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달산성을 오르다

우리 역사의 3대 로맨스라 하면, "호동과 낙랑공주", 

"온달과 평강공주", "서동과 선화공주"를 꼽을 수 있겠죠.

온달과 평강공주 이야기는 한 나라의 공주가 

바보와 결혼하는 흥미로운 내용입니다.

온달은 우리나라 봉성(금구) 온씨(溫氏)의 시조입니다.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

고구려 평강왕의 딸은 울보였어요. 

평강왕은 공주가 울 때마다 “그렇게 울기만 하면 

사대부의 아내가 될 수 없을 터이니, 바보 온달에게 

시집을 보내야 겠구나” 하며 협박에 가까운 말로 

공주의 행동을 통제하려 했죠.

(당시엔 부모교육이란 개념이 없었으니 통과!!)

공주가 16세 되던 해, 상부의 귀족 고씨에게 

시집을 보내려 했는데, “아바마마께서 말씀하시길, 

너는 필시 온달의 아내가 될 것이라 하였습니다.

백성도 한번 입밖에 낸 말을 고치려하지 않는데, 

하물며 대 고구려의 천자께서 그러실 수 있사옵니까? 

그 명령을 따를 수 없사옵니다.” 하며 아비의 명을 거역했죠. 

그로인해 궁궐에서 쫓겨납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군요. 

공주가 고씨라는 상부 귀족과의 정략 결혼을 반대했다는 설,

무술대회에서 본 온달과 눈이 맞아 궁에서 쫓겨났다는 설,

평강왕이 귀족 세력을 견제하고 왕권 강화를 위해 온달, 

을지문덕,연개소문의 할아버지 등 신진 사대부들을 

대거 등용했다는 설이죠.

이유야 어째든 공주는 궁을 나왔습니다.

그러고 온달을 찾아갔으니, 무술대회에서 본 온달과 

눈이 맞아 궁에서 쫓겨났다는 설이 맞을 거라 생각해요.

패물까지 들고나와 말을 사서 온달을 훈련시켰으니, 

직정하지 않고서야... 선택이 아니고서야...

온달관 앞에 세워둔 온달의 동상입니다.

어느 시대, 어느 장수인지도 모를 동상... 실망입니다.

김유신 장군 무덤 앞에 세워두면 김유신 장군이 되고,

낙성대 앞에 세워두면 강감찬 장군이 되고, 한산도에 있으면 

이순신 장군이 되는 ... 디테일이 없는 흔한 동상.

(고구려 복장이긴 하나, 김시민 장군이라 해도 믿을 듯...)

“온달은 얼굴이 못생겨 남의 웃음거리가 되었으나 

마음만은 순박하였다.” <삼국사기> 온달편에 온달의 

외모를 짐작케 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단양시에서 만든 온달과 평강공주 캐릭터.

비록 변강쇠를 연상시키지만... 차별이 됩니다. ^^

어디가나 볼 수 있는 비슷한 모습의 장군 동상은 ...

리얼리티가 떨어지고 아무런 감흥이 없습니다. 

동 시대의 온달 후배, 을지문덕 장군입니다.  

개마무사라 불리던 당시 고구려 군사의 특징이 

잘 드러난 복장이죠. 복장만이라도 고구려 군사의 

특징을 살렸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네요.

(동상의 말은 수컷입니다. 말은 리얼리티는 살렸어요.^^)

평강공주의 코칭을 받은 온달은 

나라에서 연 무술대회에 우승을 합니다.

그래도 사위로 인정받지는 못했죠. (육사출신이 아니라서...) 

북주 무제의 군사가 고구려를 침범했을 때 공을 세운 후에야 

사위로 인정받고 대형이라는 벼슬을 받게 됩니다. 

이 내용은 안정복의 <동사강목>에 나와요.

평강왕 19년(577년)일입니다.

(동사강목은 조선후기 실학자 안정복이 단군부터 

고려말까지 역사를 시대별로 다룬 역사책.)

