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산성의 나라'라 할 정도로 산성이 많아요.

남한에만 1200곳의 산성이 남아있다고 하네요.

거창한 것은 아니지만, 10여 년 전부터 우리나라

산성을 모두 다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이후, 

산성만 보면 몸이 자동으로 반응을 합니다.  

창원에서 광주로 가는 출장길, 중간에 순천왜성이 있더군요.

이순신 장군도 애를 먹었다는 왜교성 전투 현장을 보고 싶어

3시간 일찍 길을 나서 순천왜성에 들렀어요.

임진왜란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이 이 순천왜성 

전투(왜교성 전투)에서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명나라 종군 화가가 그린 <정왜기공도(征倭紀功圖)>에

순천왜성의 전투 모습이 생생하게 남아있어요.

당시의 상황을 보면...., 

1진으로 조선을 침략했던 고니시 유키나가(소서행장)는

20일만에 한양에 입성하고, 평양성까지 접수하지만,

더 이상 진격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립니다.  

이순신 장군의 활약으로 인해 서해를 거쳐 한강으로 

진입하려던 해상 보급로가 차단당해 후발대의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입니다.

명나라의 파병이 시작되자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는

명과 강화를 내세우는 한편으로, 남해안 지역이라도

확보하고자 성을 쌓고 장기전을 준비하라 명령을 내리죠.

그렇해서 남해안 일대에 지어진 왜성이 22개,

그중 가토 기요마사(가등청정)가 쌓은 서생포 왜성과

고니시 유키나가(소서행장)가 쌓은 순천 왜성이 

보존이 잘 돼있다고 들었습니다.  

우리의 성과 다른 왜성의 특징

순천왜성은 고니시가 1만 4천의 병력을 동원해

3개월 동안 쌓은 성입니다. 수직으로된 우리의 성과 달리

60도~70도 각도의 비스듬한 형태로 지어졌지요.

일본식 성의 전형적인 특징이죠. 성 밖에는 해자를 파고,

성의 내부는 2중, 3중의 내성을 쌓아 저지선을 만들고, 

미로처럼 복잡한 것이 특징입니다.  

제1 성문이 있던 자리는 새로 복구를 했습니다.  

아래 사진은 성문지에 성밖을 내려다 본 것으로,  

마치 연못처럼 보이는 곳이 당시 해자가 있던 자리로,

바닷물이 성문앞까지 들어왔습니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성을 둘러싼 3면이 바다였지만,

지금은 매립되어 율촌산업단지가 들어섰어요.)

제1성문지를 지나면 제2성문이 나옵니다.

성 안쪽에 또다시 성을 쌓아 2차 방어선을 만든 것입니다.

정왜기공도를 보니 제 2성문지 위에는 누각이 있었군요.

제 2성문을 지나 더 올라가면 다시 내성의 구조가 나옵니다. 

이곳부터는 입구가 '갈지(之)'자나 'ㄱ' 자로 꺾여 있습니다.

입구로 들어오는 병사를 3면에서 공격할 수 있도록.

우리의 성으로 치면 '옹성'이나 '치'와 같은 기능입니다. 

들어서는 입구마다 'ㄱ' 자로 꺾여있죠.

위쪽 사진은 성의 입구에서 들어가는 방향으로 바라본 것,

아래 사진은 성 안에서 입구을 내려다 본 것입니다. 

제 3 성문을 들어서면 넓은 공간이 나옵니다.

주변 일대가 모두 내려다 보이는 전망이 좋은 곳이죠. 

정왜기공도에서 보면 나무로 둘러 쌓인 곳으로,

무사들이 묵는 숙소가 있던 자리로 보입니다. 

그 공간의 한쪽 끝으로 천수각이 놓여있던 기단이 있어요.  

천수각은 성의 정상에 있는 망루이자 장대 역할을

하는 곳으로, 성주가 전투를 지휘하던 장소입니다. 

그림을 확대해 보면 천수각의 1~2층 하얀벽에 

"5층 망해루"라는 글자가 보입니다.

외부에서 보이는 것과 달리 내부는 5층의 구조네요.     

천수각을 설명하는 안내판을 보니, "천수는 성을 대표하는

상징적 건물이다"라고 설명한 부분(1~3행), '상'자가 빠지고 

"천수는 성을 대표하는 징적 건물이다"로 표기되어 있네요. ^^

정왜기공도의 그림과 실제 왜성의 모습을 비교해 보려고

왜성 구석구석을 사진으로 남겨두었는데, 안타깝게도   

컴퓨터 하드가 날라가며 상당수의 사진이 사라졌습니다. 

복구한 몇 장의 사진을 보며 글을 쓰려니, 허술해 보이지만

치밀하게 계산되어 쌓은 성이고, 우리의 산성 형태보다는

견고하여 공격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일본의 성은 오로지 무사들 만을 위한 공간이예요.  

우리의 산성은 (지배층과 피지배층) 모두를 위한 공간이었죠.

외침이 잦은 지역에는 마을 전체가 피신할 수 있는 

읍성을 두고, 유사시에는 배후지인 산성으로 들어가 

장기간 머무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일본성과 우리성을

비교해 볼 때 놓치지 말아야 할 점입니다. 

왜교성 전투의 시작

왜교성 전투가 시작되었을 때, 왜군은 이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고, 철수 명령을 받은 후입니다.

전시작전권을 가지고 있던 명나라는 

사로병진책(四路竝進策)을 써서 동로는 울산왜성을, 

중로는 사천왜성, 서로는 순천왜성을, 

수로는 바다에서 순천왜성을 공격하기로 합니다.

서로군은  유정제독(2만 2천명)과 권율(5천 9백명) 

연합군이, 수로는 진린 도독의 함대(1만 9천명)와 

이순신 함대(7천 3백명)의 연합군이었습니다.

