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라 버스야
정현종 저 | 문학판
정현종 시인의 산문집에 나오는 글입니다.
크리슈나므르티를 번역하기도 했던...
명상'에 대해 말' 한다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기 쉽다.
명상이라는 심적 공간은 말이 끊어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명상에 관해 알려면 명상에 대해 쓴 글을
읽을 게 아니라 각자가 명상에 잠기는 길밖에 없다.
명상에 관한 말을 수없이 듣고 아무리 잘 알아 봤자 소용이 없다.
명상이란 지식이 아니라 실천이기 때문이다.
모든 말과 글은 자기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모든 이야기는 자기의 마음에 일어난 사건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필요가 있다.
그것은 마치 내 생각을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리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글을 쓰고 읽는다.
또 사람의 생각이란 늘 부족하기 때문에 좀 더 완전한
생각에 이르기 위해서는 서로 생각을 나누는 수밖에 없다.
우리는 말로써 이를 수 없는 것에 대해 많은 말을 해 왔다.
하느님이라든지 사랑, 진실, 아름다움 같은 것들이 그 예다.
명상도 마찬가지다. 말 가지고는 명상에 이를 수 없다.
더구나 남의 말을 통해서는 명상에 이를 수 없다.
마치 어떤 꽃을 그림으로 그리거나 소리로 표현하거나
또는 말로 그 색과 향기에 대해 묘사한다고 해도
그것이 그 꽃 자체는 아니며,
그 꽃의 아름다움 자체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아, 이 향기!' 해 봤자 꽃의 향기와 거리가 있으며
'오, 이 빛깔!' 해 봤자 꽃의 빛깔이 아니다.
그러니까 꽃을 따서 보여 주든지, 꽃 있는 데로
데리고 가서 거기다 코를 박아 주든지 해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하는 것은 매우 번거로운 일이다.
그러려면 인생이 지금보다 한 1천 배쯤 더 길어야 할 것이다.
말이라든지 상징 같은 표현 수단은 우리가 직접 가서
그걸보거나 냄새 맡지 않아도 그걸 알 수 있게 하는 통로,
말하자면, 간접적이지만 집약적으로 알게 하는 통로라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예를 들어 죽고 싶은 심경을
보여 주기 위해 누가 죽었다면 그건 난처한 일임에 틀림없다.
우리가 명상에 대해 말하는 것도
명상 자체를 보여 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건 명상에 대한 말일 따름이지 그게 곧 명상은 아니다.
명상은 다른 사람의 마음에 피는 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마음에 피는 꽃이기 때문이다.
아니 명상에 잠긴 마음이 곧 꽂일 것이다.
명상은 어떤 체제도 따르지 않는다.
그것은 끊임없는 되풀이도 아니고 모방도 아니다.
또 명상은 집중이 아니다.
집중이란 마음을 한 가지 생각에 고정시키고
다른 모든 생각을 몰아내는 것인데, 이것은 초등학생도
강제로 시키면 할 수 있는 가장 어리석고 추악한 일이다.
이것은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과 여러 다른 것들 속을 헤매는
마음 사이에서 우리가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그는 '집중(concentration)'이라는 말과
'주의 (attention)'라는 말을 구분한다.
말하자면 주의를 완전히 기울인 상태가 명상이다.
명상은 놀라울 만큼 기민한 마음을 요구한다.
즉 명상은 삶의 정체성(그 속에서는 모든 단편화가 중지된)에
대한 이해이다.
명상은 생각의 통제가 아닌데, 생각이 통제될 때
그것은 마음속에 갈등을 키우기 때문이다.
생각의 구조와 근원을 이해하는 것이 곧 명상이다.
명상은 모든 생각과 감정을 느껴 아는 것이며,
옳다든가 나쁘다고 말하지 않으면서 다만 그것(생각과 느낌)을
바라보고 그것과 함께 움직이는 것이다.
그런 관찰 속에서 우리는 생각과 느낌의 모든 움직임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알아차림으로부터 침묵이 나온다.
생각을 짜맞추는 데서 오는 침묵은 정체이고 죽음이지만,
생각이 그것 자체의 처음을 이해하고, 그 자체의 본질을 알고
어떻게 모든 생각이 자유롭지 않고 항상 넓은 것인가를
이해했을 때 오는 침묵이 비로 명상이다.
이 명상 속에는 명상자가 없는데,
왜냐하면 마음이 그것의 과거를 비웠기 때문이다.
명상은 모든 것을 완전한 주의력을 가지고 보는 것,
즉 그것의 일부가 아니라 완전하게 보는 마음의 상태이다.
그리고 아무도 어떻게 주의 깊어지는가를 가르칠 수 없다.
명상은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예술이며, 아무에게도 그것을
배울 수 없는데, 그 점이 그것의 아름다움이다.
그것은 기술을 갖고 있지 않으며 따라서 권위가 없다.
우리가 자신에 대해서 배우고 자신을 관찰할 때,
자기가 어떻게 걷고 어떻게 먹는지를 관찰하고,
자기가 말하는 것, 가십, 증오, 질투를 관찰할 때
그 모든 것을 아무 선택 없이 자기 자신 속에서 알아차릴 때,
그것이 명상의 일부이다.
그러므로 명상은 버스에 앉아 있거나 빛과 그림자로 가득 찬
숲 속을 걸어갈 때, 또는 새가 노래하는 걸 듣거나
가족의 얼굴을 바라볼 때 일어날 수 있다.
즉 모든 바라보는 것이 명상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명상을 이해하는 데에 사랑이 있으며 사랑은 체제,
습관, 방법을 따르는 것의 산물이 아니다.
사랑은 생각에 의해 심어 키워지지 않는다.
사랑은 아마도 완전한 침묵이 있을 때 존재하게 되는데,
그 침묵이란 그 속에 명상자가 완전히 없는 그런 침묵이다.
그리고 마음은 생각과 감정으로서의 그것 자신의 운동을
이해할 때에만 고요해질 수 있다.
이 생각과 감정의 운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관찰하는 데 아무 비난도 있을 수가 없다.
이런 방식의 관찰은 유동적이고 자유롭다.
(76쪽~79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