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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영동 난계 국악박물관과 국악축제

영동 난계 국악박물관과 국악축제

 

 

 

 

 

 

 

 

 




충북 영동은 처형이 있어 자주 갔던 곳인데요, 

계가 틀어진 이후 영동을 못 간지 꽤 되네요.

  , 

동이 포도보다 국악박물관과 국악축제가 

더 유명하네요.

해마다 가을이면 난계 국악 축제가 열리는데, 

올해는(2017년) 9월 21일부터 24일까지 열린다 합니다. 

(가 보지 않은 축제와 박물관을 소개.... ㅠㅠ)

 

국악축제가 충북 영동에서 열리는 이유는 

영동이 "한국의 3대 악성"이라 불리는

난계 박연(朴堧) 선생의 고향이기 때문입니다. 

악성(樂聖)이라 하면, 음악의 성인이라 부를만한 

사람이라는 뜻인데, 누가 정했는지 모르지만 

3대 악성이라 하면 "우륵", "왕산악", "박연"을 꼽고 있죠.

과연 그럴만한 사람들인지 한 분씩 따져보겠습니다.

 

 

 

 



왕산악은 고구려 때 중국의 금을 개량해 

거문고(8줄)를 만든 분입니다. 우리 악기를 창조하고 

발전시킨 공으로 3대 악성의 명예를 얻었죠.

그가 연주를 하면 검은 학이 날아와 춤을 추었다고 하니, 

흑두루미도 인정한 연주 실력임에는 분명합니다. 

(두루미는 겨울 철새라 여름에는 우리나라에 없어요. 

두루미가 춤을 추었다니, 겨울에만 연주한 것으로... ㅎㅎㅎ)

 

 

 

 



우륵은 중국의 쟁을 토대로 가야금(12줄)을 만든 분입니다. 

가야국 임금인 가실왕이 중국의 쟁을 본따 만들었고, 

가실왕의 명으로 우륵이 가야금곡을 작곡해 바쳤다는 

기록이 있긴 하지만, 실제로 가야금을 만든 사람은 

우륵으로 보고 있습니다. (가실왕은 명령만 내린 후, 

우륵이 가야금을 만들어 오자 자신이 만든 것으로 

저작권 등록을 했을 가능성이 농후한 상황...)

가야국의 장래가 불투명하자 우륵은 가야금을 들고 

신라에 투항해 연주자로, 작곡가로 뮤지션의 길을 걸으며 

신라로부터 원조로 인정받았습니다. 

가야국에서 만든 악기라 가야금으로 불리게 되었다 하죠.  

 

 

 

 



국립 국악원에서 보관하던 박연 부부의 추상화인데요,

난계 박연은 고려 말에 태어나 조선초에 활동한 사람입니다.

어려서부터 대금 신동으로 불렸지만, 생활이 힘든 

뮤지션의 길을 포기하고 공무원 시험에 합격, 

세자시강원에서 근무하다가 당시 세자였던 

충녕대군(훗날 세종대왕)과 인연을 맺게 됩니다.

세자 때부터 박연의 음악 실력을 눈여겨 본 세종은 

왕이 되자 그를 음악을 총괄하는 악학별좌에 임명했고, 

이 때부터 박연은 세종실록에 자주 등장하게 됩니다. 

 

민간에서 행해지는 음악은 "향악"이라 하고, 

궁중 행사 때 연주되는 음악을 "아악", 

그리고 중국에서 들어 온 중국음악을 "당악"이라 했는데,

조선 초기만 해도 궁중 행사의 의전 체계가 잡히지 않아서, 

행사 때마다 향악과 아악, 당악을 섞어서 연주를 했습니다. 

요즘으로 비유하자면 청와대 공식 행사에서 클래식을 

연주하다, 뽕짝을 연주하다, 차이나 팝을 연주하게 되는 

이상한 상황인 것입니다. 

아악은 왕의 취임식, 왕의 행차(대취타, 길군악), 

세자 결혼식 등 잔치 외에도 조상 제사(종묘제례악), 

묘신, 사직신, 농사신(선농제), 양잠신(양잠제) 등에

제를 올릴 때도 사용했는데 공식 행사에 중국 음악이나

뽕짝을 연주하기에는 격이 떨어집니다.  게다가 악기도 

중국에서 들여 온 것이라 고장이 나면 고치기도 어려웠죠.


새롭게 개국한 조선에서 문물의 체계를 잡고 싶었던 

세종은      맡깁니다. 

악보를 정리하고, 악서를 편찬하고, 악기를 국내에서 제작하고,

뮤지션들의 복장을 맞추고 이들을 관리, 감독하는 일까지 

총괄하는 업무. 기획, 행정, 제작, 악서 편찬, 관리 등을 

다 맡았으니 그의 업적을 하나씩 보겠습니다. 

 

 

 

 
 

당시 중국에서 들여 온 악기가 오래 되어 

소리가 제각각이었다 합니다. 아악을 정리하고 악보를 정리한들, 

조율이 안 된 악기로 연주하면 꽝!! 당시까지 조율은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종도 그렇게 생각했죠.

