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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사모 가족탐방] 할아버지와 함께하는 육아 - 나무꽃님 편

 

푸름이닷컴을 언제 처음 알게되셨나요?

첫째 딸 이안이를 낳기 전에 대여섯권정도의 육아서를 읽었습니다. 덕분에 태어나자마자 예쁜 그림들을 보여주며 이야기도 해주고 동시도 읽어주고 달력의 선명한 그림들을 보여주곤 했지요. 생후 1개월 즈음, 동화책을 사주고 싶어서 인터넷 여행을 하다가 우연히 푸름이닷컴을 알게 되었답니다.
2005년도에 가입해서 푸름이닷컴과 함께 한 시간이 벌써 10년이 되었네요. 

 

주부에서 교사가 되기까지 나무꽃님의 독특한 이력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

박사과정 수료 한 학기를 남기고 갑자기 가족 사업 쪽으로 레고유치원(센터)의 원장직을 권유받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 저의 꿈은 국문학 박사학위 후 대학에 남는 거였지요. 그 당시 저희 아이들이 유치원을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고민 끝에 우선은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정말 좋은 경험인 것 같아 덜컥 “유치원”이란 세계에 뛰어들었습니다. 나의 꿈은 잠시 미루고 경험삼아 열심히 한번 해보자 하고 시작한 일이었는데, 글만 파던 사람이 사업을 하려니 자꾸 적자가 나더라구요 ^^ 소수정예 우리 아이들을 제 기준에서 가장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자니 사업마인드가 아니라 망하는 마인드일 수밖에 없었답니다. 그 당시 닷컴에서 종종 아이들 놀이와 배려에 관한 부분 강연을 하고 있었던 터라, 교육 면에서는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는데, 운영 면에서 많이 힘들더군요. 있는 동안 실패속에서 얼마나 얻을 게 많던지, "경제관념 부족한 사람은 사업은 쳐다도 보지 말아야 하는구나" 라는 뼈아픈 교훈을 얻었답니다. ^^;

그러는 사이 우연히 모 고등학교에서 국어 교사의 자리를 제안받게 되어 그 이후로 4년 동안을 줄곧 교편을 잡고 있습니다. 그 사이 박사과정은 잘 마쳤고요. 작년에는 외계인도 무서워서 못 쳐들어온다는 중2담임을, 올해는 파란만장한 중학교 3학년 담임이었고, 며칠 전에 눈에 넣어도 안아픈 내 학생들을 졸업 시켰네요. 유치원 원장으로 있을 적엔, 유아들의 부모와 기관의 관리자 입장 모두에 대해 이해할 수 있어 배운 점이 많았고, 학교 현장에 있으니 이번엔 학부모와 교사의 두 입장이 너무나 잘 이해가 됩니다. 특히나 저는 닷컴에서의 교육마인드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어찌보면 대립적이고 이해관계적인 이 두 입장에서 푸름이교육의 핵심을 적용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위치였습니다. 우리가 입에 붙어버린 ‘조건없는 사랑’이나 ‘배려 깊은 사랑’이라는 것은 빈부의 차이도, 신분의 차이도, 외모의 차이도 뛰어넘는 즉각적인 피드백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수많은 말과 눈빛과 행동을 통해 스스로 증명할 수 있었습니다.  

 

친정아버지와 푸름이닷컴에 함께 가입하신 것이 참 특별합니다.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2005년 1월 8일, 그 해의 첫눈과 함께 이안이가 태어나자마자 저희 아버지는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딱 40일을 이안이를 위해 새벽기도를 가시더라구요. 산후조리를 친정에서 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에 어찌나 감동으로 뭉클하던지... 이 세상에 태어나 누군가의 순전하고 간절한 축복의 기도를 받는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새벽마다 조용히 나가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고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삶 자체가 기적이신 분입니다. 어렸을 때 할머니에게 버림받은 상처, 사랑받지 못한 상처가 아버지의 마음에 세상에 대한 불신을 주었겠지요. 그것들을 삶의 여러 지점들에서 이겨내시려고 얼마나 애를 쓰셨을까요. 그것의 영향을 받는 나는 또 얼마나 순간순간 아픔이 있었을까요. 푸름이닷컴의 2005년생 방인 하트베이비방에 둥지를 틀고 거의 매일 육아일기를 쓰듯이 나의 내면을, 이안이의 생활들을 기록할 때마다 저는 본능적으로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새롭게 정립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 부모가 나를 키우던 방식이 아닌 새로운 방식을 내 부모와 “공유”함으로써 내적불행에 대한 대물림의 고리를 한꺼번에 해결하고픈 무의식의 욕구였지 않았을까. 그 느낌들을 붙잡고,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힘들었던, 가장 많이 닮은 아버지에게 푸름이닷컴에 대해 적극적인 권유를 했습니다. 회원가입까지 친절하게 해 드리면서요. ^^

