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경계>

켄 윌버 저 | 정신세계사

 있음과 없음은 서로를 낳아주고,

 어려움과 쉬움은 서로를 전제로 성립하며,

 길고 짧음은 상대를 드러내주고,

 높고 낮음은 서로에게 기대며,

 앞면과 뒷면은 서로 따라다닌다. 

 -노자 도덕경 2장

삶에 왜 대칭이 생겨나는지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는가? 왜 가치 있게 여기는 모든 것이 

한 쌍의 대칭 중 어느 한 쪽인 것일까? 

왜 모든 결정은 대칭 사이에서 일어나고, 

왜 모든 욕망은 대칭에 기초해 있는 것일까?

모든 공간과 방향이 대칭으로 이루어졌음을 보라.

위 / 아래, 안 / 밖, 높음 / 낮음, 긺  / 짧음, 남 / 북, 

큼 / 작음, 여기 / 저기, 꼭대기 / 밑바닥, 왼쪽 / 오른쪽... 

또한 당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모든 것이 

한 쌍의 대칭 중 한 극이라는 사실을 주목해보라. 

선 / 악, 삶 / 죽음, 즐거움 / 고통, 신 / 악마, 자유 / 속박.….

사회적, 미적 가치관도 성공 / 실패, 아름다움 / 추함, 

강함 / 약함, 지성 / 어리석음과 같이 언제나 

대립적인 용어로 진술된다. 

가장 추상적인 것조차도 그 기저에는 대칭이 있다. 

예컨대 논리학은 진실 / 거짓에 관심을 두며, 

인식론은 외관 / 실재, 존재론은 존재 / 비존재에 

관심을 두고 있다. 우리 세계는 거대한 대칭의 

집합체인 것처럼 보인다.

자연은 대칭의 세계를 인식하지 못한다. 자연은 

진실한 개구리와 거짓 개구리를 키우지 않을뿐더러, 

도덕적인 나무와 부도덕한 나무, 옳은 바다와 잘못된 

바다로 나누지 않는다. 

자연에 윤리적인 산과 비윤리적인 산은 없다.

아름다운 종(種)과 흉직한 종도 없다. 

적어도 대자연에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은 온갖 종류의 창조를 즐기고 있다. 

자연은 옳음과 그름을 알지 못하며, 따라서 인간이 

'오류'라고 생각하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물론 '대칭'이라 부르는 속성 중 일부는 

자연 속에도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예컨대 큰 개구리와 작은 개구리, 큰 나무와 

작은 나무, 익은 오렌지와 덜 익은 오렌지가 그러하다. 

그렇더라도 그런 차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것이 그들을 불안으로 몰아가지 않는다. 

똑똑한 곰과 둔한 곰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이 그들에게 걱정거리로 보이지 않는다. 

적어도 곰의 세계에서는 열등감을 찾아볼 수 없다.

자연 세계에도 당연히 삶과 죽음이 있다. 

하지만 그것 역시 인간세계처럼 끔찍하지 않다. 

늙은 고양이는 죽음이 임박해도 두려움에 휩슬리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웅크리고 앉아 죽음을 맞을 뿐이다. 

병든 울새는 나뭇가지에 편안히 앉아 황혼을 바라본다. 

그러다 더 이상 빛을 보지 못하게 되면 

마지막으로 눈을 감고 조용히 땅에 떨어진다. 

우리 삶은 경계를 설정하는 일에 쓰이고 있다. 

우리의 결정과 행위, 말은 경계선 구축에 기초해 있다. 

결정한다는 것은 선택하는 것과 선택하지 않은 것 

사이에 경계선을 긋는 일을 의미한다. 무언가를 

욕망한다는 것은 쾌락적인 것과 고통스러운 것 사이에 

경계선을 긋고, 둘 중에서 쾌락을 추구한다는 뜻이다. 

어떤 관념을 주장한다는 것은 진실이라고 느낀 개념과 

진실이 아니라고 느낀 개념 사이에 경계선을 긋는 일이다. 

사법체계는 규칙을 따르는 사람과 따르지 않는 사람 

사이에 경계선을 긋는 일이다. 전쟁을 한다는 건 

우리 편과 적 사이에 경계선을 긋는 일이다. 

윤리학은 선과 악의 경계를 배우는 일이다. 

의학은 질병과 건강 사이에 경계를 설정하는 일이다. 

작은 일부터 중대한 위기까지, 사소한 선택부터 

커다란 결단에 이르기까지, 가벼운 호감부터 불타는 

열정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삶은 경계를 설정하는 과정이다.

