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한 엄마가 한없이 수렁에 빠져 있다가 이제사 정신을 차립니다. 아이를 다시 이해해보고자 질문해드립니다.

푸름이 어머니 아버지!
얼마전 서울 경기 모임서 따뜻하게 잡아주신 손 무척 감격스러웠습니다.

모임이 있을 때마다
뵈었는데 항상 꾸욱 참고 있다가(한없이 부족한 엄마임을 들키는 게 무서워) 이제사 여쭤봅니다.

14개월부터 책을 읽어주었는데 지금 29개월 지났습니다.
남자이인데, 자연관찰은 제 손으로 꺼내보질 않습니다.
특별히 좋아하는 책은 있지만 특별히 싫어하는 책이 없고
자기전에 엄마가 이거 읽어줄 책이야 하면서
70권을 쌓아놓아도 그걸 다 읽어야 자는 버릇이 있습니다,
책이 좋아서 안 자는 건지
안자고 싶어서 책읽는 건지.. 전 후자인 것 같습니다.

태교도 특별한 것 없었고
늦게 푸름이를 알았음에더 불구하고 책에 대한 욕심도 없이 아이가 원하는 만큼의 40% 정도만 간신히 읽어주었습니다.

안먹고 안자는 정도가 심하고
병원을 너무 자주 들락거렸고
육아를 전혀 못해줄만치 바쁜 남편 때문에

몸이 너무 힘들고 지쳐서였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밤잠도 없고 하루를 4번에 나눠서 자는데 총 수면시간이 8시간입니다.
얼마나 지치는지.. 모든 걸 포기하고 싶어서 아이를 마구 대한적도 많았습니다.

책은 하루에 잠들기 전 평균 3시간 정도 보는 것 같습니다.
일부러 책을 숨기고 주위를 산만하게 해서 책에서 떼어놓는 일도 많습니다.
책 읽어주기가 힘들고 싫어서요.
원하는 대로 읽어주셔야 한다고 하셨지만 전 그말이 너무 무섭고 싫습니다.
안그래도 안자는데
책앞에 앉으면 안자겠다고 더 떼를 쓰면서 더 신경질적으로 변하니까요. 책보면 정신이 더 맑아지는지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시간을 끌다가 결국에 울면서 불을 끄게 됩니다.
새벽에 4~5시에 자서 9시까지 자다가 또 5시간 놀고 2시간 자고 이런식이 되더군요.
밥도 안먹지.. 안 자지.. 전 정말 책이 싫습니다.

이렇게 억지로 떼어놓고
항상 엄마를 이길 수 없게 만들어서인지
이젠.. 엄마 10권씩 세번만 읽고 이렇게 약속하면서
그것 다 읽어주면 잠자려고 불을 제 손을 끄게 되었습니다.

여쭤보고 싶은 이야기는 지금부터입니다.


책도 많이 읽지 않았는데

아이가 너무 자기 주장이 강하다는 겁니다
육아메세지나 상담 코너에 있는 잠 안자고 예민한 아이에 대한 글을 모조리 읽었지만 혁이만큼 심한 아이는 없는 것 같아서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쭙니다.

제가 아이에게 너그러운 엄마는 결코 아니지만
정말 아이가 너무 너무 힘들게 해서 아이를 바라보고자 함이나 저의 어깨의 짐을 좀 덜어주세요.

총 7~8시간을 나눠자고 자면서도
주먹이 제대로 펴지질 않을 때가 많습니다.
손가락을 쉴새없이 만지작거립니다. 손으로 콧구멍 끝까지, 귓구멍 입.. 얼굴.. 자신의 팔 거리 안에 있는 제 몸을 모두다 파고 듭니다. 할퀴고(잠을 들듯말듯 온전하게 깨어 있는 상태가 아닌 무의식상태) 또 파고들고..
신생아때부터 내내 그랬습니다. 손을 걷어내면 잠이 깨어 우니까 내버려두다 보면 코피나고 온 얼굴이 상처로 따끔거립니다.
두어시간 그러다 잠이 듭니다. 그런데 잠들고부터는 꼭 주먹을 쥐고 힘이 들어간 채로 잠이 듭니다. 잘 안펴집니다.
신생아 때 한달 정도 입원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 아이는 극도로 불안상태일까요? 예민한 걸까요?

엄마인 제가 한 예민하지만 서너시간 연속으로 잔 적이 단 한번도 없으니 낮에 누워있으려하면 "엄마 자지마요. 책 가지고 올게." (아직 높임말이 서툽니다. 그래도 높임말을 끝에 '요'를 붙여야 한다고 스스로 터득했습니다. 가르친 적 없는데 이렇게 말을 시작했습니다.)
가면서 내내 뒤돌어 보며 확인합니다. " 엄마 눈떠봐, 그리고 크게 웃어봐 응?" 한 두 세번... 그러다 와서 엄마가 눈감고 있으면

"도대체 왜 잠을 또 자는 거예요? 아까 잤잖아요"

전 이말이 우습지가 않을 만큼 아주 많이 듣습니다.

