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공공재일까, 사적 소유물일까?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

정아은 저 | 천년의 상상

"아이는 공공재일까, 사적 소유물일까?" 

아이라는 존재가 성장하여 성인이 되었을 때 

지니게 되는 능력과 인품이 사회에 널리 퍼져 효과를 낼까, 

아니면 그를 키워낸 가족 내에서만 영향력을 발휘할까? 

<보이지 않는 가슴> 저자 낸시 폴브레에 의하면 아이는 공공재다. 

아이가 이 세상에 태어나면 그들의 능력과 자질로부터 

사회구성원 모두가 이득을 보기 때문이다. 

역으로 아이가 제대로 된 돌봄과 교육을 받지 못하면 

사회에 커다란 해악을 초래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는 부모의 노력을 인정하고 보상해야 하며, 

부모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할 경우 대신 부모 역할을 하여 

좋은 영향력을 발하는 공공재로 키워내야 한다. 

낸시 폴브레는 매사추세츠대 경제학 교수다. 

그는 자신을 '인간이 서로를 돌보는 데 들이는 시간과 

노력에 대해 연구하는 경제학자'라고 소개한다. 

한마디로 '돌봄 경제 학자'라고 할 수 있겠다. 그는 현대 

경제학이 인간이 이익을 추구하는 이기적 욕망만을 조명하고, 

그 욕망의 결과물만을 수치화하고 연구하는 현실을 비판한다. 

한 인간이 노력해서 성공적으로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그 인간의 배고픔, 추위, 외로움, 슬픔을 감싸 안아주고 토닥여줄 

'가슴'이 필연적으로 동반되는데 경제학은 그 부분을 

연구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인간을 키워내기 위해 수많은 돌봄 노동을 해내는 

'가슴'은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이 되고, 경제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처하게 된다. 금전이 최고 가치로 군림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기적 욕망에 충실한 이들이 경제적 보상과 

사회적 명예를 누리는 동안, 남을 돌보는 이타적 가치에 

충실한 이들은 최소한의 보상조차 받지 못하는 

약자가 되어버리는 역설이 발생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직장 생활을 한 비혼 남성과 아이 셋을 

길러낸 전업주부 여성의 예를 통해 설명한다. 

아이 없이 돈을 벌었던 비혼 남성은 은퇴 후 죽을 때까지 

두둑한 연금을 받게 된다. 그때 그가 받는 연금은 전업주부가 

길러낸 아이들이 일해서 번 소득에서 떼어낸 결과물이다. 

하지만 그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교육해 사회의 일꾼으로 

길러낸 전업주부는 비혼 남성과 같은 연령이 되었을 때 

아무런 사회보장을 받지 못한다. 남편에게 돌아가는 연금을 

같이 쓰지만, 자신이 그 연금의 공식적 수령자가 아니기 때문에 

남편에게 연금을 나누어 쓰겠다는 의지가 없거나 이혼하거나 

사별할 경우 온전히 그 연금을 수령할 수 없다. 

이는 경제학이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비시장 노동을 

가치있는 비용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민총생산, 주가지수, 실업률 같은 경제지수에 먹이고, 

입히고, 숙제를 봐주고, 보살피는 돌봄 노동은 포함되지 않는다. 

측정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것은 돌봄 노동만이 아니다. 

기업의 이윤을 위해 희생되는 자연환경도 통계 수치상에

기재 되지 않는다.

아주 오래된 삼나무가 캘리포니아 원시림에서

잘려 나갈 때는통나무가 팔린 액수만큼 GDP가 증가한다.

나무 자체에 체화되어 있는 자연 자원이나 생태학적으로

나무에 의존하고 있던 식물과 동물 종의 손실은 감안하지 않는다.

우리는 어머니 자연을 우리 자신의 어머니처럼 당연시한다.

이 부분을 읽는데 그동안 숱하게 들어왔던 말이 뇌리를 스쳐갔다.

어머니 자연, 무조건적으로 아이를 품는 어머니의 사랑,

짐승에게도 있는 절절한 모성,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려는 마음은 신이 여자에게 부여한 최고의 품성…

모성이 어째서 본성이라 불리는지, 어째서 여성이 아이보다

자기 일을 우선시하는 건 '이기적'이라 여겨지고

반대 경우는 '자연스러운 일'로 여겨지는지 알 것 같았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처음부터 구성 요소로 포함되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마음대로 공짜로 가져다 쓰되 그 가치는

인정해주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여성의 돌봄 노동과

자연자원은 쌍생아처럼 닮았고, 그 때문에 모성,

여성의관대함에는 당연하다는 듯 '자연스러 움'이라는

개념이 따라왔던 것이다.