경계가 기묘한 점은, 그 경계가 아무리 복잡하고 

세련된 것일지라도, 실제로는 안쪽과 바깥쪽이라는 

'구분' 이외에는 별다른 요소가 없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원을 그려보면, 그 경계가 오직 

안과 밖만을 나타낸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대칭을 만들어낸 것은 경계선 그 자체이다. 

한마디로, 경계를 긋는 순간 대칭이 만들어진다. 

우리가 대칭의 세계에 살고 있는 이유는 

우리의 삶이 곧 '경계선 긋기’ 과정이기 때문인 것이다. 

대칭의 세계란 갈등의 세계다. 

경계를 확고하게 다질수록 전쟁터 역시 점점 더 

확고하게 된다. 쾌락에 집착할수록 고통은 더 두려워진다.

선을 추구할수록 악에 대한 강박은 더욱 더 강해진다. 

성공을 추구할수록 실패를 더 걱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삶에 집착할수록 죽음은 더 두려운 것이 된다. 

무언가에 가치를 둘수록 그것의 상실이 두려워진다. 

다시 말해,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들 대부분은 

경계가 만들어낸 문제라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대칭 중 

어느 하나를 근절시키려는 시도였다. 

문제는 경계를 '실재하는 것’으로 받아들인 이후에, 

경계에 의해 만들어진 대칭을 조작하려는 데 있다. 

우리는 그 경계 자체를 결코 의문시하지 않았다. 

대칭은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다. 

긍정을 강조하고 부정적인 것을 제거하려는 과정에서, 

긍정이 부정에 기초해 규정된다는 사실을 망각한 것이다. 

밤이 없이는 낮도 알아볼 수 없다. 부정적인 것을 

파괴하려는 시도는 동시에 긍정적인 것을 

즐길 가능성도 파괴하는 결과를 낳는다. 

결코 '분리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사는 행위와 파는 행위는 단지 한 사건의 양극, 

즉 단일한 거래 행위의 양끝에 지나지 않는다. 

그 둘은 단일한 사건의 서로 다른 표현일 뿐이다. 

모든 대칭은 암묵적인 동일성을 공유하고 있다. 

양극의 차이점이 아무리 생생하더라도, 

그 양극은 어느 쪽도 다른 쪽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세상에 밖 없는 안, 아래 없는 위, 패배 없는 승리, 

고통 없는 쾌락, 죽음 없는 생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원인 / 결과, 과거 / 미래, 주체 / 객체 같은 모든 

사물과 사건이 실제로는 단일한 진동, 

단일한 파도의 마루와 골에 해당한다. 

파도는 그 자체로 단일한 사건이지만 마루와 골, 

최고점과 최저점이라는 대칭을 통해 자신을 드러낸다.

골과 마루는 '하나의 현상'이다. 분리불가능하다.

밝은 별과 어두운 배경의 대비가 강렬하더라도, 

어느 하나가 없으면 다른 것을 지각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안락함 없이는 수고로움을, 단순성 

없이는 복잡성을, 혐오감 없이는 매력을 지각할 수 없다. 

고통과 관련짓지 않고는 쾌락을 인식할 수 없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아주 편안하고 즐겁더라도, 

불편함과 고통이라는 배경이 없다면 그것을 알 수 없다. 

따라서 한쪽을 좋아하고 다른 쪽을 싫어하더라도 

그 둘을 고립시키려는 시도는 쓸데없는 것이다. 

대립하는 양극을 떼놓으려고 애쓰면서 소위 

고통 없는 쾌락, 죽음 없는 생명, 악 없는 선에 집착할 때, 

우리는 실재 없는 유령을 쫓는 꼴이 되고 만다.

(45쪽~62쪽 요약) 

동전의 앞면과 뒷면은 분리할 수 없어요. 

뒷면이 존재하지 않는 앞면도 없습니다. 

동전을 반으로 쪼개면 또다시 앞면과 뒷면이 나오죠. 

자석의 N극을 반으로 쪼개면 다시 N극과 S극이 생겨요.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생기는 것처럼, 대칭이 되는 속성은 

상호 보완적이라 뒷면이 있어야 앞면이 존재할 수 있어요.

엑셀레이터가 없으면 차가 달리지 못하고, 

브레이크가 없으면 차가 멈추지 못합니다. 

운전자가 이 둘을 조절하고 통제하며, 둘의 

상호작용에 의해 안전한 운행이 가능한 것입니다

긍정을 선택한다 해서 부정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듯, 

부정을 없애려는 노력은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를

만드는 것과 같아요. 

궁극의 실재는 경계가 없으므로

대칭은 하나(일원론)로 봐야 한다.

정신세계사판 번역서에는 "대극"으로 번역했으나

이해하기 쉽게 "대칭"으로 바꿔서 올렸습니다. 

반야심경의 내용도 무경계와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