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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사모 가족탐방] 세 자매 이야기 - 현이들맘님 편



왕복 하루 세 시간 거리를 출퇴근하는 직장맘 

첫째를 가졌을 때 8년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둘 수 없어 하루종일 강의하느라 뱃속에 아기가 있는줄도 모를만큼 지내다가 밤9시 막차에 몸을 싣고 나면 볼록한 제 배가 보이곤 했어요. 그럼 그때 배를 쓰다듬으며 “오늘도 잘놀아줘서 고마워. 이제 집에 가자. 태어나면 사랑받고 사랑할줄아는 아이가 되거라~” 그리고 잠들어 1시간 30분 동안 버스 기사님이 틀어주시던 뽕짝을 들으며 오곤했어요. 나중에 닷컴으로 알게되었지만 아기가 태어나 뽕짝에 열광하는 모습에 태교의 중요성을 다시금 느꼈어요. 아이를 낳고도 진주에서 통영까지 매일 출퇴근해야해서 아기랑 있을 시간이 없었어요. 태어난 아기가 신기하고 내가 낳았나 싶게 예뻐서 좋긴한데 무얼해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 출산휴가를 3개월 마치고 나간길에 서점에서 “엄마도 나를 사랑해”란 책 한권을 샀어요. 그때는 아기용책이 무엇인지 모르고 샀던건데 매일 아침 5시 30분에 눈뜨는 아기에게 그 책을 읽어주고 그림보고 얘기하며 30분간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외할머니께 맡기고 7시에 출근했어요. 친정어머니가 잘 돌보아주셔서 잘웃고 잘자는 참 순한 아기였고, 책 덕분인지 말도 굉장히 빨랐구요. 7~8개월 매일 아침 그책만 읽어줬는데도 눈을 똘망똘망뜨고 눈동자가 따라다녔고 어느날 부턴 아기북극곰이 하는 말을 따라읽기도 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직장을 다니면서 아기를 키워도 친정어머니 덕분에 아기키우는게 힘든지 몰랐어요. 그런데 함께 사시던 시어머니와의 갈등과 친정엄마의 병으로 더 이상 아이들을 돌봐주지 못하시게 되었고, 말라가는 저를 보다못한 신랑덕분에 직장을 그만두고 연년생 둘째를 낳을쯤 분가를 하게 되었어요. 시어머니로부터 도망가는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은, 하동으로 들어가는 저를 보며 "애들 교육은 어쩌려고 그런 시골로 들어가느냐" 했지만, 나중에 푸름이닷컴을 알고 나선 가장 잘한 일이라는 걸 알았어요.


'책과 자연" 내가 가진 것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게 해준 푸름이닷컴과의 첫만남

육아에 점점 지쳐가고 있을 2006년 어느날 첫째가 24개월, 둘째가 8개월쯤, 둘째를 낳았던 병원 조리원동기인 동생집에 아이들을 풀어놓고 하루 쉴 생각으로 놀러갔었어요. 동생집 책꽂이를 둘러보던 중 <배려깊은 사랑이 행복한 영재를 만든다> 핑크색 표지가 눈에 끌려 뽑아들고, 생소한 단어 "영재"라는데 꽂혀서 잠시 읽게 되었어요. 갑자기 번개 맞은 듯 주섬주섬 아이들을 챙겨 집으로 왔어요. 책을 사서 사흘 밤낮을 울며 읽었어요. 처음엔 영재에 혹했는데 저를 눈물나게 한건 형제에 관한 글들과 육아서를 모르고 살았던 내가 그동안 두 아이에게 한 것들이 떠오르며 매일 퉁퉁 부은눈으로 살게 되었어요.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도대체 최희수가 누구길래. 살폈더니 푸름이닷컴 싸이트 주소가 있더라구요. 


"책과 자연" 내가 가진 것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게 해준 푸름이닷컴과의 첫만남이었어요. 만약 그때 그냥 책만 덮고 반성만 했다면 푸름이닷컴과의 만남이 없었겠지요. 만남을 줄 수 있게 행동하게 해준 그때에 감사드려요. 인연이었는지 다음날 바로 거제 홈플러스에서 푸름아버님 강연이 있었고 신랑에게 무슨일이 있어도 휴가를 내고 가야한다고 함께 두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거제로 달려갔어요. 가는 동안에도 울면서 책에서 보았던 내용들을 남편과 얘기했고, 남편 역시 들어보고 싶다고 당당히 강의실로 들어갔는데 그 당시는 아빠들이 별로 안오는 시기였나봐요. 가득찼던 엄마들이 일제히 뒤돌아보며 남편에게 시선이 꽂혔고 얼어붙은 남편이 유모차를 밀고 다시 나가며 “여긴 엄마만 오는데인가봐. 난 아이들 데리고 마트돌고 있을테니 당신은 듣고와” 하며 나간 그 이후 푸름아버님 강연 장소에 발딛게 하는 데 몆년이 걸렸어요...^^ 

강연을 마치고 아버님께 책을 내밀어 싸인을 받으며 눈물을 흘리자 따뜻한 눈으로 “어머님이 배려깊은 사랑을 아셨네요..” 하셨어요. 한사람의 말이 얼마나 영향력이 큰지 그날 이후 전 그말 때문에 알지도 못하지만 배려깊은 엄마 흉내를 내며 열심히 살았어요..^^;; 책에서 나오는대로 따라하고 육아서를 주문해서 밤새워 읽기도 하고 두 아이 때문에 컴을 잘볼순 없었지만 책을 보며 푸름이닷컴 속에서 살았어요. 