 

 "율관을 고쳐 만드는 것은 박연이라 할지라도 

못할 것이다."(세종 9년 9월)

 

율관이란 악기의 소리를 조율하는 일종의 

피치(pitch pipe)입니다. 음의 높이는 진동수라는 

물리적 수치와 관련이 있지요. 예를들어 C음은  

512 헤르츠라는 고유 진동수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소리를 듣고 C음임을 감지한다면 우리는 그런 사람을 

절대음감이라 부릅니다.

대금 신동 박연은 절대음감이었죠(확인할 수 없지만...). 

우리나라에선 불가능하다 여겼던 율관 제작에 성공,

조선에서도 조율이 가능해 졌습니다.

 

 

 



조율이 모든 음악의 기본입니다.

율관으로 기준음을 잡을 수 있으니 타악기 제작이 쉬워졌죠.

하지만 편종의 경우 마땅한 옥돌이 없어서 국내 제작을 

못했습니다. 옥돌에 금이 가면 대체할 옥돌이 없어 

기와로 구운 와경을 사용했으니 그 소리는 들어보나마나 

충분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기왓장을 때려 보세요.).


하지만 생각의 한계였죠. 

국내 제작을 못한다 하니 찾을 생각을 안 했던 것입니다.

박연은 쓸만한 옥돌을 찾아 국산화에 성공합니다. 

편종을 국산화한 후 궁중 행사에 연주할 아악을 정리했죠.

에 세종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박연은 세상일에 통달한 학자라 할 수 있다." 

 (세종 10년 2월)

 
 "박연이 건의하여 아악을 쓰고 향악을 쓰지 말자고 청하므로, 

 내가 그 말을 가상히 여겨 이를 수정하라고 명하였더니

 박연이 오로지 이에 마음을 쓰고 힘을 기울이다가 

 병에 걸렸으니, 장차 그의 뒤를 이을만한 사람이

 누구이겠는가..." (세종 12년 8월)

 

처음엔 "박연이라 할지라도 못할 것이다" 라고 했다가

박연이 해내니 말을 바꿉니다. 보너스도 두둑히 챙겨주었죠.

에 걸리지 말라고 털옷도 하사하고, 출퇴근이 

편하라고 안장이 딸린 말까지 하사했다고 합니다.


비록 새로운 악기를 만든 것은 아니지만, 

악기를 국산화 했고, 음악을 정리하고, 악보를 만든 공로로 

3대 악성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박연의 등장은 더 큰 의미를 지녀요.

그 전까지는 '어떻하면 중국 음악을 완벽하게 연주할까?'에 

골몰했다면, 박연 이후 '어떻하면 우리 정서에 맞는 

음악을 만들까'로 생각의 전환이 일어난 것입니다.

론 초창기에는 중국 음악을 고집했다가, 중국과 

문자가 다르고, 서가 다른데, 음악도 우리 것이 

있어야 한다는(한글을 만드는 것처럼) 종의 고집에 

시작한 일이지만, 그걸 이룬 것은 박연이었습니다.

분히 악성으로 인정해 줄만 하지요.

 

조선의 음악사를 바꾼 박연도

피할 수 없는 아픔을 겪었으니 자식의 죽음입니다.

아들이 단종 복위 운동을 벌이다 세조에 의해 

처형당했는데요, 당시에는 4족을 멸했으니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 손자를 모두 죽였지만, 박연은 

3대에 걸친 원로이자 공로가 인정돼 사형은 면했습니다.

성현의 <용재총화>에는 쓸쓸히 고향 영동으로 내려가는

박연의 모습을 이렇게 그리고 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박연을 전송하러 강변까지 나온 친지들과

 배 안에서 조촐한 주연을 벌였다. 박연은 행낭에서 대금을 꺼내

 가로로 비껴들었다. 어려서부터 대금 신동이라 불리더니, 

 팔순 고령이라 믿을 수 없는 청아하고 애절한 가락이 흘렀다.

 손을 들어 보내기만 하여도 가슴이 아픈데, 가는 이가 스스로 

 슬픈 이별곡으로 흐느끼는 게 아닌가..."

 

매년 가을이면 박연의 업적과 정신을 기리는 

난계국악축제를 열고 있습니다. 아직 난계국악박물관도, 

난계국악축제도 가보지 못했지만, 관심은 늘 유지하며 

기회만 엿보고 있습니다. 


금산 IC쪽에서 들어가면 선녀들이 놀던 양산 8경의 

비경을 만날 수 있고, 무주에서 들가면 구천동 계곡과 

라제통문을 지나 영동군 학산면으로 들어서는데요, 

어느 곳으로 가든 드라이브 코스로 좋은 곳입니다.

가을의 시골 풍경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죠.

 

난계사 근처에는 조그만 옥계폭포가 있습니다.

이곳에서 박연이 대금을 연습했다 하여 박연(朴堧) 폭포로 

부르는 사람도 있는데, 진짜 박연(朴淵) 폭포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내에 있습니다.(한자가 달라요.) 


국악박물관에 가시거든, 펜플룻처럼 생긴 율관하나가 

조선의 음악을 만들게 된 토대가 되었다는 정도만 

알고 보아도 감회가 달라질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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