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성지, 호로고루 성
호로고루, 이름이 독특하지 않나요?
경순왕릉을 찾아가다가 보게 된 도로표지판에서
‘호로고루’라는 단어를 처음 접하게 됩니다.
호로고루가 도대체 뭘까 … ?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이정표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그냥 돌아왔죠.
그 후로 머리 한쪽 구석에는 늘 ‘호로고루’가 남아있었습니다.
인연이었는지, 우연이었는지, 하늘의 계시(?)였는지 ^^
서점에서 ‘비무장지대 역사탐방’이라는 글이 눈에 들어와
<분단의 섬, 민통선>이라는 책을 사게 됩니다.
앗!!! 이 책에 호로고루가??
(날아갈 듯 기뻤지만 몸이 무거워 날지는 못하고…ㅠㅠ)
“고구려의 최전방 사령부, 호로고루”라는
꼭지 제목이 눈에 쏙~들어옵니다.
알고나면 사랑이 더 커지지요.
그 이후로 '호로고루'에 가고 싶은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결국 설 연휴에 아들을 꼬셔서 호로고루를 찾아갑니다.
고구려 성이 있던 자리라고 했더니 서바이벌 하기
좋은 곳이라 생각했는지 아들은 총 4자루와 보안경,
비비탄 총알을 차에 싣고 기대에 차 따라옵니다.
ㅋㅋㅋ
호로고루에서 바라본 임진강의 모습입니다.
배를 타고 임진강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오다보면
수심이 얕아 더 이상 배로 갈 수 없는 곳이 나옵니다.
말을 타고 강을 건널 수 있는 곳,
비가 오지 않는 건기에는 걸어서 임진강을 건널 수 있는 곳.
그래서 이곳이 군사 요충지가 되었나 봅니다.
6.25 때도 북한의 전차부대가 개성에서 문산으로
진입하지 않고 20여 킬로를 돌아
이곳을 통해 서울로 진입했다고 합니다.
1968년 김신조가 이끈 북한의 특수부대원도 이곳을 이용해
침투를 했고,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북한이 뚫어놓은
제1땅굴이 있다고 하니 삼국시대나 지금이나
중요한 요충지임은 틀림없습니다.
사진에서 붉은 색 역삼각형이 우리 쪽 최전방
관측소(OP)이자 남방한계선이 있는 자리입니다.
그 바로 오른쪽에 경순왕릉이 있고, ↔ 표로 표시된 부분이
모래톱이 발달해 배가 더 이상 갈 수 없는 여울목입니다.
북서쪽(경순왕릉쪽)에서 바라본 호로고루 성의 모습입니다.
왼쪽으로 보이는 수문이 호로하(하천 이름)가
임진강으로 흘러드는 곳이고,
서쪽과 남쪽은 임진강이 막고 있어 동쪽으로 들어오는 입구만
성을 쌓으면 사방이 막힌 천연의 요새가 됩니다.
(멀리 성 뒤에 보이는 산이 임꺽정이 활동하던 감악산입니다.)
위성사진으로 다시 봅시다.
발굴당시의 위성사진이라 성 안이 복잡합니다.
임진강이 있는 쪽이 남쪽입니다.
남쪽은 80˚의 가파른 절벽이고,
북쪽은 60˚ 경사의 언덕 아래에 하천(호로하)이 흐릅니다.
동쪽 입구만 성벽을 쌓으면 천연의 성이 되죠.
고구려 입장에서는 남쪽에서 올라오는 신라군을
방어하기에 적합한 곳입니다.
이곳이 고구려와 신라의 국경이었답니다.
마치 오늘날 북한과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것처럼…
이곳의 첫 번째 주인은 백제였습니다.
백제 근초고왕은 고구려 고국원왕을 죽이고 이곳을 차지합니다.
하지만 광개토대왕의 남진정책으로 백제는 이곳을 빼앗기고,
장수왕 때는 이곳을 버리고 웅진(공주)으로 수도를 옮깁니다.
이후 이곳은 고구려의 영토가 되었죠.
고구려는 남쪽으로 땅을 넓히며, 가까운 곳에 칠중성,
당포성, 은대리성을 쌓았다고 합니다.
백제가 멸망하고 고구려와 신라는 이곳에서 접전을 벌입니다.
백제 멸망 후 한반도 정벌을 노리던 당나라가 속셈을 드러냅니다.
당나라 설인귀는 신라군을 평양성까지 오라가라 하면서
계속 허탕치게 만들죠. 신라군의 힘을 빼기 위함입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보면 문무왕이 설인귀에게 보낸
편지 내용이 나옵니다.
“667년 당나라 대총관 영국공(이세적)이 요동을 친다는
소식을 듣고 신라군을 국경지역에 내보냈네.