"엄마!~ 책 사주세요. 새책!"
 

아이가 책을 좋아했지만 많이 주지 않았던 저에겐, 마음껏 줘도 된다는 푸름아버님 말씀에 그날부터 육아가 편해졌단 생각이 들정도로 첫째는 책을 보기 시작했어요. 새책이 들어오는 날은 첫짼 책에 빠져들고 전 둘째하고만 놀면 되니까요. 큰아이가 항상 했던 말이 “엄마! 책 사주세요. 새책!”이었어요. 70권짜리 전집이 들어와도 택배아저씨가 놓고간 현관에서 다 보곤 했어요. 한글은 따로 가르치진 않았고 제가 읽어주었던 목소리와 글자를 매치시켜 자연스레 알게된 것 같더라구요. 한글놀이에 익숙하지 않은 부모님들께 스트레스 받지마시고 무조건 읽어만 줘도 된다는 확신을 주고 싶어요. 닷컴에서 좋다고 하면 앞뒤재지 않고 항상 먼저 시작했고, 하면서 아이에게 맞지않는 방법이면 이리저리 궁리하다가 그만두었어요. 육아에는 답이없다는 생각을 하게되요. 

지금도 그 방법을 쓰지만 책 택배는 제가 뜯지 않아요. 아주 큰 전집박스가 들어와도 그냥 현관 앞 아저씨가 두고간 자리에 두었어요. 박스가 몆개 쌓여있어도 전 관심없는 채로 그냥 둡니다. 그리고 아이가 놀다가 관심을 보이면 스스로 뜯게 했어요. 처음부터 다보진 않아도 마음에 드는 책을 찾기위해 하나하나 꺼내면서 표지를 보게되니 안읽었던 책들도 나중에 다시 꼭 보게 되는 효과를 보게 했어요. 그래서 저희집은 전집중에 한번도 안본책은 없었어요. 저는 책박스만 버리면 되고 택배아저씨가 공부방이냐 할 정도로 많은 책들이 들어오는 족족 아이를 읽어댔어요.



매일 늦게 술에 취해 들어오던 남편도 신기한지 책을 내미는 아이에게 20권씩 읽어주고 새벽에 잠들곤 했어요. 완전히 밤낮이 바뀌어 생활이 힘들지만 그래도 그 때가 참 행복했었던것 같아요. 3개월을 밤낮이 바뀐채 살다가 신랑이 손을 들었어요. “제발 사람 좀 살자!”라구요. 그래서 완구점에가서 어른삽처럼 생긴 큰 삽 세트를 샀어요. 늦게 잠든 아이들을 아침에 깨워 보이니 호기심에 놀이터에서 하루종일 모래를 파냈어요. 그리곤 지쳐 책을 엄청 읽어 대더니 그 날 저녁 일찍 잠이 들었어요.^^  그리고 다음 날 또 나가 큰 모래 웅덩이를 만들만큼 파냈고, 두 아이의 잠시간이 바뀔 때까지 표나지 않게 책에 몰입하는 바다의 시간을 낮으로 바꾸었어요. 직장이 학원에서 디자인 가르치는 일을 하다보니 아이둘을 놀게 하기 위한 아이디어는 항상 떠올랐어요. 둘이 항상 놀이가 연결되며 흐름이 끊어지지 않게는 했지만, 제가 늘 함께하지는 못했어요. 친정아버지, 어머니와 한번도 놀아보지 못한 나였기에 아이디어는 많았지만 함께하는 놀이에서 저는 빠져있었어요. 그나마 다행인건 두 아이가 연년생이어서 친구같이 잘 놀았어요.

지금은 11살, 10살, 7살이지만, 어릴땐 에너지 넘치는 아이들도 차만타면 적당한 흔들림에 잠이드니까 카시트 세 개를 가득 싣고 참 많이도 달렸어요. 노래불러주고 얘기해주고, 도로가주변 길 곳곳 설명해주고, 아이들이 다 잠들면 때론 힘들어서 운전하면서 울고, 그순간 만큼은 운전만 하면되니까 도망치듯 혼자 셋을 데리고 많이 여행을 다녔어요. 그래서 항상 아빠 사진은 부족해요. 자전거타기에 재미붙혔을 땐 똑같이 산 자전거 두 대도 매일 내리고 싣고 반복하며 끝없이 탈수있는 길을 찾아 1시간씩 운전해서 갔어요. 세아이를 키운 건 푸름이닷컴과 육아서와 지금도 타고 있는 저 차라고.. 우스개 소리로 말하곤 합니다. 예전 살았던 아파트의 욕조도 많이 활용했어요. 셋다 혼자 먹게하다보니 엉망이 된 식탁을 치우기 위해 욕실에 물감이랑 붓을 주고 타일벽에 그림을 그리게 하면 잼나게 놀다가 지루할즘엔 욕조물을 가득채워 튜브를 주면 셋이서 참 재미나게 놀았어요. 그러고 실컷놀다 나오면 무한정 책을 읽어대고는 했지요.



