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저와 저의 엄마 이야기를 좀 해 보려구요.
삼남매 중에 둘째라 자랄 때는 사실 언니나 남동생에 비해 항상 애정 결핍이라고 느끼며 컸지요. 아마 애정결핍이라 느끼는 제 마음이 육아를 하면서 비춰졌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저희 엄마가 사춘기 때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답니다. 엄마(외할머니) 없이 사춘기를 보내고 또 엄마가 막내다 보니 형제자매들이 아주 많이 신경 쓰지는 못하셨을 것 같아요. (다들 먹고살기 바쁘셨을 테니) 엄마는 음악을 참 좋아하셔서 아마 집안에 여유가 있었으면 음대를 갔을 거라는 말씀을 제가 어려서부터 많이 들었고, 실제 저희가 다 클 무렵 어머니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실버악단 단원으로 나름의 꿈을 펼치고 계시답니다.
여기까진 뭐 좋은 이야기고...
외할머니의 부재로 저희 엄마는 아마도 자식들이 절대로 엄마의 부재를 느끼지 않도록 챙겨주는 것이 엄마의 역할이라고 생각 하시는 것 같아요(딸내미가 자식을 둘이나 낳았는데도 끼고 살면서 반찬해주시고, 또 그러면서 잔소리도 빠지지 않고 하시는 것 보면요...)
전 엄마한테 무척 의지하면서도 어떨 때는 정말 진저리가 나기도 한답니다.
남들은 친정에 살면서 육아와 일을 병행하도록 도와주는 엄마께 잘 해라는 둥, 쫓겨날 때까지 붙어살아야 한다는 둥, 우스갯소리 하지만요, 본인이 아낌없이 주시는 분은 바라는 것도 많으시답니다. 제가 회사일이건, 육아건, 집안일이건, 만능 슈퍼우먼이 되길 바라시죠.
'내가 이렇게 서포트 하는 데 왜 못하냐. 다른 엄마들은 새벽같이 일어나서 애들 챙겨 먹이고 어린이집 보내고 그러면서도 회사 잘만 다닌다. 니가 게을러서 못하는 거다...'
첫째 아이를 낳고 친정에 들어온 지 어언 만 5년이 되어갑니다.
감사한 마음 가득하다가도 가끔 엄마랑 한바탕 하고나면 빨리 집을 나가야 겠다 싶기도 합니다. 회사 그만두고 분가를 해야 하나 갈팡질팡 하는 저나, 내보내면 고생길 훤한딸이니 몸이 힘드실 텐데 꾸역꾸역 끼고 살면서 그 스트레스는 옴팡 딸한테 풀어 버리시는 엄마나 둘 다 문제가 많죠. 남편은 사실 아이들 때문에 참고 사는 거지 제가 회사라도 그만두면 당장 나가자고 할 껍니다. 정신적으로, 물리적으로 엄마와 분리가 되어야 하는데 아직 제자신이나 엄마도 준비가 안 된 거 같아요...
아이들을 생각하면 내가 좀 욕먹어도 아이들한테는 할머니 할아버지랑 있는 게 낫지 싶다가
엄마랑 이런 상태로 계속 지내는 것이 결국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싶고, 제가 생각해도 제가 참 대책이 없습니다. 이런 저에 대한 실망 혹은 불안감이 아이를 전적으로 믿지 못하는 게 아닐까요?
오늘도 두서없이 주절주절 했네요..
그냥 저에 상황이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주진 않을지, 엄마와의 관계 회복을 위해서 어떤 선택을 하면 좋을지 요즘 하두 고민이 되어 적어 보았답니다.
푸름 아버님 이 글 읽으시면 의견 부탁드려요...
[닉네임: rakky]
====================================================================================
rakky님.
글을 읽으면서 님의 어머님은 희생하신 분이 아닌가 싶네요. 희생은 자신이 사랑받기 위해 사랑을 주기 때문에 사랑을 주면서 요구하는 것이 많습니다. 잔소리가 심하면 희생적인 사랑이라고 보아도 그렇게 틀리지는 않지요.
희생적인 사랑은 자신이 사랑 받기 위해 자식을 독립시키지 않지요. 자식에게 끊임없이 자신을 사랑해 달라고 요구하면서 자식의 자아경계선을 침입합니다. 버림받음은 물리적으로 아이를 버리는 것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자식의 존재가치를 무시하고 자아경계선을 넘어가는 것도 심각하게 버리는 것이지요.
이런 엄마에 의해 양육되면 엄마를 우상화 하면서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고, 낮은 자존감을 가지며, 엄마에게 의존하게 됩니다. 자아경계를 침입 당하면 분노도 많아지고 자신을 믿지 못하게 되지요.
님의 자신에 대한 실망은 님이 어머님을 우상화 하는 한, 자신이 고유한 존재가 되지 않고 엄마의 기대에 의해 자신을 평가하는 한 사라지기는 어렵지요.
지금 상황은 아이들에게도 의존적인 관계를 그대로 물려주게 됩니다. 엄마와의 관계회복을 원한다면 고유한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결국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못하면 유착에서 오는 분노를 제어 할 방법이 없습니다.
문제는 독립을 실행 할 힘을 어디에서 얻느냐 입니다. 그 힘은 님의 내면에 그대로 있습니다.
