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질환으로 보는 자아의 근거
<나는 과학책으로 세상을 다시 배웠다>
최준석 저 | 바다출판사
코타르 증후군 환자 일부는 자아를 부정한다.
"내 뇌가 죽었다"고 말한다. 뇌의 일부 조직이 손상돼
자기 몸에 대한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 경우
이런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
'살아 있는 시체'요. '관에 들어갈 날만 기다리는 사람'
같다고 이 환자를 돌본 신경의학자들은 말한다.
이들은 자살을 시도하지는 않는다.
죽었다고 생각하니 자살할 이유가 없다.
다행히 이 병은 매우 드물고, 증상도 오래가지 않는다.
신체통합정체성장애는 내 몸의 경계선이
어디인가에 관해 생각하게 만든다.
이 질환은 '환상지' 혹은 '환상사지'라고도 한다.
이 증후군을 앓는 사람들은 분명 자신의 팔다리인데,
자기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남의 다리가
자신의 몸에 붙어있는 느낌 같다는 것이다.
이물질이 달려 있으니 불쾌하고 고통스럽다.
반대 경우도 있다.
팔다리가 없는데도 붙어 있는 걸로 착각하는 증후군이다.
이 증후군을 오래 앓았고, 몸의 일부를 잘라내고 싶은
강박증으로 평생 괴로워하다가 아내에게 고백한 남자가 있다.
이 미국인은 끝내 자신의 다리 대퇴골 아래를
잘라내는 수술을 하고야 말았다.
그는 "다리를 잘라낸 걸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난생처음 몸이 온전함을 느꼈다.
신경학자 라마찬드란은 '환상지' 연구로 이름이 높다.
그는 팔다리 일부가 자기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실제 몸과 뇌 속의 신경지도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냈다.
조현병 환자는 스스로 간지럼을 태울 수 있다.
보통 사람은 자기 손으로 자기 몸을 간지럽게 하지 못한다.
내 손, 내 몸을 내가 만지는데 무슨 특별한 느낌이 있겠는가?
너무 당연한 느낌이 조현병 환자에 오면
뚜렷한 자아의 경계를 보여주는 특징으로 다가온다.
나와 외부 세계의 경계를 모르면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조현병 환자 대개가 간지럼을 스스로 태울 수 있다는 것은
자기 행위와 그게 아닌 걸 구분하는 능력이 없다는 말이다.
조현병 환자는 외부 소리와 자기 목소리를 구분하지 못 할 수 있다.
건강한 사람은 자기 목소리는 작게 듣고,
외부 세계 소리는 잘 듣게 되어 있다. 나보다는
외부 소리에 예민해야 자신을 지켜낼 수 있기 때문이다.
조현병 환자는 환청, 환각과 실재를 구분하기 힘들다.
이인증(depersonalization) 은 내 생각과
신체 감각이 내 것으로 느껴지지 않는 경우다.
생명이 극단적인 위협에 처했을 경우, 고통을 덜 느끼기 위해
이인증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일부 학자는 일시적인
이인증은 극한 위험에 진화적으로 적응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인증이 진화적 적응이라면, 우리 모두는 자기 자신이
낯설어지는 능력을 타고난다는 이야기가 된다.
다급하면 내 자신이 나에게 등을 돌린다.
알츠하이머는 익숙한 병이다.
자기 이야기를 더 이상만들어내지 못한다.
기억을 망가뜨려, 끝내 사람을 무너뜨리고 만다.
좀비가 되는 병이다.
신경학자 루돌프 탄지는 알츠하이머병은 인간으로서 내가
누구인가를 규정하는 그 경계를 뜯어내 버린다'고 말한다.
이때 파괴되는 것은 '서사적 자아'다.
알츠하이머는 기억 관련 신경망을 공격한다.
해마와 내후각 피질을 포함한 중앙측두엽의 구조다.
알츠하이머는 이 지점을 기반으로 파괴의 행진을 시작하고
끝내 환자에게서 일관된 '서사적 자아'를 구성하는 능력을
지워버린다. 환자는 자기 이야기 중 가장 회복력이 좋은
부분으로 물러난다. 치매에 걸린 사람이 최근 이야기는
기억하지 못하고, 옛날 기억은 또렷이 하는 게 바로
이 때문인 듯하다.
이런 자아 관련 질환을 접하니 자아란 무엇이며,
나와 남의 경계란 어디이고, 그 구분은 어떻게 정해지는지,
그 미묘함에 감탄하게 된다.
라마찬드란은 자아 관련 특징을 통일성, 지속성,
신체화, 프라이버시, 사회적 수용, 자유의지, 자기인식 등
7가지로 정리한다.
아난타스와미가 책에서 소개한 8개의 질환이
자아의 이런 측면들을 드러냄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사람이 스스로를 한 명의 인간으로 느끼는 것이 통일성이다.
통일성이 깨지는 게 조현병, 다중인격장애 , 유체이탈이다.
지속성은 한 사람의 정체성이 기억을 갖고 지속됨을 느끼는 것이다.
'신체화 embodiment'란 신체 소유감이다. 몸속에 들어 있는
느낌이며, 신체화와 관련된 질병은 신체정체성통합장애이다.
프라이버시는 자아가 내면과 외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구분하는 감각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게 무너지면 무엇이 내목소리인지 남의 목소리인지
구분이 안 되는 환청에 시달릴 수 있다.
사회적수용은 사회 환경과 연관 속에서 정의해본 자아의 특징이다.
나의 희로애락 등 감정은 모두 남과 연결되어 있다.
자유의지는 자기 행동은 자기가 일으킨다는 생각이다.
예컨대, '외계인 손 증후군'을 앓는 사람은 손이 자기 의지와
따로 논다.
자아인식을 못하는 사람은 <나는 죽었다고 말하는 남자>
첫머리에서 접했다. 코타르 증후군 환자는 자신이 죽었다고 믿고 있다.
라마찬드란은 7가지 특징이 자아를 튼튼하게 한다고 말한다.
그는 자아를 7가지 다리를 가진 탁자에 비교한다.
자아라는 이름의 탁자는 7개 다리 중 하나쯤 없어도
여전히 설 수 있지만 다리가 없어지면 없어질수록 안정감을 잃는다.
(163쪽~168쪽 요약)
자아상이 확고하지 않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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