온달산성은 고구려의 성이었을까? 

온달산성이 고구려가 쌓은 성이라는 주장이 있어요. 

현장을 가보니 전혀 수긍이 안 되네요.

온달산성은 충북 단양군 영춘면, 남한강을 사이에 두고 

영월과 경계선에 있는 곳입니다.

남한강을 자연 해자로 본다면... 지정학적 위치로 보아 

신라의 성이었음이 분명해지죠.

(내가 고구려 사람이라면 그곳에 성을 세우진 않을 겁니다)
  

신라가 남한강을 사이에 두고 고구려와 대치하던 

시기(진흥왕)에 쌓은 성이라면, 대야산성, 온달산성, 적성산성, 

삼년산성(★표)이 퍼즐처럼 맞아 떨어지죠.

적성산성은 진흥왕 적성비가 발견되어 축성시기가 밝혀졌어요. 

온달산성이 같은 시기에 쌓은 성이라고 본다면 

태백산맥을 기점으로 소백산, 월악산, 속리산으로 이어지는 

신라의 방어선이 눈에 들어옵니다.

북쪽에서(고구려 땅에서) 온달산성을 바라봐도 

신라의 성이라는 확신이 생깁니다.  

산 정상에 나무가 모여 있는 곳이 산성이 있는 자리에요. 

산성 앞으로는 기암절벽과 강이 가로막고, 

산성 뒤편으로는 소백산맥이 이어져요.

산성에서 고구려 땅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지만,

신라쪽으로는 첩첩 산중이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온달산성

산성을 오르려면 드라마 세트장인

온달국민관광지(어른이 5000원, 아이 2500원)를 거쳐 갑니다.

고구려가 배경인 드라마는 거의 이곳에서 찍었네요.

산성에 오르는 길은 계단입니다.ㅠㅠ

산의 높이는 427미터에 불과하지만, 

지그재그로 된 계단이 800여 미터는 돼 보이죠.

운동을 안 하다 오르려니 다리가 후들후들 떨립니다. 

물은 필수(물 3통이 모자랐다죠...ㅠㅠ)

계단이 꺾일 때마다 쉴 수 있도록 의자를 만들어 두었어요.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경치가 아름답네요. 

계단 중간의 정자에서 내려다 본 남한강 모습입니다.

강 건너가 고구려 땅이죠.

정상에 다다르니 성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비탈진 급경사 위에 세워진 성이라 공략하기 쉽지 않았을 겁니다.

계단으로 닦여진 길도 오르기 힘든데....

(역광이라 사진이 안 좋아요.)

탁 트인 전망에, 멀리 영월이 한 눈에 들어오고,

밑으로는 남한강이 굽어 흐릅니다. 

모난 돌 하나 없이 지형을 따라 곡선을 그리며 

축성된 성의 모습이 아름다워요.

성의 둘레는 683미터. 경사가 급한 비탈위에 세운 산성이라

안에서 보면 성벽이 높지 않지만, 밖에서 보면 

7~8미터의 높은 성벽으로 보입니다. 

성벽길을 따라 정상까지 올라가 보세요.

이런 맛에 산에 오르는 것입니다.

(400미터 오르고 이런 장관을 본다면...^^)    

남쪽을 바라보면 소백산맥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야말로 첩첩산중.

북쪽을 바라보면 남한강의 물돌이가 발아래 펼쳐집니다.

회룡포나 한반도 지형 못지 않은 모습입니다.

(패러글라이딩을 하기에 딱 좋은...)

다시 온달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평강왕이 죽고 아들 영양왕이 즉위합니다. 

중국은 수나라가 등장하죠. 북으로는 수나라가, 

남으로는 신라가 위협하니 위기감이 팽배했겠죠.

온달이 신라를 칠 것을 주장합니다. 

처남이 왕이 되었으니 힘을 얻었습니다.

