은 늘 잠겨있는 듯.

전시물이 궁금한데, 열린 모습을 못 봤으니...  

 

 





역사관 뒤쪽에는 전망대가 있습니다. 

한강과 63빌딩이 정면에서 보이는 곳. 



사육신 외에도 단종복위운동으로 화를 당한 사람은 많아요. 

조정의 대신만 해도 권자신, 김문기 등 70여 명.

세조의 넷째 동생인 금성대군도 사육신이 처형당한 두 달 후, 

영남의 선비들에게 무력 시위를 하자는 격문을 띄웠다가 

귀양을 가서 살해당했죠. 


소수서원 옆 죽계천변에서 살해된 유생들도

이와 관련있는 듯하지만, 

기록을 찾지 못해 확인은 못했습니다.


(아래 링크의 글 참조)

http://www.purmi.com/sub/board/view.php?seq=1127357 



이시애의 난도 세조가 함경도 사람을 차별해서 

일어난 반란이었지만, 명분은 단종을 폐위한 

세조를 몰아내자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음에도 

여섯명의 육신만 떠올리는 까닭은, 생육신의 한 명인 

추강 남효온이 쓴 <육신전> 때문입니다. 

단종 복위운동을 주도한 70여 명 가운데 여섯 명의 행적만 

자세히 기록했으니, 자연스레 사육신만 부각이 된 것입니다. 



세조는 왕권을 강화하며 성군이 되려 노력했지만, 

이 일로 인해 두고두고 조선은 발목을 잡힙니다.

세조 때 세습 공신이 많이 탄생했죠.

유정난으로 공신에 오른 "정난공신", 단종을 제거하는데 

기여한 "좌익공신",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는데 기여한 

"적개공신" 등 140여 개 가문의 세습이 인정되었고, 

이들이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훈구파의 원조가 되요.

이에 대항하는 사림파가 형성되며 조선은 

기나 긴 당쟁과 사화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단종 복위운동의 실패로 집현전이 폐지되고, 출세와 

벼슬에만 욕심을 내는 문신들도 많아졌지요. 

560년이 지나도 크게 달라진 게 없으니 <뜻으로 본 한국역사>의 

아래 대목은 깊이 새겨둘만한 부분입니다. 


세종은 집현전을 세우고 인재를 기르며, 

충의 도덕을 가르쳐 나라의 기초를 세우려 하였다.

그러나 역사의 무너진 터를 깊이 파 헤치고, 자아의 바닥에 

이른 다음에 쌓아올리는 근본적인 작업을 했어야 할 것인데 

그러지 못했다.

그 집현전 학사란 것이 재주는 있고, 학문은 있었겠지만, 

자기를 깊이 파는 종교에 이르지도, 역사 이해에 이르지도 못했다.

그들은 아직 권력의식, 지배자 의식을 못 면하였다. 

그러므로 평상시에는 당당한 듯 하였으나 

수양의 한 마디에 몇 십년 공로가 맥없이 무너졌다.


다른 사람도 아닌 세종에게 아들 같은 사랑을 받았고, 

문종에게는 친구 대접을 받아 밤낮으로 학문을 토론하며 

손수 부어주는 술을 마시고, 취해 누우면 왕이 옷을 벗어 

덮어주었던 정인지, 신숙주, 최항의 무리가 그러하였다.

조로 하여금 단종을 내쫓아 영월로 귀양을 보냈다가, 

내 사람을 보내 죽이게 한 것이 정인지, 신숙주요, 

김종서를 죽이고 돌아올 때 앞서 나가 환영한 것이 최항이다. 

것이 집현전이다. 이것이 선왕지도다. 이것이 선비다.

이것이 마땅한 귀결이 아닌가? 중축이 부러진 것 아닌가?


세종이 유교 도덕을 그렇게 장려하지 않았던들

수양이 이렇게 쉽게는 못 해먹었을 것이다.

그렇게 악독한 일을 하고도 명군, 명신이란 말을 들으며 

역사 위에 버젓이 남아 있는 것은 그 유교 도덕, 

대의명분론을 빌려서 하는 것이다. 

선왕지도, 충의도덕, 삼강오륜이라 하지마는, 

그 모든 것이 다 속에 산 혼이 있고서 말이다. 

혼 하나 빠지면, 스스로 하는 정신 하나 빠지면,

충의도덕은 종놈이 지는 사슬이요, 삼강오륜은 

얽어매놓고 해먹는 도둑놈의 밧줄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증명이 되어야 하였다.


지은 집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까운 듯 하나 

그 안에 살 사람을 생각할진대, 

어서 이제 헐어버려야 앞날의 큰 화를 면할 것이다. 

수양의 일은, 국민 앞에 두고 이런 따위 겉꾸미기로는

역사를 바로잡지 못한다 하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었다. 

<뜻으로 본 한국역사, 259~260쪽,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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