연년생 첫째와 둘째 & 막내 자매관계

둘째를 낳고 제 생활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저에게 맡겨진건 항상 함께하던 정서적 엄마인 외할머니와 갑자기 떨어진 16개월짜리 아기와 이제 갓 태어난 아기, 일하느라 아기를 돌본 적이 없던 제게 맡겨진 두 생명! 직장생활만 하다가 아기키우려니 내 아기인데도 보통 힘든게 아니었어요. 큰아이는 둘째에게 젖도 못주게하고 아기 배고프니까 젖만주자해도 싫다고 끌어내리고, 둘째는 배고프다고 울고, 저는 그게 안쓰러워 울고.. 어찌할바를 모르는 초보엄마 때문에 셋이서 함께 참 많이도 울었어요. 남편은 아내 때문에 시어머니를 버리고 나왔다는 죄책감인지 새벽 4시까지 회식에 매일 술이 떡이 되어 들어왔어요. 나의 하루는 언제 끝날까 싶을만큼 힘들게 하루 하루가 지나갔고 조금씩 시간이 지나자 저만의 방법을 찾기 시작했어요. 큰아이가 좋아하는 닭다리를 요리해서 냉동실에 하나하나 포장해서 넣어놨다가 해동시켜 아이에게 쥐어주고 “동생 젖먹여도 돼?”물으면 그러라고 했어요. 닭다리에 몰두에 있는 시간에 그나마 둘 째도 젖을 먹다가 갑자기 큰아이에게 끌어내어지는 봉변을 당하지 않게 되었어요. 큰아이와 둘째 낮잠자는 시간을 달리해서 놀아주기도 하고, 책도 읽어주고 혼자만의 꾀를 내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혼자 하루종일 밥한끼도 못먹을 때도 있고 우량아였던 두 아이를 앞에 안고 뒤에 업으며 저도 지쳐가다보니 아직 아기인 큰애를 꾸중하기 시작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이가 없는데 “언니가 동생을 보살펴야지!” 하며 그 어린아이에게 했던 것 같아요. 밤마다 잠든 아이들을 안고 도와주지 않는 신랑도 원망하며 울면서 세월을 보냈어요.



큰아이가 36개월, 둘째가 20개월 때 셋째를 가지게 되었어요. 입덧과 책냄새가 싫어 하루종일 누워만 지냈더니, 큰아이는 그때부터 읽기독립이 바로 되어버리더라구요. 엄마가 앓아누우면 된다던 푸름 아버님의 말씀이 실감났어요. 둘째에게도 읽어달라는 책을 겨우 읽어주긴 했지만, 참다못해 들고오는 책을 제발 그만좀 하자고 집어던진 적도 있어요. 너무 미안했지만 그덕분에 둘째도 혼자 책을 보았어요.
어떻게 하면 내옆에 오지않고 놀게할까 생각하다 마트에 가서 밀가루를 박스채 사서 한봉지씩 둘에게 쥐어주면 하루종일 냄비와 그릇들에 옮겨 담으며 놀곤 했어요. 시간이 지나 지루해져 누워있는 제게 오면 당근과 시금치 즙을 내어 색깔 밀가루를 만들어 주었고, 그럼 또 그걸 가지고 한참을 놀았어요. 온 부엌바닥이 밀가루였지만 제가 살기위해선 어쩔수 없이 그렇게 하루하루 놀게 해주었어요.



배부른 몸으로 두아이 데리고 씨름하다보니 셋째 9개월 때 하혈을 심하게 하고 갑자기 낳게 되어 마지막달에 형성되는 호흡기계통이 문제가 있어 무호흡증으로 잠들 땐 꼭 안고 자야했어요. 셋째 때문이기도 했지만 심한 알레르기 때문에 고생한 저는 음식에도 관심이 많았어요. 

<똑똑한 편식>저자 포토님의 강연도 저를 바뀌게 했었어요. 아이들에게 바른 먹거리를 주는 것도 책을 주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란걸 다시금 느낍니다. 큰아이가 처음 유치원에 갔을 때 선생님께서 "급식 때마다 원산지와 성분을 물어대다보니 난감할 때가 있다고 ㅋㅋ" 기특하다고 하셨어요. <똑똑한 편식> 책을 저보다 더 많이 즐겨 읽었던 아이니까요. 초등학교가서는 더 이상 제가 관여할 수 없는 친구들과의 음식세계도 있으니까 아이들의 결정에 맡겼어요. 하지만 아직까지 탄산음료는 셋다 한번도 먹어보지 않았어요.

