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기념하는 

남한산성 방문기 

남한산성이 11번째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병자호란 유적지로 역사의 정취가 있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둘레길이 잘 닦여 있어, 맑은 공기를 마시며

가족이 함께 트레킹하기 좋은 웰빙 공간이기도 합니다.

초중등시절 가을 소풍지로 자주 갔던 놀이터였습니다. 

3년 전 찾았던 남한산성 방문기를 세계유산 등재기념으로 

지금 씁니다.

남한산성에서 잠실 방향(위쪽)과 

성남시(아래)를 내려다 본 풍경입니다. 

초등시절 남한산성에 올랐을 때만해도 선명했던 도시 모습이

스모그 현상으로 흐릿하게 보이네요. 

성남시 쪽은 더 심합니다. 

남한산성은 이괄의 난으로 놀란 인조가 전쟁시 

수도로 만들기 위해 기존의 토성을 돌로 다시 쌓은 것입니다.

초기의 토성은 신라가 쌓았다는 설도 있지만,

백제의 시조 온조왕이 세운 토성이었다는 설이 

설득력이 있습니다.

위성사진으로 천호동 일대를 보면 천해의 요지가 

눈에 들어옵니다. 북쪽과 동쪽으로는 한강이 굽어 흘러 

천연 해자를 만들고, 남쪽으로는 남한산과 검단산이 

자연 방어선을 만들어 주죠. 문제는 뻥 뚫린 서쪽의 평지지만,   

그곳에는 백제가 세웠다는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이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온조가 백제를 세울 때 수도로 정했다는 

하남 위례성이 지금의 천호동(암사동, 길동, 하남시 포함) 일대이고,  

수도를 중심으로 북쪽과 동쪽은 한강을 방어선으로, 

평지인 서쪽은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을 쌓아 출입구를 막았고, 

남쪽은 배후지로 남한산성과 이성산성을 쌓았을 거라는 추측.

네 개의 성을 수도 방어를 위한 외성으로 본다면,  

풍납토성 바깥에 있는 성내(城內)동 역시 

외성의 안쪽에 놓인 문자 그대로 성내동(성 안쪽 동네)이 됩니다.

또 하나의 근거는 석촌동 고분군입니다.

서울 한쪽 구석에 대규모 북방식 돌무덤(적석총)이 있습니다.

지금은 8기의 돌무덤만 남아있지만, 일제시대 때까지만 해도

60여 기의 돌무덤이 있던 곳이랍니다.

그래서 석촌(石村, 돌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겠죠.

평지인 서쪽으로는 풍남토성과 몽촌토성을 쌓고, 

성 바깥쪽에는 조상의 무덤군을 조성해

"죽어서도 백제를 지키겠노라" 하는 지배계급의 

스토리를 쓴다면 퍼즐처럼 잘 맞아 떨어지네요. 

고구려 국내성의 배후지인 환도산성에서 내려다보면

수도 바깥쪽에 석촌동과 같은 식으로 

고분군(적석총)이 놓여있다고 하죠.

공주 공산성, 부여 사비성을 하늘에서 내려다 보아도 

북쪽으로 강을 끼고 도성이 있는 지정학적 유사성도 있습니다.

다만, 임진강 유역의 군사분계선 안에도

소서노의 무덤이라 추측되는 북방식 돌무덤이 

무더기로 있다고 하니... 확인되지 않은 추리일 뿐입니다.

(요런 추리가 재밌어 항상 현장을 방문해 확인합니다.)

더 재밌는 것은 백제의 시조 온조왕에게 제사를 지내는

“온조왕사”가 이곳 남한산성에 있다는 것입니다.

안내판에 따르면... 온조왕사는 인조 16년(1638)에 세웠다 합니다. 

병자호란이 끝난 후에 세워진 사당인 것이죠.

백제의 시조인 온조왕이 조선의 왕인 인조의 꿈에 나타나

청나라 기습을 알려준 뜻을 기려 온조왕사를 세웠답니다. 

온조왕사가 세워진 후, 다시 온조가 인조의 꿈에 나타나

“혼자 있기 쓸쓸하니 한 사람을 데려 가겠다” 고 했고,

다음날 이서 장군이 죽어 이곳에 같이 배향했다고 쓰여있지만.....

이서 장군이 죽은 것은 병자호란 당시이고, 

온조왕사가 세워진 건 병자호란 후인 1638년이니.... 

도통 앞뒤 시간이 맞지 않네요.

집에 돌아와 검색해 보니 이런 글이 나옵니다.