조용하기만 하면 좀 무서운 듯 "엄마 잘 시간이예요?" 하고 묻습니다. 그 말이 나올까봐 두려운 것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아참 젤 무서워하는 말이
"엄마 자러간다"하는 겁니다.

성격은..
알아도 드러내는 것을 무척 부끄러워합니다.
그래서 말도 아끼더니 "엄마는 준혁이 목소리가 너무 듣고 싶어" 하고 이틀을 내내 간절히 말했더니,,
"엄마! 옆에 앉아봐" 그걸 시작으로 막힘없이 했습니다.

이런 성격을 가진 아이가
도대체 얼마나 자기 주장이 강한지
아무도 그 누구의 말도 들어보려 하지 않습니다.

배려로 키운 아이는 엄마의 말에 설득된다지요?
전 설득을 할 기회조차 없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처음보는 것들에 대한 설명을 해주려고 해도
듣지도 보지도 않고 "내가, 내가 할 수 있는데 엄마가 왜?"
"어 잘 안되네.." 그러다가 막 짜증을 냅니다.
어어,, 하면서 실망을 합니다.

문제 얼른 나서서 그때에 도와주려고 해도 싫다고 합니다. 무조건 첨부터 자기가 해서 엄마에게 잘 하는 걸 보여주고 싶은 건지..

방법도 모르면서 알려고 하지도 않고

왜 안된다고 실망을 하며 슬퍼하는 걸까요?

자리에서 일어서면 또 울기 시작합니다.
어떤 말이든 하려고만 하면 웁니다.. 징징징징~~~

도와주고 싶은 엄마맘을 몰라줘서 엄마는 너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고 혼내줬습니다.

"내가, 내가 할 수 있는데 엄마가 왜요?" 하고 말을 달고 사니까 뭐든 몰래하려고 하면 아이스크림을 먹다가도 자신이 해놓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려고 합니다. 다 녹아없어진 걸 또 슬퍼하면서.. 징징.. 징징


시금치 데치는데 1시간
밥하는데 30분.. 감자볶는데 1시간
소금도 마늘도 고춧가루도 자기가 원하는 만큼 넣어야 하고
모든 일을 자기가 해야 합니다.

저는 밥이 먹고 싶지도 않습니다.

불에 데인 곳이 한두군데가 아닌데도 또 나서고 나서고
도망가고 싶습니다. 물만 먹고 영양제만 먹이고 싶습니다.

꼭두새벽에 우렁이 각시처럼 해놓아도
자기가 아침에 요리를 하겠다고 울어서 또 팬에 볶아야 합니다.
이럴 때.. 저는 어찌 참아야 합니까?
바닥에 흘리고 쏟고 그걸 못참고 못 견뎌서 오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작업에 걸리는 시간과
아이팔과 손목, 손등 손가락에 데인 상처가 문제입니다.

요즘 그럴 개월 수(혼자하겠다고 떼쓰는)라고 흔히들 말합니다.
이런지 벌써 일년 넘었네요.. 반항기 시작과 함께..

화장실에서 제가 볼일을 볼 때도 자기가 휴지로 닦아주겠다고 합니다.
양치도 시켜준다고 합니다.
다시 제가 마무리하는 것 무지 싫어합니다.

불 켜는 것 끄는 것, 가스렌지 전자렌지.. 모든 전열기구..
휴지를 떼는 것.. 뚜껑을 따는 것 모두모두..
허락을 얻어 혼자 할 수가 없습니다.

왜 저의 간절한 설득이 통하지 않는 걸까요?
이대로 적당히 봐주고 전부 들어주고 반복하다 보면 통하는 날이 있을까요?

제발 제대로 자고 잘 먹으면 저는 둘도 낳고 셋도 낳아 기를텐데.. 왜이리 육아가 힘든가요?

조금 특별한 아이라 여기고
기분좋게 받아주는 엄마가 아니여서
여기 이런 곳에 글을 씁니다.
문제는 제게 있겠지요? 다 받아준다면야
언젠가 끝날 고민이기도 하겠지만 전 .. 아주 버거워요.

속 시원히
아이의 지금상태를 알고 싶어요
그럼.. 어깨가 가벼워질 거 같습니다.

충분히 배려깊게 사랑해주면.. 이라는 답을 저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사실.. 부끄럽습니다.

좀 더 나은 엄마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덧붙여..
두분 함께 서 계시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습니다.
언제나 언제나 건강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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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이 만세 님

아들의 이름이 혁이인가요?
혁이는 무척 뛰어난 아이일 가능성이 글 사이사이에서 느껴집니다.
다만 혁이만세님은 그렇게 뛰어난 아이가 어떤 특징을 가지면서 성장하는 지에 관한 지식이 부족합니다.
이렇게 영재성을 가진 아이들의 특성을 부모가 모르면 오히려 평범한 아이들보다 더 못한 성취를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한때 영재라고 알려진 아이들이 사라져가는 것은 사회뿐만 아니라 부모도 어떻게 이들을 키워야 하는 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이는 깊은 좌절감 속에서 절망하다 더 힘든 삶을 살게 됩니다.