우리 부녀는 평소에 편지를 자주 주고받는 사이였고, 제 마음을 진실되게 터놓으면 아버지 역시 마음을 금방 여시는 분이셨기 때문에 사실 그리 힘든 일은 아니었습니다. 글 솜씨가 탁월하신 아버지는 그 후부터 푸름이닷컴의 엄마들 마음을 사로잡더군요. 닷컴의 많은 엄마들에게 어느샌가부터 자의반 타의반으로 “또 한분의 아버지”로 자리하시면서 많은 엄마들이 아버지에게 “아빠”의 이미지를 투사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저는 굉장히 안도했습니다. 아버지를 푸름이닷컴인으로 만들고 싶다는 저의 계획이 성공하는 순간이었지요.

사실 가장 기뻤던 일은 따로 있습니다. 저희 아버지의 글을 읽으셨던 분들은 아시겠지만, 아버지는 평생을 공사장에서 현장노동기술자로 일하시는 분입니다. 여덟살 때 교과서 한권을 모두 외울정도로 명석하셨던 아버지는 가난과 버림받음과 방치, 할머니의 분노의 투사 대상으로 너무 일찍 자신의 꿈을 접으신 분입니다. 그러신 분이 푸름이닷컴을 만나고 닷컴의 많은 분들과 상호작용이 일어나면서 “할아버지”라 불리는 늦은 연세에 “꿈”을 가지고 그것을 이루신 기적. 이제 아버지는 전국사진공모전에서 당당히 대상을 거머쥐신 사진작가이십니다. 아버지가 꿈을 위해 하나하나 노력하실 때마다 제 마음은 너무나 뛰었습니다. 아버지의 지금 이 순간의 “성취”와 “행복”은 지난 날들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그저 “다시 사시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새벽기도라는 상징적 행위를 통해 순전한 사랑이 무엇인지 보여주신 것처럼, 닷컴의 많은 분들이 아버지의 이야기에, 아버지의 아픔에, 아버지의 사랑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여준 그 행위는 아버지를 새롭게 사시게 했던 순전한 사랑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당신의 아픈 과거를 오픈하며 담담히 그 시절로 다시 걸어 들어갔을 때, 아버지도 분명 당신의 부모와 대면하셨을 겁니다. 그 대면으로 서러운 마음들을 화해와 용서와 사랑으로 바꾸시는 모습에 모두가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푸름어머님이 “런닝구로 눈물 훔치며” 읽으셨다던 댓글이 생각나네요.^^

 

푸름이닷컴에서 가장 영향받았던 사람이 있다면?

이안이가 생후 1개월이 되었을 때부터, 저에겐 닷컴이 운명이었습니다. 첫아이를 열심히 키우면서 순간순간 막힐 때마다 쪽지에 적어두었다가, 가까운 곳에 정모가 있을 때마다 푸름아버님을 만나서 질문했습니다. 특히, 둘째가 태어났을 때, 아버님이 제 표정만 보시고도, “나무꽃~ 지금이 가장 힘들때야. 이안이와 수아 둘을 키운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안이를 둘째 키우는데 조력자로 삼아봐.” 어찌나 이 말씀이 강하게 들어오던지, 9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제 귀에 생생합니다. 이안이가 유난히 빠른 발달을 보일수록 질문거리도 많아지더군요. 저에게 신처럼 나타나 질문에 대해 해답을 주실 때마다 저는 또 얼마나 그 말들을 믿고 따랐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이지 교주와 광신도 정도에 비유하면 알맞지 않을까요? ^^

그리고 사실 푸름아버님 못지 않게 고마운 분들이 많습니다. 바로 푸름이닷컴 소모임 "하트베이비방(2005년생)" 우리 식구들. 그 속에서의 소통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굉장한 파워였습니다. 아이 키우면서 누구나 자신을 아이에게 비춰보게 되는데, 그 굴절이 심해서 왜곡될수록 넘어야 할 산이 하나 둘씩 빠르게 나타납니다. 저는 이 산을 하트베이비방 식구들과 “함께” 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소중하고 건강한 인연, 그 10년이란 세월의 가치는 저에게는 “제 2의 유년기”처럼 그렇게 소중하고 중요한 의미입니다.

 

푸름이닷컴에서 얻은 가장 큰 가능성이 있으시다면?

시골에서 유년시절과 초등시절을 다 보낸 저는, 대자연이 인간에게 얼마나 포용력있고 따뜻한 존재인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연이 곧 숨 쉬는 그 자체였으니까요. 그런 저에게 푸름이닷컴의 “스킨쉽, 자연, 책” 이 세 가지의 환상적인 어울림은 제 삶이 얼마나 흥미진진하게 펼쳐질 수 있는지, 저도 의식하지 못하는 그 가능성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아이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이지, 영재판정 받으려고 태어난 것은 아니지요. 우리는 우리의 많은 가면에 가려져서 삶의 본질을 보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닷컴에서 가장 크게 얻은 것이 있다면 그것에 대한 통찰이라고 해야 할까요.