<보이지 않는 가슴>은 경제학에 포함되지 않은 여성과

자연자원 같은 존재들이 경제학에서 소외된 연유를

학문적으로 차근차근 파고든다. 돌봄 노동이 제대로

보상받지 못함으로써 일어나는 현대사회의 문제를

수치와 과학적 방법론을 동원해 조목조목 따지고,

그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다.돈을 벌어 재산을 늘리겠다는

이기적 욕심 대신이타적 가슴을 선택한 사람들에게

보상은커녕 그들을 자신의의식주조차 조달할 수 없는

취약한 입장에 처하게 내버려둔 결과 어린이와 노약자에 대한

돌봄이 얼마나 큰 공백 상태에 빠졌는지 진단하고,

돌봄이라는 분야가 국가 차원에서 새롭게

조직 되어야 함을역설한다.

이 책은 두 아이의 엄마로 하루 대부분을

돌봄노동에 바치며살아온 자로서 오랜 세월 품어왔던

수많은 의문,다양한 망설임에 실마리를 제공해주었다.

나는 늘 생각했더랬다. 매일 반복되는 집안일을

언제까지 수행해야 하는가? 여기서 벗어나 나를 위한

뭔가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이런 생각은 매일 찾아왔고,

정해진 수순처럼 죄책감이 따라붙었다.

무엇이 더 중요한가?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지키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나는

한 인간의 인생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과연 최선의 길을

가고 있는 중인가? 이는 돌봄 노동을 당연히 여성의 몫인 양

여겨왔던 과거가 지나가고, 새로운 시대가 오는 길목에서

일생을 보내게 된 내게는 운명처럼 내정된 의문이었다.

바야흐로 돌봄 노동이 새롭게 조직되고 배분되어야 하는 때인 것.

시대정신의 큰 흐름이 바뀌었으나 국가와 사회제도는여전히

돌봄을 여성의 몫으로만 남겨두니, 개인이 아무리머리를

굴리고 가슴을 앓아도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은 건 당연했다.

돌봄의 전담자였던 여성의 자리가 비기 시작했는데

그 자리를 채워야 할 남성과 사회는 들어오지 않고 있으니,

그 상태를 나 몰라라 하면 아이들이 얼마나 광활한

진공상태에 빠지겠는가? 엄마인 여성이 하루에도 열두 번씩

가슴을 앓으며 자신의 인생과 아이의 인생을 놓고 한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상황은 모두 이런 시대 변화에서 비롯되는

비극이다.

이러니 사회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이구나.

이러니 제도와 정치에 손길을 뻗고 목소리를 내야 하는

것이로구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새 시대가저절로

도래하기만을 기다리다가는 내 눈에 흙이 들어오고 말 테니.

(중략)

경제학이라는 학문은 어쩌면 그렇게도 남성 중심적인가!

인간이 일구어온 모든 제도, 학문, 관습이 전부 '인간'을

'남성'으로 상정한 상태로 이룩되었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분야에서는 그래도 여성의 모습이 어떤 형태로든

얼씬거리기라도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경제학은 너무나 완벽하게 여성이라는 존재를,

여성이 행하는 노동을 무시해버렸다. 자연이라는 외부 요인은

'원료'라는 하나의 변수로라도 처리되지만 여성은

변수로도 취급되지 않는다.

돌봄 노동은 그저 언제나 공급되는, 공급하는 주체와 공급의

수혜자 간 관계나 갈등에 상관없이 24시간 무조건 제공되는

당연한 그 무엇일 뿐이다.

(102쪽~110쪽)

주부들에게 추천할만한 책입니다.

육아와 돌봄, 가사 노동이 경제학에서 소외된

경제적,역사적, 사회적 근원을찾아가는 책입니다.

저자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정아은님이 마르크스 <자본론>,

베블런의<유한계급론>,마리아 미즈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등사회과학서를읽고, 주부의 입장에서 풀어쓴서평집이라

소재가 딱딱할 뿐 어려운내용도 없습니다.

"말의 기원을 찾아가야 하고, 그 말이 나올 수 밖에

없었던사회의 작동 방식을 파헤쳐야 한다."는 저자의

말처럼, 사회의구조와 시스템에서해답을 찾아야 해요.

사회 구조의 문제를개인의 책임이나 노력 부족으로 돌리는

자기개발서나심리서로는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