(을지문덕 장군이 수나라 백만 대군을 무찌르기 전 일.)

삼국사기 온달전에 출정 당시의 상황이 나와요.

“신라가 우리 한북의 땅을 빼앗아 군현으로 삼았으나

그곳 백성들이 통한하여 부모의 나라를 잊은 적이 없습니다.

저에게 군사를 주신다면 반드시 우리 땅을 되찾겠습니다.”

온달은 계립령(문경과 수안보를 잇는 하늘재)과 

죽령(단양과 영주 풍기 사이의 고개) 서쪽의 땅을 

되찾지 못한다면 돌아오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이것이 온달의 마지막 전투였어요.

끝내 이 성을 차지하지 못하고 신라군의 화살에 맞아 

죽음을 맞이합니다. 

<삼국사기>는 그의 마지막을 이렇게 기록했죠.

“신라군과 아단성 밑에서 싸우다 유시에 맞아 길에 쓰러져 죽었다.”

온달이 죽은 "아단성"을 놓고 아차산이다 아니다 논쟁이 

벌어졌지만, 산성이 있는 영춘면의 과거 지명이 “을아단”이었고, 

온달산성의 원래 이름 또한 신라의 "아단성"이었습니다. 

(온달의 죽음 이후 "온달산성"이라 불리게 된 것이죠.)

사진에서 멀리 강 상류에 보이는 영춘교 건너편이 

영춘면 상리입니다. 이곳의 상리나루에서 온달의 

장사를 지냈다는 기록도 있어요. 

역시학자가 아니라도 아차산성이 아님은 알 수 있어요.  

아무리 힘을 써도 온달의 관이 움직이지 않았는데, 

평강공주가 와서 관을 어루만지며 “죽고 사는 길이 

이미 갈라졌으니 마음 놓고 돌아가시오” 라고 하자

비로서 관이 움직였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곳입니다.  

땅을 찾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며 출정을 했으니, 

죽어서 돌아오면 민망하겠죠. 관이 움직이지 

않았다는 이야기로 퉁치는 것으로... 

산성에서 3~4킬로 떨어진 "군간나루(군간대교 밑)"입니다.

이곳에서 온달이 군사를 주둔시키고 파수병을 두었다고 합니다.

이곳의 지명이 ‘군사 군(軍)’자에 ‘볼 간(看)’자를 써
군간나루라 불리게 된 이유입니다. 

온달과 평강공주의 무덤

산성을 내려오면 온달동굴 입구가 보입니다.

평강공주가 온달을 잊지 못해 이곳에서 살았다는 

전설이 내려오지만 안타까운 사연으로 인해 덧붙여진 

이야기일 뿐이겠죠. 안내판 어디에도 그런 말은 없네요. 

단재 신채호의 <조선사략>에는 온달의 전사 소식을 들은 

공주가 달려와 “국토를 못찾고서야 어찌 돌아가랴!

님이 아니돌아가는데 이 몸 또한 어찌 홀로 돌아가리오!” 하며

애통하게 울다가 그 자리에서 쓰러져 깨어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고구려 무사들이 온달과 함께 

영춘면 상리에 합장을 했다고 합니다. 상리에는 온달의 

묘라 불리는 고구려식 대형 적석총이 있다하네요.

하지만 북한에도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묘가 있어요.

북한은 동명왕릉 구역의 진파리 4호 무덤이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묘라고 주장합니다.

깨끗이 복원해 묘비까지 세워놓았죠. ^^

어느 쪽이 진실일까요?

산성을 내려오며 아들이 한 마디 합니다.

“온달은 확실히 바보예요. 

이렇게 험한 곳을 공격하니 바보죠.

산 아래 군사를 주둔시키고 성을 고립시켜도 되는데....”

ㅎㅎㅎ

♥ 함께 읽으면 좋은 도서

평강공주와 바보 온달 (비룡소 전래동화, 4-7세)

성석제 글, 김세현 그림 , 비룡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