내가 키워진 배경, 아픔, 상처, 무의식의 분노들과 진정으로 화해할 때, 그 가면이 벗겨지고 나 자신을 바로 보게 된다는 것, 그 역할을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내 아이가 숙명처럼 맡았다는 것, 그래서 우리는 크게 보아서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가 아니라 각자가 너무도 아름답고 온전한 인간일 수밖에 없다는 것, 이것을 깨달을 때, 조건을 건 집착을 버리고 조건없는 사랑을 “서로”가 나눌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닷컴을 통한 가장 중요한 깨달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글 · 영어놀이를 했던 방법과 나무꽃님만의 원칙과 철학을 들려주세요.

이안이가 4개월 무렵엔가 정모에서 푸름아버님의 강연을 듣게 되었는데, 그 때 들었던 말 중에 제가 지금도 강연 때 도용해서 쓰곤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아이의 하루는 어른의 1년과도 같다”

그 말을 듣고 돌 무렵까지는 밤마다 다음날 이안이와 무엇을 하고 놀지(장미길산책, 비둘기 보고 오기, 꽃집 들러 향기 맡고 오기 등등) 미리 하얀 종이에다 써서 거실 게시판에 붙여두었습니다. 이렇게 기대감으로 시작하니, 오늘의 육아가 신이 났고, 내일의 육아가 설렘으로 다가왔습니다. 돌 무렵까지 사물 인지를 충분히 해주고, 닷컴에서 책 정보 얻어가며 택배 아저씨와 007작전으로 동화책들을 사들이고, 좋아하는 사물이 생기면 책과 꼭 연계시켜서 좋아하는 동화책들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려주었습니다. 세밀화시리즈 중에서 당근책을 안보면 당근으로 요리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만지게 해주고, 향 맡아보게 하고, 인지시켜주고, 배추 책을 안 보면 재래시장에 가서 시장에 널려있는 배추를 보여주는 식으로, ‘책 한권에 한 가지 추억 만들기’ 놀이를 정말 많이 해 주었습니다. 푸름이닷컴 쇼핑몰에서 <이미지리딩북>이 나왔을 때, 직업관련 책을 안 보길래, 소방서, 동물병원, 큰 마트(매니저), 빵집, 우체국, 경찰서 등을 돌아다니면서 체험 겸 기념 사진을 찍어 그 책 맨 앞장에 붙여주었습니다. 아이가 배운다고 하니 함께 사진 찍기를 거절하시는 분은 없더군요. 그 당시만 해도 제 차가 없던 시절이라, 날씨 좋은 날만 되면 두 아이들과 함께 택시로 버스로 다녔던 추억, 감사의 표시로 귤 두 개씩 고사리 손으로 드렸던 추억까지...동화책 한 권 한 권, 정말이지 추억이 없는 책이 없습니다.

동화책에 녹아 있는 정서들을 많이 흡수하고 경험해서인지, 감수성도 뛰어나 18개월 즈음엔 땅에 떨어진 꽃잎 하나도 아플까봐 밟지 못하고 빙 돌아다니기도 했습니다. 여덟 살이 지나면서 쇼팽의 왈츠를 피아노로 완벽하게 연주하는데, 엄마라서 그런지 듣고 있던 저는 그 연주에 완전히 몰입이 되더군요.
18개월 무렵, 읽을 줄 아는 단어가 많아지고 문자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한글놀이를 시작했습니다. 그 무렵에 이미 “엄마, 물은 시원해요. 아이스크림처럼.” 이렇게 비유법도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어제, 밤에, 아침에, 아까, 오늘, 조금 있다가’ 같은 시제 표현도 잘 하고, ‘은, 는, 도, 만’ 같은 조사도 제대로 잘 사용하고, ‘많이, 조금, 엄청, 매우, 빨리’같은 부사도 많이 사용하고, “이건 매워서 못 먹어요” 같은 인관관계 표현이라든가, “하부지는 수박 먹고, 이안이는 자두 먹고” 같은 상황 표현들을 잘 말할 줄 알았기 때문에 한글놀이는 이안이에게 신나는 놀이 그 자체였습니다. 물티슈 뚜껑으로 글자 붙여서 까꿍놀이하기, 화장실에서 물감놀이 할 때 글자 인지하기, 동물들에게 이름표 붙여주기, 영업사원분들이 전해주고 가시는 커다란 그림에 사물 이름 붙여주기, 간식에 이름표 붙여주기, 가족에게 이름표 붙여주기, 빨래줄놀이, 연극놀이...집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놀이에 한글을 살짝 얹으니 무한한 놀이가 가능해지더군요. 특히, 책 제목을 크게 적어서 커다란 거실 창문에 붙여준 것은 책과 한글을 연계하는 데 아주 좋은 활동이었습니다. 이안이 자신과 만나는 모든 것들에 대해 자연스레 감정이 스며들도록 이안이의 발달 리듬에 맞게 주변을 잘 활용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이안이가 책을 통해 좋아하게 된 캐릭터들을 이용해 쓴 편지를 한동안 거실 창문에 붙여두고, 다음날 아침에 이안이가 읽을 때 어떤 표정을 지으면서 행복해 할지 상상하는 게 저에게 큰 행복이었습니다. “이안아 안녕! 난 늑대야. 수아랑 우리 집에 놀러 와. 사랑해.” 이런 간단한 편지로 시작해서 어느 날엔 조사 하나만, 어느 날엔 단어 하나만, 또 어느 날엔 문장 하나만 바꿔가면서 붙여주었습니다.