둘일 때보다 셋일 때가 더 많이 티격태격하지만 더 세분화된 역할로 잘 놀기도 하고 단합이 잘 될 때가 있어요. 어릴 땐 셋을 양팔에 안고 배에 올리고 잤는데 이제 커서 못하게 되니까 엄마 옆을 차지하겠다고 할 땐 자기들끼리 순번을 정해서 옆에 와요. 셋이다보니 둘이 싸울 땐 한명이 중재역할을 하기도 하구요. 때론 힘들지만 전 가만히 바라보는 편이에요. 그러다가 억울하거나 우는 아이가 달려오면 안아주고 들어 주기만해요. 안겨 울다가 갑자기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언니!" 하며 놀이에 또 끼워 놀게 되더라구요. 딸들이다보니 엄마가 하는 건 언제나 재미있어 보이고 쪽파 한단을 사오면 제가 손한번 안대어도 깔끔하게 완료되요. 놀이처럼 도우미 셋을 쓴답니다. 

요즘은 나아졌지만 제가 허리디스크가 심해 갑자기 통증으로 쓰러져서 일주일씩 일어나지 못하는 날이 많았어요. 최근에는 10살이었던 큰딸이 밥을 앉혀 침대에 누워있는 제게 밥을 차려오고, 둘째는 엄마 옷입혀주고, 6살이었던 셋째는 엄마 양말 신겨주고, 작은 손들의 보살핌에 감동받았어요. 그때 딸아이 담임선생님들께서 "밥해먹고 왔다"는 아이들 말에 이래서 딸이 있어야한다며 한동안 계속 부러워하셨어요.


사랑받지 못한 나에게 세배 많은 사랑을 받으라며 보내준 천사들 

10층에서 창문밑만 바라보며 멍하게 있을 정도로 육아에 지쳐 약간의 우울증도 왔었고, 내가 왜 셋을 낳아 이렇게 혼자 고생하나~ 후회도 한 시간이었지만 어떻게 그 터널을 지나왔나 싶을 만큼 지금은 평화롭습니다. 샴페인을 흔들어만 놓고 마개를 따주지않는 상태처럼 내속은 부글거리는데 제기능을 할수없는 무기력상태가 지속되었어요. 그때 저를 구해준것이 "푸름이 성장코칭"이었어요. 그시간이 없었다면 전 아마도 이 세상에 없지 않나 생각이 들 정도랍니다. 예전 사춘기가 극에 달했던 저에게 친정엄마가 "꼭! 너 같은 딸낳아서 고생해봐라" 했던 말이 떠오르며 엄마의 저주 때문에 내게 세딸이 왔다며 가슴을 쥐어뜯은 적도 있었지만, <아직도 가야할 길>책을 통해 "사랑받지 못한 나에게 남들보다 세배 많은 사랑을 받으라며 보내준 천사들"이란걸 알게되는 날이왔어요.

첫째는 항상 호기심 많고 새로운걸 배우는 것을 즐겼고 읽는 것을 좋아했어요. 길가다가 버려진 과자봉지라도 있으면 앉아서 표시성분까지 읽으며 한참동안 있었어요. 4살 때 제가 셋째를 가져 피곤해 낮잠이라도 자고나면 빨래를 다해놨어요. 탈수까지 완료된 빨래를 또 바구니에 담아놓고 다음 빨래를 돌리고 있었어요. 어찌했냐 물어보면 세탁기 설명서를 보며 따라했다고 하는데, 너무 신기하고 읽기의 힘과 아이들의 능력에 감동했어요. 요즘도 물건을 사면 따라오는 설명서를 아이에게 주고 제게 다시 설명하게 해요. 저의 귀찮음도 있지만 읽고 요약해서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는 방법도 아이의 발달에 참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5살 때는 푸름이닷컴을 알고 노력하던 엄마의 마음이 헤이해졌다 싶었는지 제게 푸름 아버님의 핑크색 책을 툭 던져주고갑니다. “엄마, 요즘 배려깊은 사랑이 부족해진 것 같아.” ^^

초등입학 후 도서관을 보고온 아이가 많은 책들에 설레여서 다음날 학교가 빨리가고싶어 잠을 못이뤘고, 1학년때 1박 2일로 경주 수학여행을 가게되었는데 설레임으로 새벽3시에 일어나 백과사전을 펼쳐놓고 경주에 대해 미리 조사하고 적어놓았어요. 2학년 어떤날은 제가 교육이 늦게 끝나 셋째 올 시간에 못 맞춰 동동거리며 급하게 운전해왔더니 멀리서 우산을 받쳐들고 동생을 기다리는 큰딸이 보였어요. 자기들은 비맞고 왔지만 어린동생은 안된다며 저대신 나가있던 모습에 대견했었습니다. 어리지만 항상 셋중의 맏이라는 책임이 있어요. 지금도 하고 싶은 것이 많아 학교가는 것이 너무 즐거운 아이입니다. 잘하지 못해도 항상 열심이고 잠깐 배웠던 밸리댄스를 즐기고, 우클렐레, 피아노 연주하는 것을 좋아하고 바이올린도 사기위해 저금을 하고, 항상 “명랑소년 학교생활기”라는 만화를 시리즈로 그리며, 반기문총장님을 존경하고 미래의 꿈인 외교관을 이뤄내기 위해 요즘은 영어에도 노력하고 있어요.

