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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여주 명성황후 생가

조선왕조 500년의 끝자락, 망국의 역사








조선 숙종 때, 여흥 민씨 집안에서 왕비가 배출됩니다.

장희빈과의 갈등으로 유명한 인현왕후 민씨입니다.

장희빈과의 오랜 싸움으로 심신이 지쳤던 민씨 집안은 

이후 벼슬에도 나가지 않고 조용히 지냅니다.

상처를 치유하고 마음을 달래줄 시간이 필요하지요. 


그로부터 185년이 지난 후, 여흥 민씨 집안에서

다시 왕비가 배출되었으니 명성황후 민자영입니다.

민자영의 아버지 민치록은 벼슬에 나가지 않았고

5대 조상이자 인현왕후의 아버지였던 민유증의 묘를 관리하다가,

8세 외동딸 민자영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납니다.

고아가 된 민자영은 한양으로 올라가 

인현왕후가 살던 안국동 할머니 집에서 함께 살게 되었죠.


1863년, 철종이 33세의 젊은 나이로 승하하고 고종이 왕위에 오릅니다.

안동 김씨의 세도에 질렸던 고종의 아버지 흥선 대원군은

외척이 득세할 수 없는 몰락한 가문에서 며느리를 찾던 중, 

부모 없이 할머니 댁에서 크던 민자영을 선택합니다.

이때가 1866년, 민자영이 16세, 고종이 15세 되던 해였습니다.








명성황후가 태어났던 여주 생가입니다. 

인현왕후의 아버지 민유증의 묘를 관리하기 위해 지었던 집으로 

이 집에서 150미터쯤 떨어진 곳에 민유증의 묘가 있습니다. 

한 때는 병조판서와 호조판서를 지냈고, 왕의 장인이기도 했으니,

비록 규모가 작은 집이지만, 종이품 이상의 벼슬만 세울 수 있었던 솟을 대문이 있고,

행랑채와 중문, 안채가 갖춰진 전형적인 양반가입니다. 







생가 왼쪽으로는 민속촌 분위기의 초가 몇 채가 있고,

초가를 지나면 사대부 집안의 저택 "감고당"이 나옵니다.

명성황후 민자영이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할머니와 함께 살던 집입니다.






감고당이 원래 있던 위치는 안국동이었습니다.

인현왕후가 장희빈에 의해 왕비에서 쫓겨나 살았던 집으로,

왕비로 복귀하며 숙종이 새로 지어준 집이라고 하지요.

지난 일을 회고하니 감계무량하다 하여 "감고당"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감고당은 안국동 동덕여고 자리에 있다가 쌍문동으로 이전했고,

쌍문 고등학교 신축공사로 인해 헐릴 위기에 있던 것을 

여주시에서 사들여 생가 옆에 복원해 둔 것이라고 합니다.

집의 팔자도, 그곳에 살던 사람의 팔자도 드센 편이었지요. 

불행을 예고하듯 감고당에 살았던 민자영도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

왕비가 된 이후의 명성황후는 그리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인 고종은 궁인 이씨를 총애하며 아들을 낳았습니다(완화군).

시아버지 대원군이 완화군을 세자로 삼으려하며 갈등이 시작되었죠.

결혼 5년 만에 첫 아들을 낳았지만 나흘만에 죽고 맙니다.

아들이 죽은 이유를 둘러싸고 대원군과 첨예하게 대립하다가,

1874년 다시 낳은 아들(순종)이 세자가 되면서

시아버지와의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됩니다.


1 라운드, 명성황후의 선제 공격

서원철폐, 양반 특권제한, 경복궁 중건 등 왕권 강화를 위한 대원군의 정책에

불만이 일어나자 명성황후는 유림들을 앞세워 대원군을 하야시킵니다.

그리고 민씨 집안의 대가 끊기는 것을 막기 위해

양자로 들였던 21세 연상의 오빠 민승호를 등용하지요.

병조판서이자 대원군의 처남이기도 했던 양오빠 민승호가

1874년 폭약이든 우편물을 받고 사망합니다.