요즈음 푸름이닷컴에는 너무도 뛰어나지만 부모의 의식이 아이를 따라가지 못해 고민하는 부모님의 전화가 종종 걸려옵니다. 다른 아이와 비교하면, 하는 행동이 특이하기에 걱정이 태산같지만 제가 볼 때는 오히려 영재의 전형적인 특징인 경우가 너무도 많습니다.
혁이처럼 이렇게 예민한 아이는 잠도 많이 안자고 잘먹지도 않습니다. 이것은 제가 푸름이를 키울 때 이미 충분히 경험한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아이가 잠을 안자기 위해서 책을 읽어달라고 요구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아이가 이세상에 태어날 때 자는 것보다 배우는 것이 훨씬 더 큰 기쁨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매슬로우의 욕구단계설에서 이미 알려진 사실입니다. 잠을 자는 욕구는 먹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위의 욕구로 이것은 충족되면 사라집니다. 그러나 배움에 대한 욕구는 최상위의 욕구로, 이것은 충족되면 될수록 더 많은 욕구를 불러일으키지요. 또한 배움에 대한 욕구는 충족될 때 두뇌는 훨씬 풍부한 대뇌 호르몬을 분비함으로써 그에 대한 보상을 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밤을 새워 책을 읽어달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어머님이 현명하게 행동하셨다면, 그리고 덜 지치시는 것을 원하셨다면 하루라도 빨리 한글을 가르쳐 혁이가 혼자서 책을 읽도록 만드셨어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 빠졌던 어머님들을 정말 많이 만났습니다. 저를 만났을 때 그 어머님들은 지치고 힘들어 눈물을 펑펑 흘립니다.
제기 이제 고비가 얼마있으면 지나가고 감사와 웃음으로 저를 대할 때가 곧 올거라 해도 그말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가면 예외없이 저에게 감사하는 전화가 걸려옵니다.

하루빨리 혁이에게 글을 가르쳐 자기가 마음껏 책을 보도록 하세요. 아이는 자고 싶을 때 자게 하고 먹고 싶을 때 먹게 하면 됩니다. 그렇게 깨작거리며 안먹던 푸름이도 이제는 하루에 여섯끼를 먹을 정도로 잘 먹습니다.
마음속 주저와 갈등에서 벗어나세요. 실질적인 행동보다는 주저와 갈등에서 더욱 많은 에너지가 소모됩니다.

아이의 주장이 강한 것은 또한 영재 아이들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지금 혁이는 자발성이 강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이 자발성은 뭐든지 자기가 하고자 합니다.
특히 발달이 빠른 아이들은 더욱 강해 자기가 할 수 없는 것을 무턱대고 자기가 먼저 하겠다고 우기고, 중간에 하지 못하면 징징대고 웁니다.
어느 때는 도저히 아이가 할 수 없는 것조차도 자기가 하겠다고 우기니 엄마가 무척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문도 자기가 먼저 안열면 안되고, 엄마가 무엇이라도 하나 옮겨 놓으면 그 자리에서 뒤집어지기가 다반사입니다.
이때는 엄마가 먼저 도와주면 안됩니다. 아이가 도와달라고 요청하기전에 먼저 도우려하면 아이는 자발성에 상처를 입고 더욱 엄마를 힘들게 합니다.
엄마는 그저 아이의 마음에 공감만 해주면 됩니다. 그리고 기다려야 합니다. '네가 이것을 혼자서 하고 싶었는데 그것이 안돼 마음이 안좋구나' 정도로 공감해주어야지 엄마가 설득하려하면 할수록 아이의 반발은 거세집니다.

아이가 불에 데이는 것은 엄마가 공감해주는 것이 부족한 결과입니다. 언젠가 예쁜쥴호수맘님의 20개월도 안된 호수가 의젓하게 전을 부치는 사진이 닷컴에 올라온 적이 있습니다. 아이의 욕구에 공감해주고 위험한 것을 자근자근 이야기한 후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면 그렇게까지 고집스럽게 주장하지 않았을 겁니다.
'제가 아이에게 너그러운 엄마가 아니'라는 혁이 만세님의 고백은 방항기의 전형적인 특징, 그리고 너무도 예민한 혁이의 반항을 1년 넘게 연장하고 있습니다.

진정 배려받았을 때 혁이는 엄마를 배려하는 분별의 힘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혁이 만세 님의 글에는 아이에 대한 진정한 신뢰와 믿음이 보이지 않습니다. 엄마는 아이에게 조건에 따른 사랑을 주고 있지 절대적인 사랑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이글이 혁이 만세님의 정신을 한단계 높이고 혁이를 키우는 즐거움에 몸서리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혁이는 뛰어난 아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