둘째는 용기가 있어요. 3살 때부터 아파트내 마트에 심부름가는 것을 좋아했어요. 봉지에 돈과 필요한 물건을 적어 넣어주면 혼자 10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좌우를 살핀 다음 마트로 들어가는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요. 잘 웃었고 낮잠을 깨서 나올 땐 노래를 부르고 나오는 흥겨운 아이였어요. 두 아이를 데리고 진주에 있는 음악분수에 자주 갔었는데 옷만 챙겨가 저는 바라보기만 봐도 둘이서 물에서 참 잘 놀았고 이렇게 밝은 아이는 처음 본다며 칭찬해주고 가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지금도 행동하는 것을 좋아하고, 그림 그리는 것을 아주 즐깁니다. 그림 잘 그리게 하려면 A4 용지만 원없이 주란말씀이 생각나 정말 많은 종이가 버려지긴 했지만 그 덕분인지 미술학원 한번 다닌적 없어도 그림대회에서 상도 많이 받아오고 학원 다닌 아이들과는 다른 표현력이 있다며 칭찬을 해주세요. 요즘은 조류독감으로 비상근무하고 들어와 곯아떨어진 아빠에게 이불을 여며주고, 현관 유리문앞에 아빠를 위한 편지를 붙혀두고 잠들고, 언제나 사랑한다는 말을 달고 살고, 수의사가 꿈인 따뜻한 마음을 가진 아이입니다. 어릴적부터 혹시 셋이서 한물건을 가지고 경쟁할 땐 자연스레 양보를 했었던 아이에요. 괜찮다고 해도 엄마를 힘들게 하고 싶지않다며 마음을 돌렸어요. 그땐 안타까운 마음도 있었지만 지금은 자기 주장도 강하기도 하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모습에 걱정이 안됩니다.



딸만 둘이었다보니 장남인 신랑과 시어머니의 아들에 대한 기대가 있었고 노력하진 않았지만 셋째마저 딸이란걸 알게 되었을 때 스트레스가 많았어요. 셋째는 그런 존재의 부정 때문에 태어나서 24개월 때까지 업히지도 않고 안고 밥을 해야할 정도로 제곁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으려 했어요. 두딸을 순하게 키워서인지 예민한 아이를 안고 소파에서 새벽6시까지 노래 들려주고 안아주고 흔들어주어야 겨우 잠드는 상황이 힘들었지만, 닷컴의 가르침이 있었기에 잘 견딜 수 있었고 24개월 정도되자 거짓말같이 똑! 떨어지는 아이가 신기하기도했어요. 지금도 독립심이 제일 강하고 외출할 때, 언니 둘 챙겨줄 때 기다리지 못했던 아이가 혼자 옷을 입고 준비를 끝냈어요. 혹시 외출할 때 책에 집중해있는 첫째에게 씻어라 말한다면, 둘째는 벌써 씻어 닦으며 나오고, 셋째는 벌써 옷 다입고 준비를 다 끝내놓는 식이에요. 형제 순위에 따라 자연스레 성격과 행동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게되요.

셋째는 사랑스러워요. 다 그렇겠지만 그냥 예뻐요. 위의 둘보다는 책읽기보다 신체활동이 많아서인지 노래와 춤추는 것을 가장 좋아하고 셋중에서 젤로 야무져요. 등산도 거뜬히 할만큼 체력도 짱입니다. 고만고만한 언니 둘의 노하우를 배워서인지 때론 제일 언니 같을 때도 있어요. 집에선 어리광쟁이인데 유치원에선 "선생님 도우미"라고 할 정도로 침이 마르게 칭찬을 하세요. 이래서 셋째딸은 안보고 데려간다는 말이 생각날 때도 있어요.


딸들에게 사랑받았던 책들

어릴적에는 경제적으로 힘들어도 특히 <공주박물관>같이 열광하는 책들은 세권씩 사주었어요. 예쁘다며 주시던 선물도 세 개가 아니면 분란이 일어날 소재를 만들지 않고 마음만 받고 돌려드렸어요. 약속한 일은 꼭 지키도록 노력했고 지키지 못한 일들은 입밖으로 내지 않았어요. 전 항상 "육아는 운전같은거다. 갑자기 튀어나오는 장애물에 방어운전을 하는거지 예측을 가지고 간다면 사고가 난다"라고 생각해요. 항상 그때그때 감정에 충실하기로 했어요. 고만고만한 셋을 키우려면 제일 중요한 게 일관성이었어요. 때로는 함께 정한 규칙에 손바닥 한대씩 맞기도 해요. 한명만 봐주면 안되기 때문에 세명이어서 더 일관성 있게 교육할 수 있었는지도 몰라요. 한없이 자유롭지만 때론 일사분란하게 준비하는 모습에 군대같지만 꼭 지켜져야 하는 저만의 라인은 있어요. 아이들이 지금도 가끔 그래요. "우리 엄마가 아니라고 한건 진짜 아니라고~" 신뢰인지는 몰라도 부모 말에 권위가 없다면 이세상 무엇에도 권위를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같은 학부형중에 어릴 적부터 어린이집과 학원을 돌았던 자기 아이가 부모말은 듣지 않는다고, 다른사람 도움 받고 싶다고, 때론 선생님도 우습게 보는 그 아이를 볼 때마다 밥상머리 교육의 중요성을 느낍니다.