암살의 배후 인물로 대원군이 거론되었으니 1 라운드는 무승부


2 라운드, 난타전

오빠를 잃은 명성황후는 민겸호, 민규호, 민영익, 민영목, 민영위,

민영준, 민영규, 민영상 등 민씨 집안 사람들을 대거 등용하여,

대놓고 대원군을 견제하며 친정 정치에 돌입합니다.

이 시기 민씨 형제들은 나라의 이권을 서구 열강에 팔아 막대한 부를 축적하지요.

이것이 문제가 되어 표출이 되기 시작한 것은 군대 조직. 

민씨 형제가 신식군대인 별기군을 장악하자 구식군대의 불만이 하늘을 찌르고,

대원군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구식군대를 자극해 임오군란을 일으키지요(1882년).

깜짝 놀란 명성황후는 훈련대장 홍계훈의 등에 업혀 충주 산속으로 피했고,

대원군은 명성황후가 사망했다며 국장을 선포합니다.

막장의 난타전이었지만 한 번씩 치고 받았으니 2라운드도 무승부.


3 라운드, 둘 다 퇴장!!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의 장례식을 치를 순 없었지요.

명성황후는 청나라에 도움을 요청, 청나라가 대원군을 납치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싸움에 외국이 개입했으니 명백한 반칙이지요.

동학혁명이 일어나자 명성황후는 청나라에 파병을 요청했으니 

옐로우 카드 두 장이면 퇴장감입니다.


텐진조약에 의해 청나라 군대가 우리 땅에 들어오면

일본 군대도 우리 땅에 들어올 수 있었지요. 

결국 일본의 군대가 우리 땅에 들어올 명분을 주었습니다.

1894년 7월 23일 일본군은 아무런 저항 없이

우리 땅에 들어와 경복궁을 무력으로 점령을 했고,

이틀 뒤 선전포고도 없이 청군을 공격, 청일전쟁이 발발하게 됩니다. 


청나라와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김홍집 내각을 세우고 갑오개혁을 진행하지요.

민씨 형제들은 유배를 당하고, 대원군도 마포 공덕동 별장에 유배됩니다.

결국 둘의 싸움은 제3자인 일본을 도와주는 꼴이 되었습니다. 


을미사변의 발생

승부사 명성황후가 가만히 있을리 없습니다.

청일전쟁의 승리로 일본이 차지했던 요동반도가 

러시아의 개입(삼국간섭)으로 다시 청나라 소유로 돌아가는 것을 본 명성황후는

이제 러시아를 끌어들여 일본을 견제하려 합니다.

오랑케로 오랑케를 무찌른다는 "이이제이" 전략이지요.

일본은 분노를 하며 작전명 "여우사냥"이라는 명성황후 제거 계획을 세웁니다.




명성황후 시해에 참여했던 낭인들입니다.

평소 명성황후는 사진을 찍지 않았습니다.

얼굴이 외부에 알려질까봐 시녀에 왕후 복장을 입히기도 했지요.

평소 사치가 심해 국고가 바닥날 지경이었고,

민씨 형제들은 나라의 이권을 팔아 부를 축적했으니,

늘 자객의 침입을 대비해 얼굴을 숨겼습니다.  


일본은 당시 화폐가치로 9천원에 해당하는 선물을 명성황후에게 바치며,

고무라(小村室)의 딸을 명성황후의 양녀로 들여놓았죠.

그녀의 주도아래 명성황후의 초상화를 그려 자객에게 전달하였고, 

궁내부의 기밀까지 알게 되었으니 작전은 쉬워졌지요.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일본은 예정보다 이틀 앞서 작전을 실행했고,

1895년 4월 8일 새벽, 대원군을 앞세운 한 무리의 낭인들이 궁궐에 침입하며

명성황후는 그들에 의해 시해되고 맙니다.








일본의 공포 속에 숨죽이며 살던 고종은

러시아 공관으로 도망갔다가(아관파천) 돌아오며 "대한제국"을 선포하지요.

황제국의 예에 따라 왕비에서 "황후"로 추증되었고,

사후 2년이 지나서야 명성황후의 장례식이 치뤄집니다. 

후환이 두려웠던 대원군은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지요.

매천 황현의 <매천야록>을 보면 당시 백성들은

"남의 나라 궁궐에 무단 침입해 국모를 죽였으니 분노를 해야할지,

학정과 부패의 몸통이 죽었으니 기뻐해야할지 몰라 망설였다" 고 썼지요. 

