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북루를 지나 산등성이를 하나 오르니
감옥같이 보이는 철문이 있습니다.
딱 초딩 수준으로 “감옥!” 이라고 단정을 지었더니,
1915년에 만든 냉동고랍니다.
안내판의 내용을 요약하면,
누에는 알 상태로 겨울을 나다가 4월 중순에 부화를 한답니다.
그런데 애벌레의 먹이인 뽕잎은 5월이 돼야 피기 시작하니
시간차가 나는군요. 애벌레의 먹잇감이 생길 때까지 부화시기를
억제해야 하니, 이곳에 누에 알과 겨울에 채취한 금강의 얼음을
함께 보관하면 낮은 온도 때문에 누에의 부화시기가 늦춰진답니다.
(자연 상태라면 누에도 적응을 했을 텐데,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누에를 치다보니 이런 현상이 생기겠죠.)
어째든 얼음골처럼 이곳이 산성에서 가장 시원한 곳이니다.
다시 산등성이를 내려가니 "만하루"와 "연지"가 보입니다.
만하루. 24시간이라는 뜻일까요?
당길 만(挽)자에 물 하(河)자를 썼으니
“물을 품은 누각”쯤으로 해석하면 요즘 시대에 맞겠군요.
만하루는 산성 중 높이가 가장 낮아 금강과 지척인 곳에 있습니다.
풍류를 즐기기엔 더없이 좋은 곳이죠.
뒤로는 백제시대의 인공 연못 “연지”도 있죠.
성이 고립되었을 때를 대비해 식수나 방화수 역할을
한다는 명목으로 연못을 팠다 하는데, 제가 보기엔 금강에
빨대만 꽂아도 식수는 해결될 텐데, 왠 식수걱정?
기록을 보면 가뭄으로 백성들이 굶주리다 못해
서로 잡아먹었을 때, 신하들이 창고를 열어 구제할 것을
요청했지만 동성왕은 듣지 않았다는 군요.
오히려 연회장소인 임류각을 세우고, 연못을 파고,
진기한 새를 길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귀족세력을 누르고 왕권을 강화를 위한 노력만 한 거죠.
깔딱고개입니다.
가파른 언덕길을 한참 오르다, 올라온 길을 돌아보니
경사가 급한 것이 위험해 보이는군요.
가족을 데려오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요쯤에서 "밀고 싶지?"하는 아내와 “왜 이렇게 힘든 곳에
데려왔어요.” 하는 아들의 불만소리가 예상됩니다. ^^
여기서 잠시 숨을 고르며 열심히 사진 찍는 척만 했죠.
멀리서부터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만 뚫어져라 쳐다봅니다.
양복에 롱코트를 입어서 일까?
북한산가면 나 같은 실업자가 사람들 얼마나 많은데…
공주 사람들은 이런 모습 처음 보는건가?
확 트인 전망이 시원하죠?
여기서 땀을 식히고 다시 걷기 시작하니,
길이 점점 넓어지며 산길로 접어듭니다.
멀리 산 정상으로 보이는 능선에 누각이 3개 보입니다.
뭘까? 기대를 하고 설명을 읽어보니 실망…
명국삼장비. 정유재란 때 공주에 주둔했던
명나라 장수의 공덕을 기린 비각이죠.
백제 유적지에 명나라 장수의 비각이 있는 걸 보니
우리 역사가 불쌍해 보입니다.
제 힘으로 외침을 막을 수 없는 나라... ㅠㅠ
두 번째 건물은 임류각이죠.
기록에 보면 동성왕 22년 왕궁 동쪽에 지었다는 건물입니다.
경복궁으로 치자면 경회루같은 역할을 했던
왕의 연회장소입니다.
마지막 누각은 광복루입니다.
"광복이라?" 이름이 이상하네 했더니 역시 사연이 있군요.
원래는 공산성의 북문인 공북루 옆에 있던 군사지휘소였습니다.
일제 때 일본인들이 이리로 옮겨 놓고 "웅심각"이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이곳이 공산성에서 가장 높은 곳.
일본인들은 정상에 누각을 옮겨놓고 웅진의 중심에 있는
누각이라며 웅심각이라 이름 붙였겠죠?
