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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사모 가족탐방] 치유와 성장을 통한 육아 - 엄마숲님 편

 

푸름이닷컴 회원가입 계기는 무엇인가요?
 첫 임신때 스세딕부부의 책을 우연히 도서관에서 보게되었고 그 책을 보며 태교했어요. 그런데 7개월째 되던 태아에게 이상이 생겨 아기천사와 이별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일년 후에 지금의 첫딸 은수를 갖게 되었죠. 은수를 임신했을 때는 하늘로 보낸 아이와의 상처 때문에 처음부터 태교를 하지 못했고, 임신 7개월을 무사히 넘어가서야 태교를 할 수 있었어요. 그때 아파트 이동도서관차 안에 실려온 한 권의 책 <푸름이 이렇게 영재로 키웠다>를 운명적으로 보게되었는데, 스세딕 부부의 책을 읽고 아이를 낳은 후에 “이제 어떻게 해야하지?라는 막연함이 있었는데, 이 책을 보니 마음이 편해지고 기쁜거예요.
"자연과 책이네!" 그땐 그 말이 너무 반가웠고, 푸름 부모님도 스세딕부부의 태교를 했다고 했고 나 역시 이 책을 읽었으니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야!”라고 받아들였습니다. 육아의 지침서를 서슴없이 갈아탄 것은 물론이고, 갈아탈 수 있는 육아서가 있다는 것은 “내가 그렇게 원하던 기차가 제 시간에 도착해서 타는 기분이랄까요? 마음은 이미 기차를 타고 하늘을 날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푸름이아버님 책에 실려있는 “자연과 책”이 두 가지만 기억이 납니다. 아버님의 책 한권에는 “내가 5년동안 아이에게 해줘야 할 분량!, 아니 그 이상의 것이 들어 있었습니다.
<푸름이 이렇게 영재로 키웠다>는 우리아이 10년을 키울 수 있는 훌륭한 지침서예요. 그대로 따라 하기에 정신 없는 시간들을 보냈고, 지금 생각해 보면 겁없이 달려들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옛날 생각을 떠올리니 눈물이 맺히네요. 좌충우돌 실수도 많았고 참 작은 아이였던 제 모습이 보입니다. 
 

내가 자라온 환경에서 받은 교육으로 아이들을 키울 때 느꼈던 한계와 극복점이 있다면?
저는 2남 5녀 중에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6학년때 자살로 돌아가시고 엄마는 중 1때 서울로 떠나셨어요. 그때 나를 돌봐준다는 명목으로 둘째 언니네 가족이 우리집에 들어와서 함께 살기 시작했고 저는 형부밑에서 소 키우는 일을 했습니다. 소가 먹는 짚단을 하루에 50개에서 70개를 썰어야 했고 작두질을 하두 많이 해서 지금도 제 오른손이 오른쪽으로 약간 틀어져있습니다. 소 풀뜯기는 언제나 내몫이었어요. 엄마, 아빠가 있어야 할 내집에 어느새 무서운 형부가 들어 앉아 나를 머슴으로 부려먹기 시작했고 엄마의 부엌은 둘째 언니가 자리를 잡았어요. 그 따뜻했던 집이 어느새 괴물의 집이 되어버렸고 전 중 1때 집을 잃은 고아가 되어 버렸죠.
나를 지켜주는 든든한 신랑을 만나 결혼해서 두 아이를 낳고 20평의 아담한 집에서 가정을 이루고 행복했지만 푸름이닷컴 5년차일 때 쯤 20평에서 35평 새집으로 이사하면서 갑자기 큰 상처가 몸으로 오기 시작했어요. 그 동안 잠시 잊고 살았던 어린시절의 상처가 이사라는 비슷한 상황으로 재현되면서 고통이 다시 찾아온거였어요. 그 순간 저의 모든 것이 반쪽이 나고 말았습니다. 처음 신혼살림을 시작한 20평 7층 집은 햇빛이 잘 들어오고 집이 작아서 내 시야에 다 들어왔던 반면 35평 새집은 햇빛도 잘 들어오지 않는 늘 흐린날씨 같은 집이였어요. 반대쪽도 막혀있어서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았고 화장실은 구석에 있어 늘 어둡고, 아일랜드 식탁에 가려져 있는 부엌에 서 있으면 8개월된 둘째에게 엄마가 안보이니까 아기가  칭얼거리기 시작했어요. 전에는 늘 아이가 있는 곳엔 제가 훤히 발끝에서 머리까지 다 보였거든요. 화장실, 안방 그리고 부엌에서 아이들과 함께 숨박꼭질 하는것 같았고 당황스러웠어요. 집이 왜 이렇지! 무엇이 나를 이렇게 조종하는 거지! 지금 생각해보니 나의 내면의 상처가 무의식으로 나를 조종하고 있었던거예요.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을 둘째언니 부부(지금 언니부부는 이혼했어요)와 함께 살때, 엄마.아빠와 함께 살았던 그 따뜻했던 집에서 저는 큰 상처를 받았었거든요. 어느날 조카와 자고 있는데 형부가 내 발밑에 앉아 있다가 제가 벌떡 일어나니 갑자기 안방으로 바로 넘어가버리는 거예요. 또 한번은 여고시절이였는데 야간수업 끝나고 동네에 거의 도착할 무렵 숨어서 절 기다리고 있다가 잡으려고 했고, 그 충격에 뒷걸음질 치면서 뒤로 물러서고 있는데 계속 제 앞으로 다가오는거예요. 그때 자전거 타고 지나가던 동네 대학생 오빠를 만나 전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어요.또 한 번은 언니가 하룻밤 없는 날이였어요. 한 밤중에 문을 삐그덕 삐그덕 거리면서 내 방문을 열기 시작할 땐 제 심장이 멎는 줄 알았어요. 순간 어떻게 해야 하나? 몇초만에 전 방문을 냅다 열고 50미터 정도의 옆집으로 죽어라고 도망을 쳐서 그 집에서 하룻밤을 자야했어요. 그날 옆집 언니들과 한방에서 자는데도 그놈이 쫓아와서 잠가버린 문을 부쉬고 들어올 것만 같아 얼마나 겁이 났는지 옆에 언니들이 있는데도 제 심장이 쿵꽝쿵꽝 거리니, 옆집 언니가 하는 말이 “막내야, 이젠 걱정 말고 자. 너네 형부 안 와” 하는 거예요. 순간 심장이 얼마나 뛰었으면 이 언니가 이렇게까지 말을 하나 싶었죠. 