셋을 보느라 정신없어 푸름이닷컴 추천책은 볼 시간이 없었지만 푸름아버님 강연을 듣고 아이의 눈빛을 쫒아가란말에 아이만 바라보았던 것 같아요. 책을 가리는 것 없이 잘보았던 아이들지만 처음엔 공룡~, 역사(특히 우리문화책을 너무 좋아했고) 매일매일 한복만 입고 지내고싶다 할 정도로 전통의 것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리고 자연스레 장담그기, 젓갈 등에 관심이 가고 덕분에 매일매일 된장찌개만 먹었어요. 그리스 로마신화, 로미오와 줄리엣 때문에 세익스피어에 빠져서 오랫동안 여왕들의 삶에 관한 책도 읽었고, 추리소설(셜록홈즈, csi과학수사대..)에 빠지고, 환타지소설도 아주 좋아합니다. 항상 좋아하는 것은 무조건 끌어모아 서점처럼 만들어줬어요. 요즘 영어를 위해 자주 보는 해리포터 시리즈에 다시 빠졌습니다. 주택으로 이사와 가지치기한 매실나무 가지로 만든 활쏘기에 빠져 무기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딸들이다보니 셋다 사랑받았던 책은 <내친구 마르틴>이었어요. 여왕리더쉽시리즈도 좋아하고, 식객요리만화세트와 초밥왕은 2만권이 넘는 그 많은 책들 중에 너덜너덜 할 정도로 휴식중에 봅니다. 과학실험 같이 흥미로운 요리에는 여전히 관심폭발입니다. 주방에 있는 20권의 요리책도 다 아이들꺼고 저보다 요리팁도 많이 알아 알려줍니다. 얼마전 방학 때도 출근을 해야해서 다녀왔더니 고소한 냄새가 진동해서 "주먹밥 해먹었어?" 했더니 국수를 삶아먹었답니다. 국수를 삶아 찬물에 헹구고 육수내어 참기름과 깨소금 넣어 동생들에게 먹이고요. 자기가 좋아하는 요리까지 해먹을 수 있으니 엄마의 출근이 즐겁기만한 아이들입니다. 집에 돌아오면 셋이서 집을 뒤집어 놓은 것 같이 폭탄을 만들어둡니다. 조금씩 치워가는 습관을 잡아가고 있지만, 어린 시절 결벽증이 있던 친정엄마의 시달림이 생각나 때론 마음에 힘이듭니다.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우게 된다면~

어릴적부터 정리하는 것을 놀이처럼 가르치고 싶습니다. 연년생 두아이를 키우며 몰입을 끊지 않기 위해 하루종일 놀다가 지쳐 곯아떨어지고 나면 겨우 조금 치워놓을 수 있었어요. 몰입과 책읽기를 위해 좋았지만 자기가 한일에 대한 책임은 보여주지 않은 것 같아요. 세 명을 유치원에 보내지않고 큰아이 7살때까지 셋이 함께 놀며 지내다보니 정리가 힘들었어요. 학교에 입학했을 때 선생님이 힘들어하신 것도 "놀기도, 아이디어도 참 좋은데, 뒷마무리를 안한다"는 점이었어요. 정리도 놀이처럼 가르칠 수 있는 시기를 놓쳐서 안타까워요.

그리고 아이들을 믿고 유치원을 좀더 일찍 보내고 싶어요. 그때는 세상을 믿을 수 없었기에 제가 데리고 있는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어요. 힘들고 지쳐 아이들에게 화를 내면서도 불안감 때문에 세상에 내보내지 못했어요. 큰아이 7살, 둘째는 6살, 셋째는 5살에 처음 유치원을 갔어요. 그 덕분에 아이들 원비로 책을 사주다보니 온 집안이 책으로 덮힐 만큼 원없이 책은 읽었지만, 저와 있으며 얻은 것도 좋은점도 있었겠지만 부족한 엄마와의 관계 때문에 사람을 좋아하는데 또래와의 기회를 많이 주지못한것 같아 아쉬웠어요.

제가 다시 돌아간다면 책을 이렇게 많이 사진 않을거라고 했더니, "원없이 사봤기에 그런 말이 나오지! 다른 사람들은 다 부러워한다"고 누군가 해주었던 말이 생각나네요. 하지만 저는 1권의 책으로 10권의 효과를 내겠다고 했었어요. 책에 빠져있다는 이유로 책만 사주고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갖지 못한 저에게 드는 아쉬움일수도 있겠지요. 요즘은 학교 도서관을 이용하기 때문에 책 살일이 별로 없지만 예전엔 책고르기로 시간을 많이 보냈어요. 누군가의 의견에 기대지않고 숙달되다보니 그림톤과 풍만봐도 아이들이 좋아한다 안한다 바로 알았어요. 그래서 집에 들어오는 책마다 아이에겐 언제나 대박책이었어요. 부족한 상황의 부분을 발달시키면 누구나 전문가가 되나봐요. 예전 애기가 한 명이었던 닷컴회원이 어떻게 그런 생각들을 할 수 있나 제게 물었을 때, 저는 "세명이어서 하루에 기본 세문제씩은 풉니다." 해서 함께 있었던 세아이맘들이 공감했던 적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입학하고 제일 힘들었어요.