명성황후 사후 일본은 거침없이 한일합병을 진행했고,  

그렇게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는 막을 내립니다. 


생가 옆의 명성황후 기념관에는 명성황후의 일대기와

시해에 사용되었던 칼, 장례식 사진 등 관련 자료들이 전시되었죠.

기념관의 자료는 명성황후를 일본의 침략에 맞섰던

조선의 국모로 미화시키고 싶은 의도가 역력히 드러납니다.

일본에게는 껄끄러운 존재였다는 관점에서는 맞을 수도 있지만,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면 기념관의 의도와는 다른 면들이 드러나지요. 

기념관은 기념관이니 그렇다 치고, 뮤지컬도 창작이니 그렇다 쳐도,

명성황후 기념관 옆에 "문예관"까지 세운 것은 좀 과하다 싶었습니다.

후손들이 재산이 많다보니.... (남이섬도 그중 하나지요.)... ^^


명성황후와 장충단 공원

남산의 장충단 공원은 을미사변 당시 명성황후를 호위하다 순국한

훈련대장 홍계훈, 궁내부 대신 이경직 등을 기리는 사당이 있었습니다.

1909년 안중근 의사의 의거 이후, 일제는 "장충단제"를 중지시키고,

항일의식의 상징이 된 장충단 일대를 공원으로 바꿔버립니다. 

소나무를 베어낸 자리에 벗나무를 심었지요. 

 

이후 장충단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를

추모하는 사당을 짓고, 사당이 있던 산을 "춘무산",

사당의 이름을 "박문사"라 지었습니다.

춘무는 이토 히로부미의 호, 박문사는 그의 이름 이등박문을 말하지요.

 




박문사가 있던 자리가 지금의 신라호텔 영빈관 자리입니다.

박문사의 입구는 경희궁의 정문인 홍화문을 옮겨

"경춘문"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고, 박문사의 석재는 광화문에서,

목재는 경복궁의 선원전과 부속건물 등을 헐어 사용했습니다.


박문사는 1932년 안중근 의사의 거사 날이었던 10월 26일에 완공이 되지요. 

7년 후 이 자리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비롯해 조선 합병의 공로자인

이완용, 이용구, 송병준 등의 감사 위령제가 열립니다.

이 행사에 이광수, 최린, 윤덕영 등 1000여 명의 인물을 초청했고,

안중근의 둘째 아들 안중생을 불러 이토의 장남에게 사죄를 시킵니다.

그리고 안중생은 미나미 지로 조선 총독의 양아들이 되지요.


안중근 의사의 장남은 17세에 독살을 당했습니다.

둘째 안중생은 30살이 넘도록 직업도 없이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며 연명하게 만든 후 이루어진 상징적인 행사. 

이로서 일본은 안중근 의사에 대한 치졸한 복수를 한 셈이지요.   






남산에 있는 안중근 기념관입니다.

남산을 사이에 두고 장충단 공원 반대편에 세워진 게 좀 아쉽지만,

(신라호텔, 자유총연맹, 국립극장에 밀렸습니다) 

남산을 가게 되면 시간을 내어 안중근 기념관을 방문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무료 관람할 수 있구요, 반투명 유리로 된 건축물 자체가 예술작품입니다.


#

명성황후 생가는 입장료와 주차비를 내야 합니다.

입장료 어른 1000원, 주차비 1000원.

가까운 곳에 여주 프리미엄 아웃렛도 가볼만 합니다.


#

명성황후와 얽힌 이야기들은 아주 많습니다.

고종과 순종에 얽힌 이야기, 명성황후 사후 아관파천과 엄상궁에 대한 이야기,

훈련대장 홍계훈과 장충단 그리고 신라호텔의 설계와 건설에 얽힌 일화 등등.

김구 선생님의 일화도 을미사변과 연결이되지요.

<백범일지>에서 김창수(김구)가 명성황후 시해에 대한 복수로 

일본인 무사를 살해하는 부분은 개정한다는 역사 교과서와도 연관이 있습니다.

임시정부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왜곡하려는 역사...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하지요. <백범일지>도 필독!! 입니다. 





♥  벚나무가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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