전 새로 이사한 큰 집에서 지내다가 문득 문득 어두운 곳에서 누군가 나타날까봐 그렇게 무서웠나봐요. 그땐 저도 제가 왜 그런지 몰랐고 그냥 무섭다고 하는 저를 신랑은 이해 못했지요. 신랑이 야간 근무를 가고 없는 날은 거의 새벽까지 깊은 잠을 단 한번도 잔 적이 없었어요. 새벽 4시가 되면 그때서야 안심하고 잠에 들었죠.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인정해주지 않는 미치도록 무서운 밤과 함께 지낸 만 3년의 시간이였습니다. 전 신랑이 야간근무를 하고 왔는데도 챙겨주지 못했고 육아는 정말 처절하게 엉망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밤에 무서워서 보초서듯이 했으니 무슨 에너지가 있어서 아침이 왔는데도 정신을 차릴수가 있었겠어요?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일어난 전쟁에서 포로로 잡혀와 고문을 당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육아를 하면서 고문을 느낄수도 있다니 정말이지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 하루 하루였습니다. 내적불행이 날 고문하는 사이 내가 무너지고 육아가 무너지고 아이들이 망가지고 있었어요. 너무나 먼 세월이 흘렀지만 아마도 그땐 날 힘들게 하는 누군가든, 무엇이든 죽여야 내가 살것 같았고, 나를 힘들게 하는 게 오직 신랑인줄 알았어요.


내가 한계에 부딪혔을 때 안간힘을 다해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푸름아버님 말씀 “ 자연과 책” 이였어요. "난 살아야 해! 내가 살기 위해서는 하루에 한번은 밖에 나가고 한 두시간 책읽는 것을 포기하지 말자!"였습니다. 얼마나 이때가 힘들었던지 글을 쓰면서도 눈물이 납니다. 놀아줄 힘이 없어 금방죽을 것 같으면서도 놀이터에 일단 나갔죠. 재미있게 놀아주지 못했지만 그래도 두 아이에게 오늘의 하늘과 오늘의 공기와 날씨만이라도 느끼게 해주자!  하루 하루 날씨 변화라도 몸으로 기억하게 해주고 싶었어요. 어제의 날씨와 똑같은 날씨는 없을 것이고 어제의 하늘과 똑같은 하늘은 없을테니깐.... "얘들아! 오늘 바람은 어때? 오늘 하늘은 어떄? 구름 모양은? 해님은 많이 눈부셔? 먹구름이니? 왜? 비가 올것 같아? 그럼 우산 준비 해야겠네!" 아이들의 기분을 보면서 이런말을 직접 묻거나 혼잣말을 하면, 그게 흘려듣기가 되었고 날씨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알게 해주었습니다. 책은 저녁마다 읽어 주었는데, 좀 챙피하지만 무조건 읽어주다가 성대결절까지 왔었어요. 그때의 저를 보고 푸름이닷컴에 너무 집착한다고 주위의 친한 사람들 몇 명이 푸름이닷컴을 떠나기도 했지요. 솔직히 그때는 떠나지 못하는 내가 바보인것 같고 떠나는 그 사람들의 용기가 부럽기도 했지만 전 제 선택에 대한 믿음이 있었어요. 그 믿음이 어디서 왔을까? 생각해보니, 아마도 처음 읽었던 아버님의 책이였던 것 같습니다. 왜? 나는 자연을 믿으니까........ 

 

남편의 육아참여나 아내를 위해 배려해준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남편과 함께 어떤 육아를 했나?라는 질문을 받으면 뭐라고 써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가끔 남편과 대화를 할 때면 남편은 자기가 엄청 도와주었다고 말하는데 솔직히 제 입장에선 남편이 무엇을 했다는 것인지 모르겠었거든요.^^ 그런 말을 꺼낼 때마다 남편에 대한 분노가 올라왔지만 말을 꺼내봤자 나만 속상하지 싶어 참았어요. 한 가지 기억나는 것은 책을 사주었다는 것입니다. 아이들 책을 살 때도 남편 눈치 보면서 힘들게 이야기를 꺼냈어요. 예를 들어서 “창작을 마음껏 사주고 읽어야 아이가 상상력이 생긴데~” 라고 하면 남편이 기분 좋을 땐 오케이 하지만 기분이 나쁘면 치사할 정도로 기분 나쁘게 노! 를 해버리곤 했어요. 그럴 땐 "정말이지, 내가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책을 사자는건데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하지!" 속상했어요.

지금 생각해도 좀 치사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내 성격에 책을 사주기 위해서 남편의 비위를 맞춘걸  보면 나도 참 대단하다라고 칭찬하고 싶어요. 푸름아버님 책을 읽고 완전 백배 공감하고 신랑에게 푸닷육아를 하자고 했을 때 신랑도 알았다고 해놓고 행동으로는 전혀 옮기지 않고 마지못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만 하는 신랑이 미웠어요. 가뭄에 콩나듯이 말이에요. 그런데 시간이 지난 지금에 생각해 보니 아마도 신랑은 나름 최선을 다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가끔은 집에 있는 많은 책을 보면서 "저렇게 많은 책을 정말 내가 다 샀단 말인가? 우리 신랑이 다 샀나? 보면 "결국은 내 뜻대로 다 구입했네! "하는 생각이 들고 우리 신랑도 참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에게 책을 어떻게 접해 주셨나요?
시간이 꽤 지나서 가물가물하네요. 12년 전에 아이들이 어릴 때는 주위에서 들려오는 정보는 최대한 입수를 했어요. 책방문 선생님을 통해서도 듣고 방송도 보고 서점에 열심히 다니면서 카다로그도 얻었지요. 그렇게 해서 한 살 짜리 아이에게 맞는 책과 베스트만 골라 구입했어요. 서점 나들이를 재미있게 다녔던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행복해지네요. 아이 책을 산다고 다녔지만 제가 저를 위해서 샀구나!, 그래서 행복했구나!를 몇 년 지나서 깨닫게 되었어요. 이렇게 단행본을 넣어줬고, 푸름이 아버님 책에 보면 단계에 맞는 책 제목과 출판사가 있어서 그대로 책을 넣었어요. 과감히 넣었던 전집중에서는 실패한 전집도 있어요, 아니 몇 번 실패했어요. 어쩌다 한번씩 실패를 하다보니 책고르는 안목이 조금씩 생겼고. 아마도 누구에게나 이런 과정은 있지 않을까요?