아이들보다는 제 마음이요. 그동안 마음맞는 닷컴 사람들과만 만나면 되었는데, 제 방법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 흔들리는 저를 보며 욕심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동안 강단있다 생각했는데 아니었어요. 다시 나를 들여다보고 지금도 노력중이에요. 엄마만큼은 아이를 배신해서는 안 된다는 푸름아버님 말씀을 깊이 새기고 있어요. 선생님과 상담을 하고 오는 날은 선생님 마음이 제 마음에 들어와 너무 힘들었어요. 하지만 그 말보다 뒤에 드는 내 생각들이 더 저를 힘들게 한다는 것을 알게되었어요. 해결책을 찾는 것보다 문제를 인정하는것이 가장 중요했어요. 아이가 이해 못할 행동을 하면 그 이유는 엄마인데 인정하지 않고 좋은 엄마인 척 하다보니 항상 해결 방법이 보이지 않았어요. 더 이상 가면을 쓰지않고 쓸데없는 내 생각이 나를 쥐고 흔들지 않도록, 머릿속을 빗자루로 쓸어버리자 바로 보이기 시작했어요.

요즘 때론 아이들에게 화도 내고 남편과 싸우기도 하지만 뒤에 후회하며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요. 이유없이 나도 모르게 그 행동을 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주택으로 이사 오고 아이나 남편, 세상 사람에 대한 미움으로 속이 터질 땐 장작을 그렇게 많이 팼어요. 허리디스크가 있는 저에겐 어찌 보면 가능하지 않을 수 있지만 도끼날 끝에 분노를 내보내며 쪼개어지는 장작의 시원함과 나무 보일러에 넣어 태워보낼 때의 후련함으로, 다시 아이와 남편을 만났을 때 가면을 쓰고 만나지 않을 수 있었어요. 깊이 생각하기 보다는 감정에 맡기며 행동하기를 좋아하는 저로선 몸을 움직이며 스트레스 해소하는 방법이 맞더라구요.


남편의 육아 참여와 부부관계의 변화 

타이거님의 강연을 들은 적은 없지만 같은 세딸이란 이유로 존경하고, 책도 내시고 항상 노력하는 모습에 감동합니다. 도서관을 다니며 책을 빌려오신 분들도 많지만, 전 셋을 데리고 도서관까지 오가야하는 시간대신 책을 많이 사게 되었어요. 쌀은 친정에서 받아먹고 된장찌개만 먹고 한달 월급을 오로지 책값으로 쓴 적도 있었지요. 어린이집을 다니지 않다보니 아이들 옷을 사줄 필요가 없었고, 다 해진 떨어지 옷을 입고도 책읽으며 행복했는데, 그때 제일 괴로웠던 사람은 남편이었어요. 늘어가는 책과 어질러진 집안, 아침밥도 못먹고 다 잠든 모습을 보고 출근하고 월급이 다 책값으로 나가고, 머리로는 이해가가지만 욱하는 마음에 싸우기도 많이했어요.

그때 저에게 가장 큰 변화를 준 것은 <잡동사니로부터 자유>(저: 브룩스팔머) 책을 만난 것입니다. 깨끗해진 집에 남편이 일찍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그때부터 정리할 책들을 보게 되었는데 다들 심리서이더군요. 내가 그동안 가진 상처들을 가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잡동사니들(물건, 인간관계 등) 뒤에 숨어있었나? 라는 생각에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았습니다. “모든 잡동사니는 아픈 상처, 인정받고 싶은 욕구, 소통이 사라진 인간관계, 직장에서의 고민, 직업에 대한 불만, 죄책감과 두려움 같은 인간 내면의 문제를 감추기 위한 장치에 불과함을 간파하는 법, 또한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의 선택의 문제를 잘 풀어나가는 방법을 알려주며 삶에 불필요한 잡동사니들을 버림으로써 진정한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집은 그 사람의 마음지도다’ 그동안 제 생활의 마침표를 찍는 의식 같았어요. 제 주변을 보았더니, 그냥 다 있어야 할 물건들이지만 점점 걷혀지는 마음 뒤에 버려져야 할 것들이 보였어요. 그즈음 아파트 생활을 정리하고 자그마한 주택을 지었고 정말 많은 물건들을 정리했어요. 다음에 꼭 나처럼 어찌할바를 몰라 힘들어하는 닷컴 회원들에게 정리와 육아를 접목한 얘기로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도와달랄 땐 그렇게 들어오지 않던 남편이 일찍 들어와 아이들이랑 책읽고 밥먹고 얘기하고, 모임에도 갈 수있게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푸름아버님 강연에도 같이 가구요. 얼마 전에는 7시간이나 되는 부산 심리성장강연에 함께 참석하기도 했어요. 금방 뛰쳐 나갈줄 알았던 시간에 끝까지 앉아 있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부부라는 이름으로 11년의 횟수로 살면서 그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깊은 대화를 나눠본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남편이 다르게 보였어요. 상대가 원하는 사랑을 주지않고 행동할 기회를 주지않으면서 쪼기만 했다는 생각에 미안했어요. 그동안 부부관계 등등 머리로만 읽어대는 책들의 이론이 행동하지 않는다면 제게 아무 필요없단 생각에 저를 돌아보았어요.