 

읽기독립으로 가던 즈음에도 역시 놀이를 통해 아이가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서, 아주 쉬운 읽기 그림책들을 들여 스스로 읽은 책 제목을 펠트지에 써서 목걸리로 엮기, 독서나무에 나뭇잎으로 붙이기, 화분에 꽃 모양으로 꽂기, 책 제목 옆에 제일 좋아하는 스티커 붙이기 같은 놀이를 하였습니다. 푸름이닷컴 쇼핑몰의 <똘망똘망 쥐돌이> 시리즈는 아직까지 읽기독립용으로 이보다 좋은 책을 못 봤을 정도로 훌륭합니다. 쥐돌이 캐릭터를 펠트지로 만들어 융판에 붙인 후 쥐돌이가 이안이에게 “이안아~ 풍선 달아줘”라는 편지로 마음을 움직이게 만들어 다 읽은 책 제목을 풍선에 적어 쥐돌이 손에 붙여주는 놀이는 제가 생각해도 너무나 멋진 놀이였답니다.

생후 9개월 무렵에 제가 소중히 아끼던 전문가용 색연필을 이안이에게 선물로 주었습니다. 작은 손으로 무언가 쓰는 흉내를 내는 우리 이안이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엄마 가슴은 뛰더군요. 아이가 줄 한 개를 그어도 종이를 아끼지 말라고 하신 푸름아버님의 말씀만 철썩같이 믿고 따랐습니다. 그래서 유난히 손의 협응력이 일찍 발달한건지, 어릴적부터 놀라운 그림 솜씨를 뽐내며 주위 사람들을 감탄케 했던 이안이입니다. 5세 무렵이 되자 엄마에게 편지를 써서 주었고, 6세 무렵이 되자 이야기 책을 만들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우리 두 딸과 엄마의 하트모양 이쁜 편지노트에 가끔씩 서로 러브레터를 주고 받습니다. 수아의 한글놀이는 수아가 두돌 무렵이 되자 이안이가 자연스럽게 아이디어를 내서 놀이를 해 주었습니다. ‘언니선생님’으로 전혀 손색없었기에 엄마가 힘 하나 들이지 않고 동생 한글을 똑 떼 주었던 게 수아가 5세 무렵이었습니다. 언니보다는 한참 늦지만, 부모의 사랑에 언니 사랑까지 듬뿍 받으며 힘 하나 들이지 않고 한글을 똑 뗀 우리 수아는 정말 축복받은 아이에요. ^^

 

 

영어 - 부모는 조력자, "노는 것"의 주체는 아이
이안이가 생후 1개월 무렵 푸름이닷컴은 영어를 일찍 시작하는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영어도 언어니까 언어환경을 잘 만들어주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제가 의식적으로 한글 책과 영어 책을 1:1 비율로 구분 없이 읽어주었습니다. 영어단어 아웃풋도 한국어와 마찬가지로 사물인지와 많은 반복을 통해 자연스럽게 나오니 그 때부터 저는 제 생각이 맞다는 확신이 들더라구요. 그 때 푸름이닷컴의 <터잡기> 전집은 지금도 두고두고 감사한 마음이 드는 영어구성이랍니다. 정말 우리 아이들에게 ‘마르고 닳도록’ 이란 말이 딱 어울리는 전집이에요. 생후 16개월 즈음부터 저는 영어놀이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언어는 그 언어권의 문화를 집약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영어권 문화의 내용을 담은 영어동화책들은 정말 좋은 책이지요. 융판에 세계지도 만들어 붙이기, 책에 나오는 각 나라의 국기를 지도에 꽂기, 팝업북을 만들어 날씨 나타내는 문자 맞추며 놀기, 펠트지로 바느질하여 옷입히기 인형 만들어 옷색깔 단어 인지하며 놀기, 달력 퍼즐 만들어 달을 나타내는 단어 인지하며 붙이기 등등 일종의 영어동화책 독후활동 식의 영어놀이를 일주일에 한 두개 정도 하면서 이 과정에서 두 아이가 웃음으로 정을 나누는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제가 가장 중요시했던 것은 ‘꾸준함’이었습니다. 엄마가 힘들다고 공백기를 너무 가지면 다시 시작할 때 처음으로 돌아가는 기분이 들지요. ‘놀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노는 것’입니다. 노는 것의 주체는 아이, 부모는 환경을 조금씩 제공해 주고 즐기도록 도와주는 조력자의 역할만 하면 됩니다.