아버님이 그러셨지요? 한글은 가르치는 것은 양날의 칼날과 같다구요. 저는 책이 양날의 칼과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때 책에 너무 집착해서 딸에게 상처를 줬어요. 둘째를 낳고 첫아이가 한글을 알면서도 읽어달라고 해서 돌아버리는줄 알았거든요. 책으로 큰아이에게 상처를 너무 많이 준 죄책감이 얼마나 큰지 모르겠어요. 책을 아이앞에 던진 적이 있었는데, 딸이 그때받은 상처와 대면하는 시간이 왔었어요. 작년 5학년 때 우리딸이 뒤집어지면서 저에게 분노를 했었지요.
“엄마가 나 7살 때 나한테 책을 던졌어. 엄마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알아!  그때 은호는 엄마품에 안겨 있었고! 내가 그때부터 은호를 미워했던거야!."
전 너무 충격 받았어요. 아니 어떻게 아직까지 저걸 기억하고 있지! 5학년이나 되었는데, 엄마한테 이렇게 분노를 꺼내놓지?" 엄만 아직 성장하지 못했는데, 벌써 네 상처를 꺼내놓으면 엄만 어떻게 하라구? 앞으로 가야할 길이 얼마나 많이 남았는데? 왜 벌써 내게 상처를 꺼내는거니? 하느님, 어쩜 이럴수가 있어요. 난데 없이 웬 날 벼락이예요. 날 보고 어떻게 살라구요?"라고 마음속으로 울부짖었지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푸름이 성장코칭에서 문코치가 해주었던 것처럼 내가 딸에게 코칭을 해주어야 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자 마자 바로 내 충격은 일단 미루어 놓고 내딸을 먼저 살리기로 했어요. 이 상황이 마치 "물에 빠진 두 모녀" 라는 생각이 순간 드네요. 그때 코칭을 바로 시작했어요.
"은수야, 은호가 화낼 때 무섭니?" "응 무서워"
"은호가 화낼 때 무서운 감정이 엄마한테 혼날 때 느끼는 그 기분하고 똑같니?"
"응, 똑같아. 엄마가 날 혼낼 때 너무 무섭다고!"   “그랬어?~~~~”
그때부터 딸은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기 시작했어요.

"은수야~ 그때 엄마가 얼마큼 무서웠어?"  "엄마가 날 방으로 끌고 갔어! ......." 

이런 대화를 나눈 시간이 몇분이 흘러 갔을까? 용서를 빌었어요. 딸은 날 용서 해줄수가 없다고 했구요. 그렇게 우리딸은 울고울고 분노하고 또 분노했어요. 딸은 저에게 울지도 말라고 하더군요. “엄마는 울 자격도 없어. 울지마!” 그러면서 온몸이 흔들리면서 울어댔어요. 그렇게 울었던 딸이 실컷 울었는지 감정이 차분하게 가라앉더군요. 우리가 코칭을 하고나면 나오는 증세가 우리딸에게도 나타났었어요. 내가 코칭을 다녀온 것 얼마나 다행인가! 내가 코칭을 몰랐다면 그렇게 나오는 딸의 감정을 받아들이지도 못했고 치유도 되지 않았을거예요. 그 이후 딸과 저와의 관계가 아주 편해졌고, 딸과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담이 있었다는 것을 그때 알았어요.

책이란 양날의 칼과도 같고, 진정한 마술사 같다고도 느낍니다. 왜냐하면 은수는 현재 초등학교 6학년이고 은호는 3학년인데 학교 수업에 정말 잘 따라가기 때문이지요. 집에서 선행학습과 복습도 전혀 안하는데 학력상을 타고 시험 점수도 좋은것을 보면 정말 신기해요. 은수는 글짓기 실력이 뛰어나요. 2월달에 신문사 공모에 글을 내서 산문 부문 으뜸상을 받아왔더라구요. 둘째 은호는 상담차 학교갔을때 담임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이 “은호는 배려왕자예요." 따로 교육을 하셨어요?“ 전 이말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요. 힘든 와중에도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었던게 이런 행복한 일들을 만들어 낸 것 같아요.

 

책을 보는 아이들의 특별한 성향이나 몰입이 있었다면?
제가 늘 하는 고민이 이런 것이였어요. 우리아이들은 도대체 언제 몰입이 올까? 또 어떤 책을 읽혀야 한단 말인가?  내적불행으로 힘들었어도 전에 했던 경험으로 아이들에게 좋은 엄마가 되려고 놀아줄려고 무지 노력했었어요. 둘째를 재우고 나면 큰 딸과 인형놀이도 하고, 하다보면 졸고 있는 나를 딸이 깨웠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어요.ㅎㅎ  둘째는 틈만 나면 책을 가져오는거예요. 정말이지 지겹더라구요. 지금도 생각나요. 웅진 출판사의 “딱가닥 딱가닥” 이라고 처음부터 딱가닥으로 시작해서 딱가닥으로 끝나는 책인데, 힘이 없으면 이 딱가딱이라는 말도 안나와요. 근데 이 아이는 맨날 "딱가닥 딱가닥" 책인거예요. 남자 아이라서 그런지 공룡소리를 내고 공룡 흉내를 내면서 공룡처럼 싸워야 하고 가지고 노는게 온통 공룡이다보니 한번은 공룡의 뿔로 오랜만에 놀러온 이모 눈을 실수로 찌른 적도 있었습니다. 이때 딸 아이는 공주에 푹 빠져서 살고있었어요. 본인이 공주인줄 알았거든요. 심지어 옆집애가 때렸을 땐 그애 엄마가 “은수야! 범수가 너 때렸으니깐 너도 때려?하면 은수는 "안돼요! 저는 공주라서 때릴 수가 없어요” 할 정도로 정말 은수는 공주로 산 세월이 꽤 되었고 사극역할놀이도 아주 좋아했어요.