푸름이닷컴 안에서 각자의 육아를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첫째, 둘째를 정말 힘들게 키우고 있을 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닷컴의 강연이란 강연은 전국을 찾아다니며 들었어요. 한명의 아이를 잘 키우고 책까지 낸 어느 분의 강연을 듣던 날 “한 아이를 잘 키우면 두 아이도 잘 키웁니다. 그것이 힘들다면 지금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그말을 듣는데, "우리 아이들은 엄마 잘못만나 이렇게 고생하는구나" 저를 자책하며 힘들어하고 울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미움이 생기더군요. "그래! 그 사람은 하나만 키웠기 때문에 진짜 이론서에 나온 두아이 키우는 방법은 알아도 현실은 모를거다. 셋낳은 사람 마음을 지금 내가 모르는 것처럼" 내 상황에 맞는 나만의 육아를 생각하고 키웠습니다. 그때부터 한아이 키우며 쓴 육아서는 읽지 않았고, 여러 부모들의 사정이 다 다르듯 자기만의 생활이 필요한거라고 다른 사람의 말들에서 점점 독립하기 시작했습니다. 때론 "아이 하나는 악세사리다"며 주목받는 그들에게 질투로 원망도 쏟아내기도 했구요. 세월이 지나보니 하나든 셋이든 각자의 상황에서는 누구나 힘들었을거라고 인정합니다. 그래도 그 말씀 덕에 거르는 방법은 알게되었어요. 요즘은 혹시 월모임을 진행하며 만나게 되는 진주방 회원들에게 나의 말 한마디가 상처주게될까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됩니다. 정답인줄 알고 내뱉는 나의 말이 다른 상황의 그에게 또 다른 좌절을 주게될까 조심스럽습니다.


어떠한 돌파구가 있다는 것!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요즘 아이들은 새벽에도 피아노를 쳐도 누가 뭐라는 사람 없고, 좋아하는 강아지도 두 마리나 키우고 닭도 키워보고요(고양이에게 물려가 아쉬운 이별에 통곡하기도 했지만요). 여름이면 몸이 팅팅 불을만큼 풀장에 들어가 있을 수 있고, 텃밭에 모종을 심고 가지각색의 식물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고 수확하고. 작년 여름에 옥수수를 심어 수확했는데 갓 수확한, 아무 것도 넣지 않은 옥수수가 아주 달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어요. 수박도 따 먹었고 참외, 토마토도 키워보고 자연관찰책도 많이 읽었어요. "식물은 농부의 발자국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책의 글귀대로 아이들은 부지런히 마당을 오가며 물주고 대화하고 벌레도 잡아주었어요. 돈이 부족한 탓도 있지만 뭐든 나무로 만들어 쓰는 아빠, 엄마의 모습을 보며 셋다 만들기도 참 좋아해요. 피아노학원 다녀본 적 없지만 아직은 서툰 솜씨로 노래들을 연주하고 즐기는 모습에 존경스런 마음까지 들어요. 여름엔 캠핑가지 못해도 무엇이든 구워먹고 모닥불 피우고, 데크 위에 처진 모기장속에 누워 떨어지는 별동별도 보고, 책에서만 보던 반딧불이도 보고 지내요. TV나 컴퓨터를 잘 접하지 않다보니 겨울에도 추운줄 모르고 셋이서 아빠가 만들어준 모래놀이터에서 물떠다 모래장난하고 활쏘기, 연날리기도 합니다.



푸름이닷컴을 모르고 지나친 삶을 살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냥 굴러가는 삶은 살았겠지만 제 자신과 어린시절에 대한 것을 이렇게 들여다보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세아이가 제게 왔다는 감사함도 못 느끼고 힘들게 살았겠지요. "난 요즘 정말 행복하다."고 얘기하는 남편의 말도 못들어보고 벌써 이혼했을지 모르고, 이유도 모르면서 매일 싸우며 지냈겠지요. 항상 감사함으로 마음이 가득찹니다. 평범한 삶을 살게 해준 곳이 닷컴이란 생각이 들어요. 그냥 사람답게 평범하게 건강한 마음으로 살고 있다는 느낌! 예전엔 내 육아에 특별한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은 그냥 평화롭게 잔잔히 사는 삶인 것 같아요. 그래서 푸사모 가족탐방에 내가 들려줄 생활이 되나! 다들 각자의 삶에서 열심히 살고있는 분들 앞에 나는 무슨말을 꺼내지? 많이 망설였지만 그냥 단순하고 평범한게 저란 생각에 용기내서 적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모두.. 행복하세요~

 

 

 

 다음 가족탐방은 2월 17일 등록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