 
서로군과 수로군의 전투 상황을 기록한 장면입니다.  

그림의 왼쪽 함대는 명나라 장수 진린과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명 수군의 연합 함대입니다.   

그림을 확대해 보면 가장 아래쪽에 보이는 명나라

배는 천병(天兵)이라 쓴 기를 달았고,

바로 옆 조선 수군의 배는 태극문양의 기를 달고 있어요.

(태극문양을 확대해 찍은 사진이 날라가서 정말 아쉽네요.)

5만의 병사(조, 명 연합군)대 1만 4천명(왜군)의 병사,

명량해전의 주인공 이순신 장군까지 가세했으니 승리는

따놓은 것 같았지만, 9차례의 공격에도 끝내 성을

함락시키지 못합니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 의하면

"물이 얕아 가까이 다가가기 어려웠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바다에서 왜성을 공격할 수 있는 시간은 바닷물이 들어오는 

시간뿐, 물이 빠지면 다시 돌아나와야만 했습니다.  

왜군의 입장에서는 수군이 공격해올 시간을

예측할 수 있었던 것이죠.

하지만 공성이 어려웠던 진짜 이유는 다른 곳에 있어요.

살아서 본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고니시 유키나가는

유정과 진린에게 뇌물을 주고 퇴로를 약속받았고, 

명나라 장수는 퇴로를 열어주기로 약속했던 것입니다. 

파병온 장수 입장에서는 살짝 눈감아주면 피해 없이

전쟁도 끝낼 수 있고, 덤으로 양쪽에서 뇌물을 챙길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뭐하러 남의 나라에 가서 죽으려 하겠어요) 

하지만 한 명도 살려 보낼 수 없다는 이순신 앞에서

명나라 장수 진린은 차마 본색을 드러내지 못합니다. 

<난중일기>에도 언급되었지만 이순신은 진린을 극진히

대접했어요. 전과가 생기면 모두 진린의 공으로 돌렸죠.

작전권이 명나라 군사에게 있었으니, 잘 달래지 않으면 

명나라 장수들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거란 걸 

이미 파악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왜군의 퇴로를 열어주자는 마음으로 전투에 나선

명나라 장수들은 서로 손발이 맞지 않게 됩니다. 

음력 10월 3일의 전투 상황을 <난중일기>에는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10월 3일 맑다.

 진린이 유정 제독의 밀서를 받고 초저녁에 나가 싸웠다.

 자정이 될 때까지 서로 부딪치고 싸웠는데,

 사선 19척(명나라 배)과 호선(명나라 배) 20여 척이 불탔다.

 진린이 펄펄 뛰는 모양을 말로 하기가 어려웠다.

남원 의병장 조경남의 <난중잡록>에는

이 상황을 더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어요.  

 유정이 수군과 비밀리에 통하여 밤중에 조수가 들어올 때

 수륙에서 협공하자고 약속하니 진린이 허락하였다.

 밤 2경쯤 여러 배를 몰아, 조수를 타고 침공하였으나,

 육지의 군사는 단지 나팔 소리만 내어 상응할 뿐이었다.

 수병들은 육군이 성안으로 들어간 것으로 생각하고,

 먼저 올라가기를 다투어 죽을 것을 각오하고 혼전하는데,

 바닷물이 빠지며 배가 육지에 놓이게 되었다.

 적병이 진흙 속에서 기어올라와 배를 포위하고 죽이니

 명군이 힘을 다하여 스스로 배를 태웠으니 모두 43척이다.

 불은 밤새도록 끊어지지 아니하고 수백명의 명군이 잡혔다.

 '상관(上官)'이라 부르며 손을 비비며 살려 달라는 소리가

 육지의 진지까지 들렸다. 우리나라 배 3척도 그 가운데

 있었으나 선체가 높고 견고하며 비오듯 활을 쏘니, 

 적이 감히 가까이 오지 못하였고, 이튿날 아침 

 조수가 밀려들어서야 나왔다.

3일 후(10월 9일) 육군인 유정이 철수했지만, 권율 부대가 

남아있으니, 고니시 유키나가도 애가 탔을 겁니다.

고니시는 진린에게 은 100량과 보검 50자루를 선물하고,

남해에 있는 사위를 만나러 간다며 배 한 척을 보내는 데

성공합니다. 사천왜성의 시마즈 요시히로에게 구원병을 

요청한 것입니다.

노량해전의 시작

이 정보가 이순신 장군에게 들어갔습니다. 

이를 방치할 경우 고니시 수군과 시마즈 수군에게 협공을

당하게 됩니다. 이순신은 이런 상황을 사전에 차단하고자 

사천에서 순천으로 오는 길목인 노량해협(남해대교)에서

매복을 합니다. 이순신의 예상대로 11월 18일 밤, 

사천에 주둔하던 시마즈 요시히로와 고성에 주둔하던

다치바나 무네시게, 남해에 주둔한 소 요시토시의 군사가

군선 500척을 이끌고 노량해협을 통과 합니다. 

불화살과 포를 쏘며 시작된 전투는 다음날까지 이어집니다.

동이 틀 무렵 패색이 짙어진 왜군은 흩어지기 시작했고,

한 척의 배라도 놓치지 않으려던 이순신 장군은 추격합니다.

노량해전 전투는 조경남의 <난중잡록>에 기록 돼 있습니다.

(난중일기는 노량해전의 전날인 11월 17일이 마지막 기록.) 

 "동이 틀무렵 이순신이 몸소 북채를 들고  

  전투를 독려하며 적선을 추격했다.

  그 때 이순신이 적병이 쏜 탄환에 맞아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