새집으로 이사갔을 때 딸이 5살, 아들은 돌이되어가고 있었어요. 이때부터 육아가 힘들고 제가 무너지고 있었으니 아이들에게 정서적으로도 큰 불안을 줬고 애착형성도 제대로 못했어요. 그리고 얼마 후 친정 엄마가 갑자기 돌아가셨지요. 전 한마디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기 딱 알맞은 환자였어요. 집에 대한 상처가 있는 내게 갑자기 주어진 큰 집과  친정 엄마의 죽음이라니! 친정 엄마의 죽음 이후로 2년간의 제 삶이 잘 기억이 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친정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까지는 5년이 걸렸어요. 그땐 육아자체도 힘들었지만 아이들에게 책을 보는 특별한 성향이나 몰입은 생각도 못했어요. 제 삶이 그랬던 것을 누구를 원망하겠어요. 그렇다고 제 자신을 탓하고 싶지는 않아요. 제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감사한 것이지요.

어느날 설것이를 하는데 갑자기 떠오르는 것이예요. “내가 그동안 뭐했지? 아이들에게 어떤 육아를 했지?” 그 순간 망치로 머리를 세게 맞는 기분이 들었어요. 그리고 다시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어요. 나의 상처로 나의 쓴뿌리로 내 인생에 귀하고 귀한 두아이에게 몰입을 주지 못했어요. 솔직히 책에 대한 성향과 몰입 질문을 받고 어리둥절 했답니다. 그리고 우스게 소리로 딸에게 물어보았어요.
“은수야 엄마가 가족탐방에 글을 써야 하는데 넌 무슨 책을 몰입했고 무슨 책을 좋아했니”
딸이 하는 말 “ 엄마는 단짝친구” “야 그건 만화잖아! 만화에 몰입했다고 해?" ㅎㅎ

어느새 두아이가 커버렸네요. 그 사이 어떻게 육아를 해왔는지 기억도 잘 안나지만 아이들은 벌써 3학년 6학년이에요. 둘째는 6살까지 책을 읽어주었고 그 이후에도 낮에는 가끔 한 번씩 엄마 목소리로 읽어줬어요. 단 밤에는 죽어도 책을 읽어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책을 읽어주었어요. 저녁 8시부터 읽어주기 시작하면 10시 전후면 잠이 들었어요. 둘째는 7세에 유치원에 들어가서 우연히 친구들이 보는 만화책을 보더니 혼자 읽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동화책도 보면서 만화책과 더 본격적으로 친해지기 시작했어요. 초록이도 만화책을 많이 읽었다고 해서 저도 만화책을 사주었어요. 아들이 만화책을 읽는 시간이 한 두시간씩 갖게 되었을 때도 “분명 넌 달라~ 내가 해놓은 게 있으니 만화를 보더라도 뭔가를 얻을 것이다” 이런 믿음이 있었어요. 이런 엄마의 믿음을 아는지 은호는 축구든 씨름이든 공부든... 다 잘해내고, 누나가 좋아하는 만화책도 보기 시작했어요. 만화도 남자와 여자와 성향이 다르게 나타나서 누나가 좋아하는 전집 만화책은 안볼 줄 알았거든요. 우리집은 2년전부터 만화전집이 들어오고 있어요.
첫째는 창작그림책 위주로 읽었어요. 물론 다른 종류의 책도 학교 도서관에서 꾸준히 빌려 읽었지만 특별히 우리 딸은 책에 푹 빠지는 몰입하는 쪽은 아니고 책을 취미생활 하듯히 꾸준히 읽었어요. 위인쪽은 아직도 잘 안보는데, 제가 위인동화 넣는 시기를 몰랐거나 접금 방법을 몰라서 였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과의 연결이나 소통은 어떠셨나요?
아이들과 몇 년동안 소통이 되지 않았고 막혀 있었어요. 신랑하고 싸우는 횟수는 더 많아지고 아이들은 불안해가고 밖에서 배려하는 엄마처럼 보이지만 집안에서 아이들에겐 최고로 무서운 엄마의 모습도 있으니깐요. 정말이지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게 많이 싸웠고, 화가 나면 신랑도 말리지 못할 정도로 분노에 찬 저의 모습을 몇 번 보더니 결국은 신랑이 푸름이 성장코칭을 보내기 시작해서 1년 반동안 5번 정도의 코칭을 다녀왔어요. 작년에 운전하고 가는 중에 신랑이 그런 소릴 하더군요. 

“우리 은수, 인형집 사주자! 6살부터 갖고 싶었데! 지금 사주지 않으면 당신처럼 불행 생겨. 지금도 봐~ 당신 부모가 준 불행 때문에 내가 큰 돈 들여서 몇 번째 코칭보내고 있잖아. 나이 먹어서 상처되게 해주지 말자!”  전 신랑의 그소리를 듣고 백배 공감이 되었고 30만원짜리 소꿉놀이 3층 인형집을 사주게되었죠.

은수에게 인형집을 사주자고 하는 데는 사연이 있었어요. 은수가 6~7살 때인가 은수의 소꿉놀이랑 인형과 장난감을 버린 적이 있었어요. 제가 왜 그랬는지! 은수가 그것을 가지고 노는 모습이 그렇게 싫었을까? 제가 그렇게 싫어한 줄은 정말 몰랐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바비 인형이 그렇게 많아서~ 넌 정말 좋겠다!" 그렇게 엄마인 내가 샘이 났었고 그 감정이 폭팔했던 거예요. 난 한번도 구경 못해본 것을 너는 몇 개나 가졌으면 책은 스스로 봐야지! 안보고 왜 나만 보고 있는거야? 왜 인형이 있는데도 못 놀아? 소꿉놀이 가졌으면 좋아 미치는 것 아니야? 더 이상 무엇을 달라는 거야? 정말 돌아 버리고 싶었습니다. 딸아이게 온갖 화와 분노를 해대면서 “너도 들어!” 하면서 그 소중한 딸의 장난감을 분리 수거장에 넣어버렸습니다. 그때 내 딸 마음은 어땠을까요? 지금 3층짜리 인형집은 사주었지만 딸의 상처는 씻어주지 못했습니다. 또 뭐라고 용서를 빌어야 하나 겁이 납니다. 전에도 날 용서할 수 없다면서 내딸이 울 때~ 내 가슴이 찢어지고 찢어졌는데 "하느님! 이를 어찌 해야 할까요?" 지금 이 순간에도 무섭지만 어째든 한 번은 꼭 용서를 빌어야 할 일이예요.

