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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정조의 한이 서린 창경궁

정조의 한이 서린 창경궁










"창경궁"은 성종이 세 분의 대비(= 선왕의 왕비)를 

모시기 위해 1484년에 지은 창덕궁의 별궁이었습니다.

창덕궁과 담장을 같이 쓰며 창덕궁의 부족한 공간을 보완하는 역할.  

주로 대비나 후궁 등 여성들이 머물던 궁이었으니,

겉으로 보기에는 정사와 관련 없이 평화로웠겠지만, 

권력을 향한 암투와 모략으로 긴장감이 넘치던 장소였습니다.  

장희빈과 인현왕후의 드라마가 이곳에서 탄생했고, 

사도세자와 정조의 가슴 아픈 일화가 

리고 식민지 시절의 뼈아픈 흔적이 남아있는 곳입니다. 




 

별궁이었던 창경궁이 정궁처럼 쓰인 것은 영조 때입니다.

영조의 엄마는 궁녀보다 신분이 낮은 무수리였지요.

폐비가 된 인현왕후에게 의리를 지키는 모습이 숙종의 눈에 띄었고,

무수리에서 숙원으로, 다시 숙빈으로 책봉되며 영조를 낳았습니다.

장희빈이 숙빈 최씨를 경계를 하기 시작하니, 무수리 출신의 숙빈이

살아남을 길은 인현왕후가 다시 중전이 되는 것...

숙빈 최씨는 인현왕후가 중전으로 복귀하는 데 기여를 합니다.


그러니 영조에게는 창덕궁보다는 창경궁에 더 좋았을 겁니다.

무수리 출신의 엄마가 물을 긷던 곳이었고,

인현왕후의 복권으로 자신의 기반을 다진 곳이죠. 

영조는 자신이 왕이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인원왕후를 창경궁에 모셔두고 극진히 돌봤으며, 

자신도 이곳에서 생활하며 정사를 돌봤습니다.


하지만 노론과 소론의 갈등이 극에 달했던 상황에서

출신 성분의 컴플렉스와 선왕인 경종의 독살설에 휘말린 영조는

급기야 자신의 아들을 죽이는 상황까지 갔으니

정조에게는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긴 곳입니다.






창경궁의 정문은 홍화문, 

정문을 들어서면 외부의 공간과 분리시키는 금천(禁川)이 흐르고,

그 위를 지나가는 옥천교가 놓여 있습니다. 

금천은 지금도 물이 흐르고 있죠.

조선의 궁궐 중 유일하게 금천이 흐르는 곳입니다.





옥천교를 건너면 명정문이 나옵니다.

제대로 된 궁궐이라면 중문이 하나 더 있어야 하지만,

창경궁은 별궁이었던 만큼 중문이 하나입니다. 

 





명정문을 들어서면 넓은 마당에 품계석이 보이고, 

창경궁의 중심 건물인 "명정전"이 나옵니다. 

명정전은 경복궁의 "근정전", 창덕궁의 "인정전"과 같은 역할이었지만

그들이 중층의 웅장한 규모였다면, 명정전은 단층으로 단촐합니다.





 경복궁의 근정전과 비교하면 차이를 금방 알 수 있지요.




  

규모만 축소되었을 뿐, 2단으로 된 월대나 

정전 안의 어탑 등 갖출 건 모두 갖추고 있네요. 


창경궁이 다른 궁궐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면 방향입니다.    

조선의 궁궐은 모두 남쪽을 향하고 있지만,

유일하게 "창경궁"만 동쪽을 향해 서 있습니다.

아마도 대비를 위한 궁이라 동향이 가능했을지 모릅니다.






이곳 명정전에서 1757년 66세의 영조가 15세의 정순황후와 가례를 올렸고,

1827년 기축년에는 순조가 왕위에 오른 30주년 잔치가 벌어졌지요.  

사진은 순조의 잔치 모습을 그린 "순조기축진찬의병"입니다. 

창경궁에서의 연회는 두 곳에서 벌어졌지요.

공식행사장인 명정전에서는 임금과 군신이 모인 잔치를(외진찬), 

왕비의 처소인 자경전(그림 왼쪽)에서는

여인들만 참석하는 내진찬이 따로 열렸습니다. 

남녀의 구분이 엄격한 궁궐의 법도가 연회에서도 보이는군요.






명정전의 월대 양쪽 모퉁이에는 드므가 있습니다.

화재를 대비해 물을 담아둔, 일종의 소화전.








명정전에서 문정전으로 가는 길. (아래 사진은 명정전 뒤에서 찍은 것),  

비를 맞지 않도록 지붕을 덧댄 보첨이 있습니다.

어느 궁에서도 볼 수 없는 창경궁만의 모습입니다.


 



"문정전"은 왕이 신하를 접견하고 정사를 돌보던 건물입니다.