김구 선생님과 이시영 선생님이 나라를 되찾았음을
기리는 뜻에서 ‘광복루’로 이름을 고쳤다고 합니다.
동문을 지나 조금만 더 가면 말로만 듣던
삼남의 관문, 진남루가 나옵니다.
지금은 금서루가 공산성의 주 출입통로지만,
당시에는 진남루가 공산성의 정문이었다고 합니다.
이 문을 통해 들어가면 옛 백제 왕궁터가 나옵니다.
백제 왕궁터로 짐작되는 이곳에는
4~5개의 빈 건물터만 남아있습니다.
공주 시내를 내려다 보기에 좋은 곳이군요.
공터 앞쪽으로 동그란 유적지가 보여 가보았습니다.
원구단같은 둥근 형태의 건물터일거라 생각했는데 연못입니다.
웅진으로 수도를 옮긴 직 후 만든 못으로
지름이 7.3미터에 깊이가 3미터나 된다는군요.
이곳 연못에서 벼루와 등잔, 삼족토기 등
백제를 대표하는 유물이 나왔다고 합니다.
인조의 피난처였던 쌍수정과 쌍수각
백제 왕궁터 주위에는 조선 16대 왕이었던
인조의 유적지가 있습니다.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이 된 인조는
1년 만에 이곳으로 쫓겨오는 신세가 되죠.
쿠데타는 명분도 중요하지만 군사력이 필수죠.
겁에 질려 늦게 온 김류를 대신해 잠사나마 대장까지 맡았던
이괄은 군사를 이끌고 인조반정을 성공시켰지만,
문신들의 농간에 2등 공신이 됩니다. 게다가 대외 정국이
불안해 군사를 이끌고 다시 평안도로 가야했죠.
나라가 위급하니 불만이 있어도 참았을 겁니다.
헌데, 이괄의 아들이 공신들의 횡포를 개탄하다가
반역의 죄를 뒤집어씁니다.
(그놈의 농간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안는군요.)
아들이 역모에 연루되었다고 금부도사가 평안도까지
아들을 잡으러 왔으니 이괄의 불만은 폭발하고 맙니다.
결국 군사를 이끌고 도성을 점령하죠.
인조는 한때 쿠데타 동지였던 이괄의 난을 피해
이곳 공산성으로 피난을 옵니다.
당시 사진의 정자가 서 있는 자리에
두 그루의 나무(쌍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인조는 그 나무아래 기대고 앉아 난이 평정되기만을 기다렸죠.
공산성에 들어온지 6일이 지나서야 난이 평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얼마나 기뻤는지 이 한심한 임금은
자신이 기대고 있던 두 그루의 나무에
정삼품이라는 작위까지 내렸습니다.
훗날 "이괄의 난"을 평정한 기념으로
두 그루의 나무가 서있던 자리에 쌍수정이라는 누각을 세우고,
쌍수정 아래로는 이렇게 쌍수각이라는 비각까지 세워
그날을 기념했다는군요.
그 후로 산성의 이름도 공산성에서 "쌍수산성"으로 바꾸었답니다.
(내가 당시에 살았다면, 쌍수를 들고 반대했을 이름)
인절미의 고향, 공주
임금이 피난 갈 때마다 일화가 하나씩 생기죠?
이곳에도 그런 일화가 있습니다.
갑자기 온 피난길에 임금의 먹거리가 시원치 않았어요.
이에 공주시 우성면 목천리 근처의 임씨 댁에서
떡을 진상했답니다.
피난길의 와중에도 맛집을 챙기는 꼼꼼한 인조 임금.
“대체 이 떡은 어느 댁에서 만들어 왔소?”
“임씨 댁에서 만들어 진상하였사옵니다.”
“임씨라……, 그 맛이 아주 절미로구나.”
그 후로 이 떡의 이름이 “임절미”가 되었답니다.
“임절미”가 시간이 흐르며 발음하기 쉬운대로
“인절미”로 변한 것입니다.
비슷한 경우가 임진왜란 피난길에 2건이나 더 있었죠?
선조 임금이 찾아낸 요리,
도토리묵(상수리)과 도루묵(물고기의 종류)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을 읽을 때마다,
인조편만 보면 짜쯩이 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