 

우리아이들과 막혔던 소통을 코칭으로 많이 풀었어요. 2년 전에 푸름이 성장코칭을 다녀오면서 내 분노를 다른 곳에서 풀었더니 아이들과 신랑에게는 제 화와 분노가 덜 가더라구요. 물론 한번에 좋아지지는 않았지만요. 어떻게 그 많은 상처가 한두달 만으로 좋아지겠어요. 지금 생각해도 전 상처가 많아서 남들 보다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고.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지만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냥 받아들이고 싶어요. 내 상처를 내가 보듬으면서 살아야 할것 같아요. 이젠 그만 내 자신에게 징징되지 않고 위로해 주고 울어도 주면서 나를 소중한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요. 내가 나를 소중하게 만들어야 내 두아이도 귀하게 키울 수 있지 않을까요? 비록 지금까지 내 불행으로 두 아이에게 소름끼치는 엄마였고 지금도 가끔은 그런 엄마이지만 그래도 전 해낼거예요. 

올해는 저를 소중한 사람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어요. 신랑이 함께해 줘서 이런 결심도 하고 용기가 생기네요. 제 인생에 이런 신랑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누가 저의 성장을 진심으로 바라고 코칭을 보내주면서 응원해주겠어요. 이자 갚기도 힘들면서 코칭을 다섯 번이나 할 수 있게 배려해 준 신랑의 사랑으로 마음이 가볍고 편하게 살아왔어요.

신랑 이야기를 꺼내보다니 눈물이 나네요. 불행이 많은 나 때문에 너무나 많은 고생을 했기 때문이지요, 도대체 이 남자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나와 결혼한 죄로 신랑을 그리 못살게 굴었는지~ 마음이 아파요. 너무나 순하고 여린 사람한테 내 상처를 신랑에게 다 풀었어요. "내가 아무리 미친짓을 했어도 난 죄가 없어, 무죄야. 왜? 나는 두아이를 위해 목숨을 걸고 키우고 있으니깐“ 하며 가슴속으로 수없이 소리 질렀어요. "누구든 내게 잘못을 물을려면 물어 봐! 백번 천번이든 난 무죄라고 소리칠 수 있어! 특히 내신랑아 물어봐라! 온 세상이 다 들리게 대답해줄테니” 하며 가슴속으로 수없이 질렀어요.
그런데... 가족탐방 글을 쓰면서 알았습니다. “내 신랑도 무죄네요. 죄가 없어요.” 이 글을 쓰면서 우리 신랑이 무죄라는 것을 알게 되다니요?  이 기회에 남편에게 말하고 싶어요 “여보~ 사랑해. 그리고 나를 선택해 주어서 감사해요”.

 

엄마숲님의 베스트 육아서와 추천하고 싶은 강연이 있으시다면?
푸름아버님 책 <푸름이 이렇게 영재로 키웠다>가 가장 좋아요. "자연과 책" 단순하지만 이 단순함에서 더 발전하고 확대시켜서 아이들과 지내려고 해요. 비오는 날 빗소리를 들려주고 싶은데 못 나갈 상황이면 아파트 베란다에 우산을 달아놓고 빗소리를 들려주었어요. 굳이 아이들한테 들으라는 말은 안해요. 안해도 되니깐요. 비가 들어올까봐 걱정이 되면 돗자리를 깔아놓지요. 전 푸름이아버님 책을 보고 자연을 이런식으로 응용을 했어요. 
가장 좋았던 강연은 푸름아버님의 녹음테이프 강연이에요. 집에 있을 때나 운전을 할 때 혼자 집중해서 듣다보면 우리 아이에게 어떻게 자연과 책을 주어야 하는지 답이 더 선명하게 나오더라구요. 푸름아버님을 직접 만날 수 없으니 책과 테이프만 몇 년을 죽어라 팠어요. 강연 한줄을 들으면서 몇 개의 답을 얻었던 그때를 생각하니 넘 행복하네요. 그땐 세상에서 제가 최고로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나에게도 이런 행복이 오다니 정말 믿어지지가 않았죠. 왜? 갑자기 그때 일을 생각하니 어깨가 펴지지요! ㅎㅎㅎ
추천해드리고 싶은 심리서는 이무석의 <30년만의 휴식>이에요. 첫 코칭 가기 전에 만났던, 제 스스로 저의 내면을 만나게 해준 책이였어요. 또 정덕희의 <그럼에도 행복하소서>를 추천합니다. 전 개인적으로 이 사람의 순수하고 솔직함이 너무 좋아요. 이 사람 앞에서는 좀 무식해도 이해해줄 여인으로 보이고, 이 사람을 보고 있으면 "그래, 저렇게 솔직하게 살면 되는거구나” 가 느껴지거든요.
그리고 다섯 번의 푸름이 성장코칭이 기억에 남네요. 코칭이 아니였다면 전 어떻게 살고 있었을지 도저히 상상도 되지 않고 코칭으로 인해 내 가슴에 박힌 분노를 빼내어서 숨을 쉴 수 있어서 좋아요. 사람이 자신의 숨소리를 듣고 싶은데 들리지가 않을 때 기분이 어떤건지 그건 당해본 사람만이 알거든요. 나의 숨소리는 4톤의 바위 덩어리에서 깔려나오는 고르지 않은 숨소리 였으니깐요. 그런 내 목소리를 내가 듣고 있을 때 어떤 감정이였겠어요? 이미 사람이 아니지요! 지금은 4톤의 바위 덩어리가 없어지고 나니 세상은 살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껴져서 행복해요. 앞으로도 제 스스로 많은 것을 찿을 수 있을거란 희망을 보여준 푸름이 성장코칭이 저에겐 딱 안정맞춤 이였다라는 생각이 들구요. 다른 수업을(상담) 해보라고 주위에서 권했지만 저는 코칭을 선택했고, 내 선택에 믿음이 생기니 코칭에 신뢰가 가더라구요, 그결과 저는 코칭에서 엄청나게 많은 것을 얻었답니다. 심지어 친정아버님의 죽음까지도 느꼈으니깐요. 개인적으로 문코치님께 깊은 감사를 드려요. 남은 내 인생에 코칭이 아주 많이 작용할 것 같아요. 내 두아이들에게도 이런식으로 용서를 빌 날이 올테니깐요. 첫번째 코칭 다녀왔을 때에는 신랑이 미쳤다고 하고, 두번째 코칭 후부터 변하기 시작한 나를 보더니 그 이후로는 신랑이 더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어서 다녀오게 되었고. 딸 은수에게 무슨일이 생기면 코칭식으로 다가가니깐 어떤 상처를 받아도 바로 문제 해결이 되는 느낌과 제 문제나 상처도 이미지로 떠오르니 현실과 타협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제 모습이 보여, “코칭이 우리 가족에 큰 도움이 되는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어요. 요즘은 딸 은수가 사춘기라서 친구들과의 관계면에서 힘들어 할때 선생님과 힘들어 할때 이때는 제가 코칭식 대화법으로 접근을 하면 딸이 “ 엄마에게 얘기 하고나니깐 마음이 이젠 풀린다.”라고 하거든요.