 
 

이안이가 세돌 즈음에 상상력을 가미하여 영어문장을 자유자재로 만들어 말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부부는 그동안 읽어주고 함께 놀았던 수천 권의 영어동화책 한 권 한 권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머전스쿨(영어와 한국어 동시 교육 학교)에 입학 하던 날, 외국인 선생님들께서 보시는 인터뷰에 전혀 거부감없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잘 해내고, 그 당시 영어유치원 출신이 대부분이었던 친구들 속에서 어쩌면 그렇게 잘 어울려 수업을 받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원어민담임선생님의 수업을 가장 좋아하는 아이입니다. 타인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비교 대상이 과거의 자기 자신뿐인 교육환경 속에서, 이안이는 오직 푸름이교육으로 키운 내부의 힘으로 2학년 영어성적표 26개 항목에서 모두 최고점을 받아왔습니다. 제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사실 영어성적보다도, 외국인 담임선생님께서 코멘트 해주신, 이안이의 학교 생활이었습니다.

“Ian is an incredibly helpful student and encourages others in the classroom”

여덟 살(수아) 아홉 살(이안) 무렵부터 두 아이가 영어로 대화하면서 보드게임을 즐기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남편의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네요. 영어로 꿈에 대해 글을 쓰고, 그림에 대해 설명하는 글을 쓰는 모습에 감탄하곤 합니다. 영어 문장으로 잠꼬대 하는게 신기하기만 합니다.

지금은 ‘나홀로 집에’, ‘해리포터’ 시리즈를 자막 없이 즐겨 보고, 이제 그 수준의 책을 보게 된 이안이가 상상력을 펼쳐 대본을 각색하곤 할 때는 이 아이 머릿속에, 가슴속에 무엇이 들어있는 것인지 우리 부부가 궁금해 할 때가 많습니다.

 

나무꽃님의 육아스트레스와 극복 노하우를 나눠주십시오.

지금 되짚어보니 아이를 통해 육아스트레스를 받은 것이 아니라, 제 자신이 성장하지 못해서 제 마음이 만들어냈던 스트레스였습니다. 그게 육아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건드려지고 표출되다보니 육아스트레스라고 불리는게 아닌가 합니다. 여튼, 가끔씩 몹시 마음이 힘들고 우울할 때는 남편과의 관계였었지, 이안 수아를 통해 제 자신이 힘들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물론 몸은 때론 고되고 피곤했지만, 아이가 놀이를 즐긴 것처럼, 저도 제 육아를 진심으로 즐겼기 때문에, 제 남편이 ‘육아중독’이란 별명도 붙여주더군요.

마음이 힘들 때는 혼자 독립하는 연습을 했습니다. 혼자서 산책하기, 혼자서 공원 밴치에 앉아 책보기, 혼자서 식당가서 밥 먹기(낙지볶음 팔던 어느 식당은 2인 이상 주문이라고 해서 쫓겨나듯 나왔어요ㅎㅎ), 혼자서 영화 보기, 혼자서 여행가서 하루 자고 오기...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제 힘듦의 원인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죽했으면 푸름어머님은 “샴쌍둥이 분리수술”이라는 표현을 했을까요. 모든 힘겨운 관계는 독립되지 못하고 ‘의존’관계를 지속시키고자 하는 무의식의 두려움 때문이니, 의식적으로 이렇게 상징적인 행위들을 할 때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푸름이닷컴의 하트베이비방 식구들에게 나의 힘듦을 토해내는 것만큼 큰 위안과 힘을 얻는 행위는 없었던 것 같아요. 한 사람의 진심어린 공감과 응원이 죽은 사람은 못 살려도 죽어가는 사람은 살릴 수 있다는 것을 저는 푸름이닷컴을 통해 직접 경험했습니다.

 

아이와의 연결됨이나 눈빛을 보기 위해 했던 노력이나 경험을 나눠주세요.

사랑은 표현하는 만큼만 사랑이라고 합니다. 그 표현은 눈빛을 주고받는 것에서부터 빅허그까지, 또 그 사이에 박수를 쳐 주거나 사랑한다고 말로 표현하거나 행동으로 칭찬하고 격려해주는 모든 행위들이 있겠지요. 저는 엄마가 아이를 키울 때 힘들다고 느끼는 이유는 엄마가 아이와의 감정분리가 서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를 사랑하긴 하지만, 이 순간 이 감정이 아이의 것인지 엄마의 것인지 그 분리를 하지 못하면 감정은 곧 서로 뒤엉켜버려 힘이 강한 엄마에게 달라붙어 폭발력이 커지고 맙니다. 이 순간엔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도 진짜이고, 내 안에 화가 나는 감정도 진짜인 것입니다.