"정조"의 꿈에 온조왕이 나타나 “혼자 있기 쓸쓸하니

죽은 사람 중에서 명망 있는 신하를 같이 있게 해달라" 고 하여

정조는 병자호란 당시 죽은 이서 장군의 위패를 같이 모시고,

이름을 온조왕사에서 "숭렬전"으로 바꾸었다는 글입니다. 

이렇게 보면 앞뒤가 딱 들어맞게 됩니다. 

(세계 문화유산인데....안내판 검토요망^^)  

이유야 어찌됐든, 백제의 시조인 온조왕의 사당이

남한산성에 있다는 것은 충분히 의미를 부여할 만합니다. 

산성마을의 한 가운데는 조선의 행궁이 있습니다.

행궁은 임금이 도성 밖에 머물 때 사용하는 임시 궁이죠.

조선의 행궁은 화성행궁(수원성), 강화행궁, 온양행궁 등 

전국에 10여 개 이상이 있다고 하는데, 이곳의 행궁에만

종묘와 사직의 기능을 하는 좌전과 우실이 있어,

전쟁시 임시 수도와 같은 역할이 가능하도록 만들었습니다.

행궁 주변으로는 마을이 조성되어 있고, 

군사시설, 창고, 관아, 향교 등 수도로서 

모든 시설을 갖춘 작은 도시입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는 한참 복원공사중이어서

행궁 안에는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군사들을 훈련시키는 연무관입니다.

경기도 광주시에서 남한산성 마을로 들어오면

주차장 오른쪽으로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연무관입니다.

남한산성의 일반 코스는 산성마을 주차장에서부터

연무관과 행궁을 거쳐, 북문 → 서문 → 남문으로 

도는 코스입니다. 옹성과 외성을 합치면 

전체 성벽의 길이가 12355m에 이르고, 내성의 면적만 

62만평이라, 마음먹고 산행을 결심하지 않은 이상

대부분은 이런 코스대로 움직입니다.  

행궁에서 가장 가까운 북문입니다.

(하남시 고골에서 남한산성을 오르면 북문이 나옵니다.)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남한산성에 입성한 후 처음 벌어졌던,

청나라의 계략에 말려 정예병사 300명이 죽음을 당했던 

법화골 전투가 이 성문 아래에서 벌여졌습니다.

참조: 우리가 알아야 할 병자호란 펙트

http://www.purmi.com/sub/board/view.php?seq=1097871 

패전의 아픔을 극복하고자, 다시는 패배하지 말자는 뜻으로 

이름을 전승문(全勝門)이라 지었습니다.

북문(전승문)에서 남문까지 3km 내외의 길은

말 그대로 하늘 위를 걷는 듯한 산책로입니다.

성곽을 따라 난 길로 가다보면 가파른 고개가 나오기도 하지만,

일반 보행자를 위해 우회할 수 있는 넓은 산책로가 따로 있습니다. 

유모차를 끌고 다닐 수 있습니다.     

위쪽으로 낮게 쌓은 담을 여장(女牆)이라 하죠.

성 전체가 여장이 있어, 몸을 숨기고 총이나 활을 쏠 수 있습니다.

하나의 여장에 총을 쏠 수 있는 구멍(총안)이 3개씩 있습니다.

가운데 구멍은 가까운 곳을 쏠 수 있는 근총안,

좌우의 구멍은 먼 곳으로 쏠 수 있는 원총안입니다. 

여장과 여장 사이에는 몸을 숨기고 활을 쏘도록 만든 

타구가 있습니다.  

북문을 따라 올라가면 거여동으로 내려가는 서문이 보입니다.

이름은 서문이지만, 임금이 있는 행궁을 중심으로 보면

우측에 있는 문이라 우익문(右翼門)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행궁의 오른쪽 날개라는 뜻이죠.

이 문을 통해 인조가 항복을 하고 삼밭(삼전도)을 

향해 내려갔습니다. 

우익문을 지나면 남한산성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장대가 보입니다.

전투를 지휘하는 지휘소를 장대라고 해요.

남한산성에는 총 5개의 장대가 있었지만,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은 가장 높은 곳의 서장대 하나뿐입니다.

인조 당시에는 단층으로 지어 서장대라 불렀지만,

영조 때(영조 27년) 2층으로 증축하며 수어장대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지킬 수(守)”자에 “막을 어(禦)”자를 더해,

“지키고 또 지키자”는 영조의 의지를 보여주는 이름입니다.