남매간의 관계는 어떻게 이끌어주셨나요?
두 아이 관계에서 특별히 힘든 부분은 없었어요. 서로가 성이 다른 만큼 노는 것도 다르고, 생각하는 것도 완전히 달라요. 이 모든 다름을 제가 먼저 알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고 각자의 고유함을 존중해주다보니 아들이 누나 방에 들어가는 것으로 처음에 조금 다툼은 있었지만 아무 문제없이 지금까지 잘 지내고 있어요. 누나의 장난감에 손이 가기전에 거의 동시에 동생도 소유감을 채워주었던 점이 도움이 되었던것 같아요. 언젠가 호기심에 누나에게 제일 소중한 인형을 만진 적이 있었는데, 그땐 살짝 가벼운 마음으로 말해주면 은호가 쉽게 받아들여서 많이 힘들지는 않았어요. 그리고 누나도 동생을 질투를 하지 않았어요.
먼저 태어났기에 먼저 확보한 장난감이 이미 자기 방안에 진열 되어있거나 자기가 좋아하는 인형이 충분히 채워져 있으니깐요. 아~ 어느날 그러더라구요. 30만원짜리 3층집 사주었을 때요 “엄마, 나 저 3층집 사고나니깐 이젠 아무 것도 갖고 싶지 않아” 정말 그때부터는 장난감과 관련된 것은 사달라고 안했어요. 충분히 채워졌나봐요. 요즘은 마트에 가면 둘이 할 수 있는 "인생게임, 억만장자게임"같은 보드게임 종류가 많아요. 이런 게임 셋트를 사서 둘이 잘 놀아요. 오늘도 둘이 할 수 있는 게임이 택배로 도착했네요.^^

사실 둘의 성향 때문에 오는 갈등이나 다툼은 몇칠 지켜보면서 나름 달래기도 하고 혼내기도 하다보면 어느새 서로가 좋아져 있어요. 조금씩 서운한건 있어도 서로가 서로를 존중해 줘요. 또 누나가 동생 빼놓고 친구들과 놀러가면 제가 그 자리를 채워줘요. 아들과 햄버거 데이트, 아이스크림 데이트, 함께 걸어서 시장다녀오기, 시장에 가서 평소에 잘 안 사주는 과자 종류도 사줘요. 갑자기 누나가 친구를 데려올 때는 아들과 40분간 게임하는 특별 써비스를 하고 아들이 좋아하는 만화책 사러가요. 그렇게 즐겁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친구를 만나면 좋다고 놀러가지요. 순간 순간 대처 하다보면 그 순간에 맞는 대처 방법이 자꾸 생기는게 신기해요. 그렇게 잘 풀리는 편이예요.

 
엄마숲님 부부에게 두 아이의 존재는? - 부부를 성장의 길로 안내하는 주인공
둘째는 은호는 5살까지 여전히 공룡을 좋아했지만 좋아하는 게 너무 다양해요. 한 가지에 푹 빠져서 있으면 저도 편할텐데 그게 아니에요, 공룡을 좋아하다가 말에 관련된 것도 좋아하다가 매일 전쟁그림만 그리다가 레고, 배, 씨름, 축구, 총, 전쟁놀이 동시에 좋아할 때가 많으니깐 둘째의 성향이 혼란스럽더라구요. 남들은 한 가지에 빠진다는데? 저 아이는 왜 동시에 너무 많은 것을 좋아하는지? 저 아이가 좋아하는 것은 진짜 있긴 한 건가? 하는 의심도 들 때가 있었어요. 그러다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책상을 하나 사주었는데 그 책상이 전쟁놀이 세트장이 되어서 지금도 우리집에 손님이 못들어 올 정도예요. 욕심이 많아서 자기가 갖고 싶은 것은 어떻게든 얻어내는 성향이고 셈도 아주 빠르고 눈물도 많고 감성이 어쩔 땐 저를 보는 것 같을 정도로 풍부해요. 승부욕이 있어서 무엇이든 몰입하는 집중력이 아주 좋아요. 축구시합에서 지고 오는 날이면 현관문에 들어서자 마자 참았던 눈물을 터트리고, 딱지치기도 지면 집에 와서 펑펑 울고, 이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였죠. 이렇게 욕심이 많은 아들을 한참 위로해 준 때가 있었네요. 운동신경도 타고나서 은호의 에너지를 감당할 사람은 우리 집에 유일한 남자 아빠인데 아빠도 씨름을 몇 번하거나 몸싸움하고 나면 지쳐버릴 정도예요. 그런 아이가 7세 유치원에 들어가서부터 규칙을 잘 지키고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공부에도 욕심이 많고, 2학년 겨울방학부터는 자기가 알아서 주도학습을 하니 진짜 웃음도 나고 신기해요. 방학숙제도 본인이 알아서 미리 끝내놓고 놀아요.