건물에도 격식이 있었으니, 중요한 전각의 기둥은 둥근 모양을 했지만,

그보다 격이 낮은 건물의 기둥은 사각형으로 만들었죠. 

문정전은 임금이 정사를 돌보는 편전임에도 

사각형 기둥을 사용해서 왕이 불만을 표시했던 기록도 남아있습니다. 


1762년 6월(음력 5월) 이곳 앞마당에서 비극이 일어났지요.

영조가 자신의 아들을 뒤주에 가둔 것, 

세자는 물한 모금 마시지 못한 채 8일만에 숨을 거두고 맙니다. 

정조는 이로 인해 창경궁을 아주 싫어했다고 전해지지만,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이곳을 떠나지도 못하고

많은 시간을 창경궁에서 보내게 됩니다.  






문정전 옆으로 보이는 건물은 "숭문당"입니다.

숭문(崇文)이란 '학문을 숭상한다'는 뜻으로 왕의 서재였습니다. 

그러나 왕이 창경궁에 머무는 일이 거의 없었기에, 

이곳을 이용한 임금은 영조였습니다. 



 

"숭문당" 편액과 숭문당 안에 걸려 있는 
"일감재자"(하늘이 항상

내려다보고 있으니 공경하는 마음을 잃지 말라) 현판은 영조의 친필입니다. 

영조는 현판 글씨에 욕심이 있어 많은 글을 남겼지요.

지금까지 남아 있는 영조의 글씨는 80여 점이나 됩니다. 






"함인정(涵仁亭)"도 영조의 사랑을 듬뿍 받던 곳,  

과거 급제자들이나 공이 있는 신하를 불러

술을 마시고 격려했던 영조 전용 "바(Bar)" 였습니다.

지금은 텅 빈 공터에 정자 하나만 있어 차라리 운치가 더 있지만, 

과거 함인정 뒤편으로는 내부를 볼 수없게 가린 담장이 있었습니다.





창덕궁과 창경궁의 모습이 담긴 "동궐도"의 일부입니다.

함인정 뒤편으로는 대왕대비나 후궁 등 여성들이 생활하던 내전.

내관이나 상궁을 제외하면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사람은

임금과 왕자 밖에 없었으니, 어찌보면 금남(禁男)의 공간인 셈이지요.

오픈되지 않은 곳이 더 무서운 법. 

오밀조밀 폐쇄적이고 복잡한 구조 속에서

여성들에 의한 은밀한 치마 정치가 이루어졌으니,

기사환국과 갑술환국 등으로 많은 사람이 죽게 됩니다.      

 




동궐도를 보면 중앙의 큰 건물이 "환경전",  

왼쪽에 세로로 놓인 건물이 "경춘전"입니다.

"환경전"은 왕비나 대비가 승하하면 시신을 모셔두고(빈전),

상여가 나가면 신주를 모시고 제를 올리던 곳(혼전).

쉽게 말하면 왕실 전용 장례식장으로 활용했던 곳입니다.

"경춘전"은 왕비나 대비가 생활했던 곳으로

정조가 이곳에서 태어났습니다.








과거의 "경춘전"과 "환경전"이 이렇게 변했습니다.

담장과 부속 건물이 사라지고, 지금은 빈 공터에 건물만 남아있지요. 

두 건물의 현판은 모두 검은색 바탕에 금색 글씨입니다.

다른 건물보다 격식이 높은, 중요한 전각이라는 의미입니다.

임금이 쓴 현판의 경우에도 검은색 바탕에 금색을 입히기도 했습니다.






내전의 가장 안쪽에는 "통명전"이 있습니다.

다른 건물과 달리 단층의 월대가 있고, 지붕에는 용마루가 없지요.

보통 왕이 자는 침전에는 용마루를 만들지 않습니다.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있을 수 없는 법, 임금이 곧 용인데,

건물 위에 또 다른 용을 둘 수 없기 때문입니다.


통명전의 용도는 왕의 숙소지만,

정작 왕의 숙소로 이용된 경우는 많지 않았다고 하네요.

왕과 왕비는 주로 창덕궁의 침전인 "대조전"에서 지냈기에, 

이곳에는 왕대비가 머문 경우가 많았습니다. 

숙종의 부인 인현왕후가 통명전에서 지냈으니,

장희빈이 인현왕후를 저주하기 위해 흉물을 묻어두었던 곳이

바로 이곳 통명전 아래입니다.






통명전 현판은 순조의 글씨라고 합니다. 






양화당

궁궐의 건물은 크기와 품격에 따라 전(殿), 당(堂), 합(閤), 각(閣),

재(齋), 헌(軒), 루(樓), 정(亭)의 순으로 구분을 합니다. 

당이 붙었으니 통명전이나 환경전, 경춘전보다는 격이 낮은 건물이지만,

위치나 전망만큼은 그중 제일 좋아 보입니다. 





양화당 뒤편에서 보이는 남산...

