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중간쯤 세찬 비가 내리던 날, 나는 숲으로 갔습니다.
비는 더더욱 세차게 내려서 숲에는 온통 이제까지는 볼 수 없었던
물줄기가 생기고 길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나는 밤이 깊어도 골짜기에서 내려올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열이 나기 시작했던 나는 다음날 거대한 침엽수
밑동 구멍 속에 쓰려져 있다가 마을의 소방단 아저씨들에게
구출되었던 것입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열은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이웃 마을에서 온 의사 선생님이(나는 꿈 속에서 일어난 일처럼
그의 말을 듣고 있었는데) 더 이상 치료할 방법도 약도
없다고 하면서 돌아가버렸습니다.
어머니만이 희망을 잃지 않고 나를 간병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깊은 밤중에, 열도 계속되고 쇠약해져있었지만,
열풍에 휩싸인 꿈의 세계에 있는 듯한 상태에서
완전히 눈을 뜨고 머리가 맑아졌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나 자신도 이상하게 여겨질 만큼 느릿느릿하고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았습니다
- "엄마, 난 죽는 거야?"
- "난 네가 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죽지 않도록 기도하고 있어."
- "의사 선생님이, '이 아인 죽을 겁니다. 더 이상 어쩔 수 없어요'
하고 말씀하셨는 걸, 그렇게 들렸어. 난 죽을 건가봐."
어머니는 잠시동안 가만히 계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 "네가 죽더라도 내가 또 다시 널 낳아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그치만 그 아이는 지금 죽는 나와는 다른 아이가 아닐까?"
-"아니야. 똑같아. 내 몸에서 태어나서
네가 이제껏 보고 들었던 것들과 읽은 것,
너 자신이 해왔던 일들 모두를 새로운 너한테 이야기해줄 거야.
지금 네가 알고 있는 말을 새로운 너도 사용하게 될 테니까
두 아이는 완전히 똑같아지는 거야."
나는 뭐가 뭔지 잘 몰랐습니다.
그렇기는 해도 정말 마음이 안정되어 다시 잠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부터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 오에 겐자부로, <나의 나무 아래서> 14~15쪽
오에 겐자부로의 어린시절 이야기를 쓴 책.
뭔지 모를 엄마의 말에서 오에 겐자부로는 "지속성"이란
개념을 간직하며 살 게 된 것으로 보여요.
이어지는 글에서도 이 개념은 계속 나옵니다.
계속한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학교에 가서 공부하는 것은,
어른이 되지 못하고 죽은 아이들의 말을 비롯하여 그 전부를
자기 속에서 계속해서 나아가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잇는다”고 말해도 좋겠군요. 자기의 의사로 계속해서
나아간다는 것이 '잇는다'는 것입니다. 나 자신을,
어른이 되지 못하고 죽은 아이들과 잇는 것도 그 하나입니다.
나는 아이였을 때에 스스로 시작한 일을 이어나가자고 생각하고,
지금까지 계속해서 공부하고 일해왔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이 때부터 어른이 되기까지,
자기 안의 '인간’은 서로 이어져 있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 한 사람 안의 '인간'이 일본인의,
그리고 인류 전체의 역사와 이어져 있다는 것이겠지요.
나의 어머니는 이것을 나에게 가르쳐주었습니다.
(116~117쪽)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은 생명이 시작된 36억년 전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생명의 끈이 이어져 왔기에 가능한 것.
그리고 생명이 탄생한 36억년 이후, 나와 동일한 DNA의
소유자가 한 번도 태어난 적이 없었던 유일무이의 고유한 존재.
인간은 "실존(Be)이 본질에 앞서 존재"합니다.
즉, 목적이 있거나 무엇이 되기 위해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부모와 환경이 결정된 상태에서 태어나고(존재하고),
그 후에 본질이 만들어진다는 뜻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Be)를 규정하면, 그 생각에 따라 어떤
행동(Do)을 할지가 정해지고, 이에 따른 결과 (Have)로
내가 만들어지는 것이죠.
미래를 알 수 없기에 불안하지만,
그렇게 때문에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게 됩니다.
하루 하루의 평범한 일상이 개인의 미래를 결정하고,
그들이 모여 인류의 미래가 결정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