영조는 이것으로도 부족해 보였는지, 

2층 망루에 “무망루”라는 이름의 현판을 써서 붙였습니다. 

청에 항복했던 치욕을 “잊지 않겠다”는 뜻으로 붙인 것입니다.

현재는 "무망루" 라는 현판을 떼어

수어장대 옆의 보호각에 따로 보관하고 있습니다.

(조선의 왕실에게는 그만큼 치욕적이었던 병자호란!!)

수어장대 담장 아래에는 

청량당(淸凉堂)이라는 사당이 하나 있습니다.

남한산성 축성 책임자였던 이회와 그 부인, 

벽암스님을 모신 사당이죠.

남한산성 동남쪽은 이회가, 서북쪽은 벽암스님이 축성했습니다.

벽암스님은 기간 내에 공사를 마쳤지만,

이회가 맡은 구간은 공사가 지연되었죠.

이회는 사재까지 털어 공사를 했지만, 공사비가 모자랐습니다.

부인이 돈을 마련하기 위해 삼남지방을 도는 동안

이회는 공금횡령이라는 누명을 쓰고 사형을 당합니다.

자금을 마련해 돌아오던 송씨 부인은 한강유역에 이르러서

남편이 처형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한강에 몸을 던졌습니다. 

억울한 죽음 후에 모함임이었음이 밝혀집니다.  

이회가 담당했던 동남쪽은 훼손된 부분이 거의 없이 견고하죠.   

꼼꼼하게 쌓다보니 돈도 부족했고, 공시기간도 

못 맞춘 것입니다. 

수어장대 밑으로 암문이 하나 보입니다.

은밀하게 식량과 무기를 운반하거나

원군이나 척후병이 드나들도록 만든 쪽문입니다. 

성 밖에서는 정면에서 문이 보이지 않도록 방향이 틀어졌고,

안쪽은 유사시 흙이나 돌로 폐쇠할 수 있게 

계단식 경사를 만들었습니다.

남한산성에는 이런 암문이 총 16개가 있습니다.

암문을 지나 남문까지 가는 길은 

성곽을 따라가는 가파른 길과

편하게 걸을 수 있는 큰 길로 길이 나눠집니다.

성곽길을 따라가니 고개가 좀 높긴 합니다.

가파른 등성이를 두 고개나 넘어야 하지만

고갱이에 정자도, 그곳에서 내려다 보는 전망도 끝내줍니다.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는 한적한 산길이죠.

정자에서 남문쪽을 바라본 모습.

저 산 너머에 남문이 있습니다.

남한산성에서 가장 크고 웅장한 남문, 

이름은 지화문(至和門)입니다.

정조 3년 성곽을 개보수하며 정조가 지어준 이름입니다.

이 문으로 들어오면 출발지였던 산성마을과 행궁이 나오고,

이 문을 통해 내려가면 성남시가 나옵니다.

남문 앞에는 남한산성 축성당시(인조 4년) 심은 것으로 

추정되는 4그루의 느티나무가 있습니다.

성곽의 토양유실을 막고, 남문이 잘 보이지 않도록 

심었을 것이라 추정하고 있죠.

나무 왼쪽에 허리를 숙이고 있는 사람이 보이죠? 

성인의 키와 비교해 보면 성곽의 높이와 

나무의 크기를 가늠하실 수 있습니다.

지금은 남문 밑으로 터널이 뚫려

성남시에서 들어오면 바로 산성마을이 나오지만,

제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에만 해도 

남문 앞으로 도로가 나있었습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이 가을 낙엽이 질 때의 

느티나무 모습과 그 옆을 제 집 다니듯 지나다니던 다람쥐,  

섬뜩할만큼 컸던 지네(지네가 참 많았습니다)가 

아직도 눈에 선하네요.

터널이 뚫리며 남문 앞이 옛길로 복원되었지만,

남문 앞은 왠지 그때 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문에서 성곽을 따라 계속 올라 가면 남장대 터가 나오고,

그곳에서부터 옹성이 시작되지만, 한번도 가 본 적이 없습니다. 

늘 오후에 도착해 남문에 이르면 오후 늦은 시간이 되요.

아침 일찍 출발하면 모를까... 

제가 방문했을 때는 행궁 복원공사로 상당히 혼잡했습니다. 

복원 규모가 꽤 커서, 마을 주변에 초가집 등을 짓는 것으로 보아

행궁 앞의 민가도 복원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지금은 모두 완성이 되었을 텐데 기대가 되는 군요. 

아들과 함께 다시 한번 찾아가 완주를 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