양화당 옆에는 너럭바위까지 있어 운치가 있네요.

역시나... 임금이 신하들에게 잔치를 베풀던 곳,

훗날 후궁들의 거처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환경전을 마주보고 오른편으로는 상당히 많은 건물이 있었습니다.

동궐도 상에는 있지만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건물들....

그 중 중요한 건물이라 생각되어 복원을 한 것이 있으니

"집복헌"과 "영춘헌"입니다.






집복헌과 영춘헌은 그림처럼 나란히 붙어 있습니다.

동궐도를 보면 담장 하나를 두고 떨어져 있었지만,

담장이 없는 상황에서 복원을 하려다 보니

두 건물을 붙였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그냥 추측임...)    










집복헌(상)과 영춘헌

집복헌과 영춘헌은 화려하지 않습니다.

궁녀들이 거쳐했을 법한 평범한 건물...

그러나 외부 세계와 차단된 'ㅁ자형'의 아늑한 공간이지요.


집복헌은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가 태어난 곳입니다. 

정조는 아버지와 관련된 공간에 많은 애착을 보였지요. 

아들인 순조가 태어날 때도 집복헌에서 출산을 했습니다.

정조는 바로 옆의 "영춘헌"에서 책을 읽으며 많은 시간을 보냈고,

정조가 생을 마감한 곳도 영춘헌이라고 합니다. 

정조는 영춘헌에서 책을 읽다가도 종종 집복헌을 들러보곤 했다네요.

  

창경궁을 짓던 1484년, 동쪽을 바라보는 궁궐이라서

풍수지리에 따라 홍화문 밖에 왕실 전용 숲인 "함춘원"을 조성했답니다.

지금의 서울대학 병원이 있는 자리, 창경궁 정문인 홍화문에서부터

대학로에 이르는 넓은 공간이 "함춘원"이라는 숲이었습니다.


영조는 아들을 죽인 것을 후회하며 함춘원에 아들의 사당을 세웠습니다. 

정조가 왕위에 오른 후 제일 먼저 한 것은, 함춘원의 사당을 

"경모궁"으로 승격시키고 경모궁을 정비했습니다. 

또한 자신이 머물던 영춘헌에서 가까운 동북쪽 담장에 문을 내고,

그 문에 "월근문"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월근(月覲)'은 '매달 뵙는다'는 뜻. 비극적으로 죽은 아버지를 위해

매달 경모궁에 가서 참배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입니다.

실제로 매달 한 번씩 이곳을 방문했다고 합니다.  








"경모궁도설"(고려대박물관 소장)을 보면 경모궁의 규모를 알 수 있지만, 

지금은 서울대병원 마당에 궁터 일부와 문 하나만 남아있다고 합니다.

경모궁의 옛 사진을 찾아보아도 제법 규모가 있습니다.






경모궁을 정비한 다음 한 일이 어머니의 거처를 마련하는 것.

정조는 통명전 뒷편, 시야가 확 트인 언덕 위에 "자경전"을 지었습니다.

물론 살만한 곳이 없어 새로 지은 것이 아니지요. 

"경모궁"을 마주 볼 수 있는 곳에 어머니의 새 거처를 마련한 것입니다.






"자경전"이 있던 자리에는 

자경전 터였다는 표지만 남아있을 뿐, 

숲이 조성되어 형체를 가늠할 수 없습니다.  





일제가 자경전 자리에 이왕가박물관을 세웠고,

훗날 이 자리에 도서관인 장서각이 들어섰다가 헐리면서

"자경전"은 그 흔적조차 남아있는 것이 없습니다.





사진 왼쪽에 보이는 건물이 통명전으로 추정됩니다.

지금의 창경궁 모습과 1820년대에 그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동궐도"를 비교해 보면 너무나도 큰 차이에 놀라게 됩니다. 


가장 큰 원인은 일제시대에 있습니다.

1909년부터 일제는 조선 왕실의 권위를 격하시키기 위해

주요 전각만 남겨둔채 창경궁을 헐었습니다. 

궁궐의 상징과도 같았던 느티나무와 소나무를 베고 벚나무를 심었으며,

1911년 창경궁을 "창경원"이라는 "동물원"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1984년 과천 서울대공원이 생기기 전까지 

창경원이 한국을 대표하는 국가 동물원이었습니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왕궁에 "동물원"을 세웠다는 자체가 치욕입니다.

서궐인 "경희궁"은 건물을 해체해서 민간인에게 판매했지요.

창경궁은 그나마 건물 일부라도 남아있어 복원에 기초가 됐지만

경희궁은 그 터를 찾는데만도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창경궁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자경전"을 복원하지 않은 게 너무 아쉽네요.

<한중록>이 쓰여진 역사적인 건물인데요... 








리더십을 키워주는 왕자박물관

정조가 주인공으로, 왕자들의 생활을 통해

우리의 문화유산을 접할 수 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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