그래서 푸름아버님께서 가장 즐겨 하시던 말씀은 “부모의 기준을 넓혀라”였다는 사실을 아시는지요.^^ 감정분리라는 것은 사실, 말처럼 구체적인 행위가 쉽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했어도 괜찮아.”라는 구체적인 행위부터 권하셨던 것입니다. 어느날 정모에서, 한 아빠가 푸름아버님께 질문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이가 계단을 자꾸 오르락 내리락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에 푸름아버님이 딱 한마디 하셨지요. “그러면 뭐가 큰일이 나나요?” 그 대답을 우연찮게 엿듣게 된 저는 큰 깨달음을 얻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안이가 물을 엎질러도, “뭐 어때. 닦으면 되지, 괜찮아”. 수아가 이불에 쉬를 했어도, “괜찮아 빨면 되지. 뭐 큰일 나나?” 이렇게 신기하게 저의 내면에서 에너지가 나오더라구요. 결국 육아라는 것은, 나의 삶을 하나씩 되짚어가며 ‘뒤짚기’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푸름이닷컴의 ‘스킨쉽, 자연, 책’ 이 세가지가 저에게는 육아의 전부였습니다. 이안아빠는 열 살에 몸무게가 제법 많이 나가는 이안이가 가끔씩 업어달라고 하면, “그래, 나중에는 이렇게 해 주고 싶어도 못 해준다” 하면서 기꺼이 업어줍니다. 아홉 살인 수아 목마태워주기도 아직 유효기간입니다. 아이들에게 뽀뽀는 저보다도 오히려 더 많이 해 줍니다. 서로가 부부로서 감정의 분리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나니 아이의 눈빛보기는 일도 아닌 것 같았습니다. 내 마음이 건강해지고 유연해지니 아이의 눈빛이 잘 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부부가 서로 대화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서로 공감해 주는 시간이 많아지자 육아의 핵심이 바로 보였습니다. 가정의 생활은 나 자신을 찾은 후 부부의 관계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것을요. 부부의 관계가 성숙해야 그 다음 단계인 육아도, 돈 버는 것도, 하는 일도 새롭게 정립이 되어 모든 일이 신난다는 것을요.

 

 

두 자매의 관계, 책읽기에 관한 이야기

이안이가 20개월을 지날 무렵 수아가 태어났습니다. 동화책을 통해, 뱃속의 동생과 대화를 통해 동생의 존재를 알고 맞이하는 연습을 아홉달씩이나 했던 우리 이안이는, 동생이 태어나자마자, “동생아 엄마를 빌려 주께 나중에 꼭 돌려줘야해” 라고 말해서 주변을 깜짝 놀래켰습니다. 둘째와의 첫 대면에서 절대로 엄마가 안고 있으면 안 된다기에 이안이를 데리고 오시는 외할아버지와 007작전으로 수아를 아기침대에 눕혀 첫 대면을 시켰습니다. 글을 제법 읽을 줄 알게 되자 갓난쟁이인 동생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더군요. 둘째가 어려 누워있는 상태일 때는 셋이서 함께 나란히 누워 동화책 읽어주는 것을 즐겼고, 이안이도 수아도 외출한 상태가 아니면 언제나 모유를 먹일 때마다 예쁜 동요(엄마가 섬그늘에, 낮에 놀다 두고 온, 동구밖 과수원길...)를 잔잔하게 불러주었습니다. 그리고 집 안에서는 되도록 같은 장소에서 편안하고 안정적인 상태로 모유수유를 하였고, 둘이 나란히 눕혀놓고 한 몸인 것처럼 동요를 부르며 신체마사지를 해 주면서 둘 사이의 자연스런 스킨쉽을 유도해 주었습니다. 아빠와 상의하여 엄마를 독차지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주어 사랑을 빼앗겼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하였고, 어느 정도 큰 후에는 아빠와의 단둘이 데이트(영화보기, 산책하기, 동물원, 놀이공원)도 많이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이가 둘이라, 엄마의 신체 중 두 개가 있는 것들, 다리, 손, 팔, 눈, 귀 등을 묘사할 때, 하나는 이안이, 하나는 수아에게 쓸 수 있게 하기 위해 하나님이 선물해주셨다고 자주 말로 표현해 주고 많이 안아주고 비벼주었습니다.

 

 

이런 노력들 덕분인지 이안 수아는 세상에서 이런 사이좋은 자매들이 존재할까 싶을 정도로 우애가 정말 좋습니다. 물론 아예 티격태격 안 하는 것은 아니지만, 둘이서 얼굴만 쳐다보고도 웃음소리가 담장을 넘을 정도로 서로의 존재에 대해 감사해 하고 행복해 합니다. 서로의 아픔에 대해 진심으로 마음 아파하고 위로해 줍니다.