그런데 아직 당나라 군사가 평양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우리는 일단 고구려 칠중성을 쳐서 당군을 위해
길을 열어두려고 했네. 그런데 성이 함락될 무렵,
당나라 사자가 와서 갑자기 ‘신라군은 칠중성을 치지 말고
빨리 평양성으로 와서 군량을 공급하라’고 했네.
하지만 우리가 수곡성에 이르자 이번에는 당나라 군사가
벌써 돌아갔다는 소식을 접했네.”
오늘날의 당나라는 신라를 가지고 놀려합니다.
<동문선> 제57권 '답당설총관인귀서(당나라 총관
설인귀에게 보내는 답서)에 보면 김유신 장군이
고구려군과 호로고루 성에서 교전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김유신은 평양성으로 군량을 수송하다 여의치 않자
퇴각하며, 설인귀에게 퇴각 결과를 알립니다.
"신라의 병마도 식량이 다 떨어져 돌아오는데,
군사는 굶주림과 추위에 손발이 얼어 터져서
길가에서 죽은 자가 이루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호로하에 이르자 고구려의 병마가 뒤쫓아와서 언덕 위에
진을 치거늘, 신라 군사는 피곤한지 오래였고
적이 멀리 쫓아올까 두려워, 적이 강물을 건너기 전에
먼저 건너 접전하니 선봉이 잠시 교전하자,
적군이 와해되었으므로 마침내 군사를 거두어 돌아왔습니다."
김유신의 편지에서도 이 지역의 중요성이 드러납니다.
만약 그 많은 군사들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야 한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병사들이 먹을 식량이나 보급품도
배로 수송을 해야 한다면?
그래서 배가 없어도 강을 건널 수 있는 이곳이
중요한 요충지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구려는 이곳의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에 이곳에
최전방 사령부를 두고, 보급창고로도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발굴당시 나왔던 쌀과 지하 보급창고의 발굴 모습입니다.
지하의 보급창고에서는 쌀, 콩, 조 등의 각종 곡물과
소, 말, 돼지, 개 등의 동물 뼈가 200여 점이나 나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성 안의 곳곳에서 발견된 토기조각과 고구려 기와를 보면
상당히 큰 건물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고 합니다.
지금도 성 주변의 돌무더기를 보면
곳곳에 토기조각들이 널려 있습니다.
한자가 새겨진 기와도 발견이 되었다 합니다.
입구에서 바라본 성의 정면 모습입니다.
높이는 10미터 정도, 성벽의 길이는 93미터 가량 됩니다.
성의 아래쪽은 돌을 쌓았고,
그 위로 흙을 쌓은 석성과 토성이 섞여있는 모습입니다.
아래쪽의 돌을 보니 철원지역 화산이 이곳까지
흘러왔나 봅니다. 구멍이 뻥뻥 뚫린 현무암이 많이 보이죠.
총을 가지고 놀던 아들은 사진을 찍자
급하게 총을 숨기네요. ㅎㅎㅎ
이제 성 안쪽으로 들어갑니다.
임진강과 맞닿아 있는 곳은 절벽이어서
떨어지지 않도록 목책을 세워두었습니다.
강 건너편이 과거로 치면 신라의 땅입니다.
고구려 군은 이곳에서 신라의 동태를 살폈겠지요.
강 건너편 나지막한 야산에 “이잔미성”이라는
신라성이 있었다고 합니다.
성 안으로 들어와 반대편 끝에서 성을 바라보고 찍은 사진입니다.
성 안의 면적은 대략 2000평 정도라 합니다.
성 위로 올라가 볼 수 있도록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있고,
그 밑의 하얀 건물은 비닐하우스입니다. 유적지 발굴 현장이죠.
아직도 발굴중입니다.
들어가 볼 수 없어 비닐하우스 밖에서
찍어보았지만 역시 잘 안보입니다.
아마도 지하 건물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발굴이 끝나면 이곳에도 작은 박물관이 생길 것입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발굴된 유물들을 전시해 두겠죠.
그때가 되면 아이들과 다시 찾아오리라 기약하며 돌아섭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쉬움에 뒤를 돌아
성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오는 위치에서 사진을 찍어두었죠.
고구려와 백제, 신라가 접전을 벌였던 국경지역,
백제 멸망 후에는 고구려와 신라의 국경이었다가,
고구려 멸망 후에는 당나라와 신라가 싸우던 접전지였습니다.
6.25 때는 북한군이 이곳에 포대를 설치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1.5킬로 정도쯤 떨어진 곳에서
지금도 우리와 북한이 대치하고 있습니다.
풍수지리를 볼 줄 아는 사람이 있다면,
이곳의 터를 어떻게 해석할까요?
아직도 북한과 접전을 벌이고 있는 곳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