첫째는 눈에 보이게 한 가지에 빠지는 성향이라 제가 좀 편했어요. 학교 수업도 잘 따라가고 자기 주도학습이 잘 되어있어서 학원은 좀더 크면 보내고 놀기를 바랬는데 딸 생각은 그게 아니더라구요. 어느날 학원에 보내주지 않는다고 우는데, 딸한테 그런 상처가 있는 줄 몰랐어요. ‘법륜스님이 요즘은 학원 왕따도 있다고 하니 아이가 정 가고 싶다고 하면 보내주세요“. 라는 말이 와 닿더라구요. 4학년 때 학원에 보내주지 않아서 학력상을 지금까지 한 번도 못받았다고 대성통곡하고 울었어요. “우리반 ***도 수학이 90점이 넘는데 나는 80점이고 영어도 나보다 선생님 말씀을 못알아듣는 ***도 학원에 다녀서 90점이야. 그앤 학력상도 옛날부터 받았는데 나는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받은적 이 없어. 내가 잘 하고 싶다는데 학원도 안보내주는 엄마가 엄마야? 엉엉엉” 전 그때 정말 당황해서 어쩔줄 몰랐어요. "그럼 진작에 표현을 하지, 이제야 펑펑 울면서 터트리는거니?" 그때 '내가 성장해야 겠구나. 부모가 성장하지 않으면 아이를 키울 수 가 없겠구나'하는 생각이 순간 들었습니다. 그날밤 그렇게 울던 딸이 그달에 학력상을 받아오더니 5학년 내내 학력상을 받아왔어요. 엄마앞에서 대성통곡 한번 하고 마음에 어떤 변화가 왔는지 아이의 성적은 올라갔고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너무 대견한지 어깨에 힘을 주면서 다니는 딸이 끔찍하게 예쁜 순간이었습니다.

평소에 편지나 글쓰기를 좋아해서 유치원 때부터 담임 선생님은 물론 교장 선생님께 편지를 꼭 보냈고 그러고 나면 몇칠 후 답장과 선물을 받아왔어요. 그땐 참 뿌듯했어요. 솔직히 학력상을 받아 오는 것보다 교장 선생님에게 받아오는 편지나 선물은 저에게 왜 그렇게 좋은지요? 그때 마다 친정이나 시댁 가족들에게 틈만 나면 딸자랑을 했어요.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 우리 딸은 학교 대표로 글짓기대회도 나가도 작년에는 어린이동산이라는 잡지에 저도 모르게 응모했는데, 그게 12회 으뜸상을 받은거예요. 저도 놀랐지만 신랑은 저 보다 더 충격이 이었나봐요. 우리 은수가 쓴 글을 두줄 읽다가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저보고 읽으라고 더 이상 못 읽더라구요. 겨울방학 끝나고 학교로 상패가 오고 은수 통장에 입금된 십만원의 상금을 확인하고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근무중이 신랑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신랑도 갑자기 힘을 내더라구요. ㅎㅎㅎㅎ 정말로 이런 기분은 말로 표현 못할만큼 넘 좋고 행복해서 막 웃음이나고 지금도 가슴이 갑자기 벅차오르네요. 제 일상이 늘 행복한 것 아니지만 그래도 가끔은 세상을 보고 창밖을 보면 행복해요. 두 아이가 우리 부부의 성장의 길로 안내해주고 진정한 가족으로 만들어가는 두 주인공이니깐요.

 

푸름이닷컴을 자신에 맞게 어떻게 활용하셨어요?
저는 한 우물만 파는 성격이라 푸름이닷컴에서 성장하기로 마음먹고, 푸름이 성장코칭과 푸름부모님 강연과 상담을 제 인생을 변화시키는 도구로 활용했어요. 푸닷교육을 하다 보니 어느새 육아정보가 쌓이게 되었고 두 아이를 키우면서 "보육교사"와 "사회복지사"자격, 그리고 학점은행제로 전문학사자격 취득도 별 어려움 없이 해낼 수 있었지요. 푸름아버님, 어머님 두 분은 제 외로움을 아시고 진심으로 저를 사랑을 주셨어요. 외로운 "엄마숲"이라는 나무에 햇빛과 물과 사랑을 주셨고, 늘 제가 잘 지내기를 바라셨죠. 말씀을 안하셔도 사랑을 느낀다는 것이 참 행복하네요. 그러고 보니 제가 인생을 헛 살지는 않았네요. 상대의 사랑을 느끼고 마음이 고요해지니까요. 아~ 이런 기분이 들기도 하는게 참 신기해요. "푸름아버님, 어머님~" 감사드립니다. 너무나 긴 세월이였습니다. 어느새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제가 푸름이 육아를 한지가 13년째예요. 그렇게 고통스러우면서도 결국은 이렇게 까지 왔네요. 무엇보다 “자연”이라는 “엄청나고 위대한 단어”를 알게 해주셔서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내적불행으로 파괴되어 가면서도 “자연과 책!”이 두 단어가 없었다면 지금의 엄마숲은 푸름이닷컴에 존재하 있지 않았을 겁니다. 죽을만큼 힘들 때에는 “전쟁터에선 군인에겐 총이 목숨이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책이 총이야”라고 제 마음을 훈련시키며 13년을 푸름이 육아만 오롯이 해왔어요. 그러다 보니 우리 신랑에게도 변화가 왔어요. 평소 한 우물만 파는 저를 보고 신랑은 "완전 부족하고 부족하기 짝이 없는 사람! 융통성이 없는 사람!"이라 하고, 그러면서 우리 아이는 푸름이가 아니라면서 정신을 차리라고 몇 번을 이야기 했으니깐요. 그런데 그러는 사이에 우리 애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부터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지요. 첫째 아이 상담할 때에는 “어머니! 은수는 앞에서 끌어주는 리더십보다 뒤에서 뒤쳐져 있는 아이들을 이끌어주는 리더십이 있어요”. 둘째 아이 상담할 때에는 “어머니 은호가 아버님을 굉장히 존경하고 있어요. 아버님이 교육을 따로 시키시나요? 배려왕자예요”...이런 소리를 들으면서 신랑은 저에 대한 믿음을 갖기 시작한 것 같아요. 앞으로도 우리 두 아이를 위해서 계속 푸름이닷컴의 교육정보를 활용할겁니다.