이안이도 수아도 15개월 넘도록 잠 든 후 30분동안 가수면 상태일 때 옆에서 이야기책을 잔잔하게 읽어주었습니다. 이 일은 생각보다 고된 일이었는데, 그 때 읽어주었던 책들을 깨어있을 때 기억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신기했습니다. 사실 이 모든 일들이 가능했던 이유는 서로의 낮잠 리듬을 다르게 유도해 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조금 커가면서 둘이서 같이 놀 때나 비디오 시청을 할 적에 저는 옆에서 쓰러지듯 쪽잠을 자면서 부족한 수면을 채우곤 했지요. 양가 어른들이 근처에 계시니 몸이 아프거나 힘이 들 때 저 쉬라고 가끔씩 데리고 가주실 때도 많았기 때문에 제가 크게 병이 나지 않고 살 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음식에 관해서도 다양한 책을 읽어 대비하였으나,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가끔씩 슈퍼의 아이스크림 같은 것을 사 주실 때는 그 사랑이 뷸량성분보다 더 클거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크게 불편한 마음을 갖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가장 진보적인 내용을 담은 [똑똑한 편식]을 읽고는 어머님께 장문의 편지를 써서 음식에 대해 저의 편이 되어 주십사 부탁을 드려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당연히 ‘푸름이 교육인’ 이셨기 때문에 벌써부터 저의 편이셨구요. ^^

 

교사로서 느끼는 교육의 핵심? 또는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연찮게도 이안이와 수아가 유치원생일 때는 제가 유치원에, 또 초등학교 입학할 무렵에는 중등교사로 근무를 하게 된 것이 저에게는 정말 큰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아이의 발달과정에 맞게 학부모로서의 시각만이 아닌 교사의 시각도 함께 갖게 되었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에게 치우친 잣대로 집착하는 마음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중학교에서 마음이 아픈 아이들 때문에 학부모 상담을 하다 보면, 그 아이가 왜 이렇게 아플 수밖에 없는지 금방 알게 됩니다. 한국사회에서는 줄 세우는 교육을 받은 세대가 학부모의 자리에 있기 때문에 교육적 가치관도 그대로 대물림이 됩니다. 우리가 매스컴으로 만나는 청소년들의 문제점이라 할 만한 이야기들이 사실 현장에서는 훨씬 더 많이, 자주 목격됩니다. 내가 왜 공부를 하는지, 내가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내 꿈이 무엇인지, 심지어는 왜 내가 학교에 와서 앉아 있는지, 도무지 자기 자신은 없고, 오직 학부모의 강요에 의해 길들여진 학습무기력증에 걸린 아이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아이도 사람인데, 하루 14시간을 책상 앞에 앉아 있도록 분위기를 조장하면 아이는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절대로 살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유독, 자녀의 인생을 학부모가 함께 책임지려는 모습을 많이 봅니다. 그러나 시험공부 계획도 아이 스스로 짜야 하고,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도 아이 스스로 공부의 필요성을 느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실패도 시행착오도 온전히 다 겪어내 봐야 합니다. “너는 지금 이것이 부족하니 이거 이거 해라” 가 아니라, “어떤 부분에 제일 자신이 없니? 그것을 위해 무엇을 하면 좋을까?” 이렇게 아이가 스스로 자신의 현재 상황에 대해 파악할 줄 알아야 하고, 깊이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 합니다. 사실 사고의 힘을 막는 유일한 존재는 바로 부모라는 사실을 뼈아프게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꿈을 가지라는 말을 많이 하지만, 사실 아이들이 꿈에 대해 탐색하고 사색하고 찾는 것에 대해 기다려 주는 부모는 많지 않습니다. 부모가 아이의 인생에 필요이상으로 책임을 지려고 하기 때문이지요. 본인이 고유한 자기 자신으로 살지 못할수록 아이가 인생의 전부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결국 성장해야 하는 것은 자식이 아니라 부모인 것입니다. 아이가 어릴 때 푸름이교육으로 잘 키우던 엄마들도 아이를 줄 세우는 학교에 보내게 되면 엄마의 학창시절 성적으로 인한 내적불행이 슬슬 활동을 합니다. 이제 아이가 맺는 관계는 더욱 다채롭고 복합적이어서 깊이 뿌리내리지 않은 가치관이라면 주변의 바람에 충분히 흔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아이가 어린 시절부터 푸름이교육법의 핵심가치를 깊이 알고 받아들여 나의 고유한 가치관으로 재정립하는 일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요. 부모로서 꼭 잊지 말아야 할 것 한 가지는 아이가 온전히 아이의 인생을 살 수 있게 놓아주는 것입니다.

 

임산부, 어린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처음 아이를 가졌다는 것을 알았을 때, 엄마로서의 첫마음만큼 순수한 것이 또 있을까요. 이 아이가 그저 건강하게 열손가락 열발가락 다 있게 잘 태어났으면 하는 그런 순전한 마음. 푸름이교육법을 잘 받아들이는 데에는 그 순수함이 가장 큰 강점이 아닐까 합니다. 어설프게 아는 것이 아니라 정말 잘 모르기 때문에 푸름이교육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지요.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어설프게나마 조금씩 아는 것이 생길 때부터는 분별력이 생길 거고, 나와 내 아이에게 맞는 방법들을 나름대로 정립시켜 나갈 수가 있습니다. 저는 내 주변의 어떤 사람에게도 배울 점이 있다는 것을 푸름이닷컴을 통해 배웠습니다. 나보다 나은 사람이나 나보다 못한 사람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한 존재 한 존재가 소중하게 다가오는 순간이 오려면 그 순수했던 첫마음을 잊지 않으려고 내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아이가 생기면 아이부터, 그리고 나 자신, 그리고 부부관계, 이런 식으로 우선순위를 두지만, 사실 아이가 생기면 나 자신부터 잘 찾아야 부부관계와 육아도 생동감있고 행복하게 즐길 수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그렇게 아이의 유년시절에 아이를 통해 나 자신을 잘 찾고 내 자신에 대한 사랑을 회복하면, 길고 투쟁적이고 아슬아슬한 아이의 사춘기를 뿌듯하고 대견하고 가슴 벅차게 즐기실 수 있음을 꼭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힘이 들 때는 마음껏 울어도 된다는 사실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아이는 영재판정을 받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행복하게 살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음을 꼭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푸름이닷컴의 수많은 방 어딘가에 둥지를 틀어보세요. 그 둥지가 10년즈음 지나면 크고 시원한 숲 안에 아름답게 존재할 것입니다.

 

내가 다시 어린아이를 키운다면~?

제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저는 우리 이안 수아를 키웠던 그대로 다시 키우고 싶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디서 그런 열정이 나올 수 있었는지, 정말이지 푸름이닷컴 안에 둥지를 틀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앞서 이 길을 걸어가신 수많은 선배맘들이 추천해 주신 좋은 책들은 잠을 줄여가면서 읽었고, 푸름아버님의 강연은 받아쓰기 해 가면서 들었고, 다른 분들의 말에는 진심으로 마음을 기울여 들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결국 내가 주는 사랑은 모두 나에게 다시 돌아온다는 놀라운 사실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삶에서 만나는 고통과 아픔에 대해 더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그 아픔의 언덕을 충분히 조근조근한 발걸음으로 넘어야 저의 몸도 더 단단해지고 건강해질 수 있음을 알았으니까요.

 

푸사모 가족 탐방 후기

학교의 학년마무리 업무와 글쓰는 기간이 겹쳐서 무슨 정신으로 쓴 건지 모르겠습니다. ^^ 기억을 되살려 그동안 푸름이닷컴에 남겼던 저의 발자취들을 추적하는 동안 저는 다시 아이를 키우는 것처럼 설레고 행복했습니다. 내 아이의 모든 역사적인 순간순간이 푸름이닷컴 안에 생생하게 살아서 담겨져 있더군요.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내 주변에, 나에게 아주 중요한 사람, 덜 중요한 사람,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이 생기는 것이 일반적인 것 같습니다. 제가 푸름이닷컴을 몰랐다면, 이곳에서 성장하지 않았다면 아마 저도 이 일반화에 갇혀 지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푸름이닷컴은 저에게 이 일반화를 뒤짚는 놀라운 힘을 준 존재입니다. 중3 아이들 상급학교 진학지도가 한창이라 선생님들 서로가 지칠 무렵, 제 옆의 선생님께서, “송은혜 선생님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야.”라는 최고의 찬사를 해 주셨습니다. 제가 특별히 무언가를 도와드렸거나 선물을 드린 것이 아니라 푸름이닷컴에서 다른 엄마들과 소통하며 배운대로, 늦으면 걱정하는 말 한마디 해 드리고, 이쁜 옷 입으시면 감탄사 보내드리고, 일처리 잘하시면 엄지를 치켜 올려 드린 것 뿐인데 그런 최고의 찬사를 받다니요. 아마도 이 찬사는 푸름이닷컴에 돌려드려야 하지 않을까도 생각해 봅니다.^^

푸름이닷컹은 제 인생의 전환점입니다.

인생에서 ‘가치’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임을 알려주신 푸름이닷컴과, 푸름이닷컴의 소중한 분들, 가족처럼 존재 자체로 바라봐주시고 인정해 주시고, 그 사랑 한번도 거두신 적 없으셨던 푸름아빠 최희수님, 푸름엄마 신영일님, 마음 깊이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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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가족 탐방은 일정이 연기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