 

푸름이교육법 육아를하면서 얻은 가장 큰 자산이 있다면?
첫째 딸 은수를 임신하고 낳아서 키운 4년과 둘째 은호가 태어나서 8개월까지의 푸닷육아가 저에겐 가장 큰 행복으로 남을 것 같아요. 내 인생에 이렇게 또 행복한 순간이 올까요?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은수를 안고 “동네 사람들! 내 딸이에요.”라고 외쳤던 것을요. 둘째를 낳고 퇴원 후 집에 온 첫날밤 4살 딸과 막 태어난 아기가 내 품에 있었던 우리의 첫날밤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황금알을 두 개나 얻은 기분이였습니다. 여고시절에 언뜻 봤던 시 속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착각으로 살았답니다.
"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라면~ 깜깜한 밤, 여우 나오는 산골에 삽살개가 짖어대도
 초가집 텃밭에 채소를 심고, 담쟁이에 호박덩굴 울리며 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고 싶네"
어렴풋이 이런 시가 생각났어요. 그렇게 첫날밤이 지나가고 8개월까지 행복하게 시 속의 주인공이 되어서 두 아이를 키웠던 그 시기가 지난 세월의 저에겐 최고의 자산이에요.

그리고 내적불행으로 더럽다는 똥통에 빠진 6년! 그리고 그 똥통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한 2년 전부터 조금씩 씻어가는 현재까지의 시간이 다 자산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많은 상처를 받아 봤기에 우리 딸이 상처를 말하면 코칭식 대화법과 위로로 사춘기 딸과 아들이 잘 지내도록 노력하는 과정도 포함해서요.

또한 저와 성장을 함께 해온 천안방님들이 저에겐 자산이지요. 그동안 힘들 때 이야기 나누고 함께 울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가 되었던 이런 인간관계가 자산이라는 게 실감이 되었어요. 우리가 언제 모임을 하기 시작했는지 확실한 기억은 없지만 한 3년쯤 된 것 같아요. 처음에는 아산현충사 잔디밭에서 아이들과 함께 하는 모임으로 시작했고 어느정도 자리를 잡아가면서 독서토론을 하게 되었어요. 후배님들의 열정이 얼마나 대단한지 만날 때마다 감탄사가 나왔어요. 오~ 어떻게 저런 열정이 나오지? 젊음과 지성과 열정으로 아이들에게 온갖 힘을 쏟아내는 후배님들이 어떤 부분에선 나의 스승이란 생각이 들고, 그럴 땐 저도 모르게 고개가 숙여지지요. 푸름아버님 말씀대로 푸닷에 고수가 없다는 말씀이 맞는것 같아요. 

 

책읽어주기 자원봉사와 하고계신 활동에 대해 들려주세요.
다문화 가정과 한부모, 조손가정이 특히 많은 시골 초등학교에서 점심시간에 30분 책읽어주기를 하고 있어요. "아이들의 마음을 알아주고 동화책조차 아이들편이구나~" 라고 느낄만한 치유책을 준비해서 읽어주는데, 듣다가 우는 아이도 있고 책읽기가 끝났는데도 다음 수업 준비를 하지 않고 울기도 해요. 그럼 그냥 그 아이를 안아줘요. 한번은 엄청나게 폭력적인 남자아이가 있다고 사서선생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어느날 그 아이가 수업에 들어와 가만히 앉아서 제가 읽어 주는 "푸른개"라는 동화를 조용히 듣고 간적도 있어요.  
또 하나는 도서관에 유치원 애들이 오면 동화구연 해주는 건데, 어떤날은 70명도 된 적이 있었죠. 정말 신기한 것은 두렵지만 막상 수업에 들어가면 그 아이들에게 신나는 동화책을 읽어준 내가 대단하게 느껴진다는 거예요. 그 많은 아이들이 “또! 읽어 줘요~ 또요, 또~”할 때마다요.
너무나 하고 싶었던 일이어서 2년 동안 열심히 했고, 내 자신에게 집중하고 싶을 땐 잠시 쉬면서 심리상담 공부를 했는데 마음이 넘 행복했었어요. 이제 봄이 되었으니 초등학교와 도서관에서 “엄마와 함께 하는 책놀이”로 다시 봉사활동을 시작해야죠. 엄마와 2살 아이들과 수업을 하는데, 책읽고 놀이도 하고 육아상담도 하는 일이에요.  두 아이의 엄마이고 아내로서 이젠 내 남은 인생을 어떤 수업으로 채워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처럼만 노력하면 난 진정한 나로 다시 태어나겠지요.^^

 

푸사모 가족탐방 후기

가족탐방을 쓰면서 과거를 뒤돌아보려니 제 내면과 대면하는 시간이 되어 몸살을 앓았고, 주사와 약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나 잔뜩 부어오른 눈에 냉찜질을 해가면서 글을 썼습니다. 큰 산을 또 한번 넘어가게 되네요. 성장이라는 존재는 아마도 살아있는 화석인가 봅니다. 저에게 성장의 길을 또 이렇게 하나를 열어보이니깐요.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오면서 넘어지면서 다치고, 다친 곳을 또 다치면서도 살아야 한다! 이제와서 포기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 버텨왔어요. 내가 누군데! 푸름아버님 한번을 만나보지 못했어도 책 한권과 강연테이프 1개로 이렇게 푸름이육아를 멋지게 하고 있고, 두 아이를 모유로 키우고 내가 생각해도 난 너무 타고나서 아이들한테 반응도 1초만에 하는 사람인데, 그런 내가 왜 이러지? 난 살아야 되! 로 버텨낸 내 안의 이 힘은 자신들이 가진 한계안에서도 최선을 다해 키워주신 내엄마, 아빠의 사랑이었다는 깨달음을 푸사모가족탐방을 쓰면서 알았습니다. 엄마, 아빠라는 호칭만 불러도 눈물이 납니다.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